

짝사랑 리하모니
루
짝사랑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아무렇지 않게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고는 귀엽다는 듯이 웃음을 쏟아내는 얄미운 얼굴을 훔쳐본다. 가슴께가 간지러워 괜히 큼- 헛기침을 하자 곧이어 날 쳐다보지도 않고 책상에 있던 새 물병 뚜껑을 우드득 까 내 앞으로 슥 밀어준다. 그 자연스러운 다정에 짜증이 절로 솟구친다. 심지어 물병을 집어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있으면 허벅지를 툭툭 치며 천천히 마셔, 지석아- 아니나 다를까 달콤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자비 없이 넉다운. 울컥 차오르는 감정에 하마터면 머금은 물을 다 뿜을 뻔했지만 공들여 깔아놓은 합주실 흡음 매트를 더럽힐 순 없으니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긴다. 일자 소파 위로 나란히 달라붙은 두 허벅지를 내려다본다. 아무렇지 않은 척 허벅지를 더 닿아 붙여본다. 쾅쾅 뛰는 심장이 들킬까 자세를 낮춘다..
자, 이제 다시 한번 묻는다. 짝사랑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떡밥 던진 낚시꾼의 잘못인가, 그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해 덥석 물어낸 물고기의 잘못인가.
곽지석은 오늘도 내뱉지 못할 말을 애써 씹어 삼킨다..
…내 모든 원흉. 빌어먹을 김정수.
짝사랑 리하모니
4개월 전, 메인 건반 형의 돌연 탈퇴와 더불어 들려온 군 입대 소식이 밴드부실을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있었다.
“하…이렇게 갑자기…?”
구건일은 한숨을 쉬었고,
“형, 이렇게 책임감 없이 나가버리면 어떡해요. 당장 공연이 2주 남았는데….”
이주연은 울먹거렸으며,
“…”
한형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 형을 쏘아보았고,
“…씨발 나도 안 해.”
오승민은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곽지석은 말없이 기타 가방에 기타를 넣었다. 6개월간 공장 알바 뛰며 아끼고 아껴 모은 돈으로 산 284만 원짜리 펜더 기타. 입맛이 뚝 떨어져 이곳에 1초도 더는 못 앉아있을 것 같았다. 폭탄 던진 건 본인이면서 이마 부여잡은 채 지가 더 곤란한 표정 짓고 있는 그 형을 일부러 어깨빵 치며 지나갔다. 맨날 사기 떨어지는 소리나 해대고 탈퇴 입에 달고 살 때부터 알아봤지. 저 형 그렇게 보긴 했는데, 진짜 뭐 저런 게 다 있냐. 앞길이 캄캄했다.
터덜터덜 지하에서 올라와 흡연장으로 들어서자 이미 담배 하나 꼬나물고 있는 오승민이 보였다. 누구랑 통화 중인 것 같길래 조용히 가 옆에 앉아 오승민 트랙탑 주머니를 뒤져 익숙하게 담뱃갑을 꺼냈다. 라이터 좀. 건네주는 라이터를 받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존나 독한 거 피네. 난 멘솔이 좋은데. 괜히 말 꺼냈다간 오승민이 죽어라 째려볼 거 같아서 말하진 않았다.
“형 진짜 안 돼요…? 하… 네, 2주 남았는데. 네… 그쵸… 촉박하긴 하죠.”
“…”
“아녜요. 어쩔 수 없죠… 네 알겠습니다…”
잘 마무리되지 않은 듯한 전화를 끊은 오승민이 머리를 쥐어 감싸며 으으으- 신음을 내뱉는다. 미친 새끼 개새끼 좆같은 새끼…중얼중얼 욕을 뱉어내는 오승민 옆에서 가만히 담배만 펴댔다.
“…네가 메인까지 커버치는 건 좀 어렵,”
“시발, 말이라고 하냐? FX랑 키체인지 순서까지 다 짜두고 눈 감고도 칠 수 있게 연습 다 해놨는데 이제 와서?”
“…글킨하지.”
“아- 아- 진짜 어떡하지. 그냥 저 새끼 죽이고 깜빵 가는 게 맘 편할 거 같아.”
“시체는 나한테 넘겨.”
진짜 어떻게 죽이지… 한참 머리를 부여잡은 채 골몰하던 오승민은 곧 아! 하고 무언가 번뜩 생각난 듯 소리를 친다.
“야 너 김정수 형 기억나지.”
“? 그게 누군데.”
“아니, 왜 있잖아. 저번 버스킹 때 그 실음과. 아, 넌 못 봤나? 같이 봤던 게 건일이 형이었나? 아아, 이럴 때가 아님. 야, 나 먼저 간다!”
우다다 알아듣지 못할 말을 쏟아내곤 흡연장을 달려 벗어나는 오승민의 뒷모습을 보다 마지막 한 모금의 담배를 빨아들인다. 김정수? 레알 초면인 이름인데. 머릿속을 뒤집어 김정수라는 이름을 생각해 내려 하던 지석이 곧 아. 작은 감탄사를 뱉어낸다.
오승민 이 새끼 담배 두고 갔네.
“개꿀. 이제 내 꺼.”
그날 밤 그 형은 인사 한마디 없이 밴드 단톡을 나가버렸다. 그래도 그간의 정이 있는데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지만, 또 얼굴을 떠올리면 차오르는 괘씸함에 고개를 저었다. 사과 한번 안 하는 인간 뭐가 예뻐서. 비어 있을 밴드 합주실의 건반 자리를 떠올리자 다시 한번 가슴 한 켠이 무거워졌다. 어떻게 잡은 기횐데. 대학 아마추어 밴드에게 40분 공연, 8곡의 곡을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무대는 많지 않다. 심지어 그 무대를 기점으로 여기저기 뻗어나갈 수 있는 가지가 많아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멤버들은 그 시간들이 더욱이 간절했다.
(알 수 없음)님이 대화방을 나갔습니다. 그 문장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속이 뒤집어질 것만 같아서 핸드폰을 엎었다. 그 형이 떠나간 것보다 음악이 날 떠나갈 것 같은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다음 날, 구건일이 멤버들을 합주실로 급하게 불러 모았다. 새 건반을 구했다 그랬다. 미친 건가? 공연 2주 남았는데 레파토리 어떻게 숙지하려고 이 밴드에 들어온다는 거지? 하루 만에 어떻게 한 거지? 우리 사기당한 거 아냐…?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그 겁 없는 인간의 얼굴이 궁금해져 합주실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
“김정수… 입니다.”
잠시만.
염병.
이건 아니지… 잘생기면 잘생겼다고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냐 사람 당황스럽게시리.
당신은 한눈에 반했다는 말을 믿습니까. 어느 날 보았던 영화의 명대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꾸만 눈치 없이 벌어지려는 입을 의식적으로 닫아내느라 고 짧은 새 기가 쭉 빨렸다. 셋 리스트 악보랑 합주 녹음본 어제 다 받아서 대충 쳐봤는데 열심히 하면 민폐는 안 될 정도로 할 수 있을 것 같구요… 일단 어제 거의 밤새서 두 곡 정도 만들어왔거든요. 합주해 보면서 맞춰보면…
우물우물 말하는 입술이 빨갛고, 통통하다. 하얀 피부와 까만 머리칼. 어색함 때문인지 쉼 없이 깜빡이는 두 눈에 자꾸만 시선이 멈춘다. 흐르는 물방울처럼 지석의 시선이 정수의 얼굴선을 타고 흐른다. 볼에 초코칩 마냥 점이 하나 콕 박혀있다. 그즈음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와 진짜 좆된다. 나 말랑콩떡순딩두부상 좋아하 는 거 어케 알았지. 근데 눈매는 날카로워. 언발란스의 발란스 지렸다. 심지어 개큰피지컬에 떡 벌어진 어깨 뭔데. 어케 알고 어떻게 저렇게 빚어놓은 것 마냥 취향의 남자를 하늘에서 뚝.
“좆됐네…”
“어? 뭐라고?”
아, 아니. 좋다고!! 너무 좋다고! 무의식중에 툭 튀어나온 진심에 허둥지둥 말을 포장했다. 아오, 요놈의 주둥아리.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김정수의 얼굴에 확 얼굴에 열이 두 배로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실음과 건반 전공 탑이라는 오승민의 말은 그저 주접이 아닌 듯했다. 김정수는 두 번 만에 밴드의 전체 흐름을 간파하며 그 틈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들어왔다. 섹션과 그루브 합을 금방 맞춰내는 건 물론, 리듬 기타인 지석과 사소한 코드 보이싱 하나까지 섬세하게 맞춰가며 호흡을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쯤 되면 지석은 비어 있던 가슴 한 켠이 뜨겁게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곽지석의 보이싱을 체크하느라 손가락에 머무르는 시선에 열감이 올랐다. 이제 곧 떠나가겠구나 했던 음악이, 다시금 지석에게로 다가왔다. 그것을 끌고 들어온 것은 덧붙일 필요도 없이 명확한 김정수의 손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다.
합주를 끝내자마자 오승민의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정수 형 개나이스! 이주연의 외침이 합주실을 가득 채웠다. 지석은 옅은 안도의 미소가 담긴 숨을 뱉어냈다. 부끄러운 듯 숙이고 있던 김정수가 고개를 들어 곽지석의 눈을 마주친다. 시선이 묶인 듯 허공에서 부딪힌다. 김정수가 웃는다. 곽지석은… 그걸 거부할 용기가 생기질 않는다. 그제야 실감한다. 와, 나 진짜 좆됐다…….
자, 그럼 잠시 곽지석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눈치챘겠지만 뼈 게이 곽지석. 유딩 시절, 생일날 뽀뽀 누 구한테 받고 싶냐는 선생님의 말씀에 당당히 남자아이를 가리키며 쟤요. 라고 말했던 건 물론 남녀 짝지어 하는 전통 춤 배우기 시간엔 여자랑 하기 싫다며 울고불고 떼쓰던… 떡잎부터 달랐던 게이의신,게이의환생,게이의지존,게이의마스터피스… 뭐 어쨌든 그런 거다.
정말 잠시의 디나이얼 기간도 없이 자연스레 본인의 성 정체성을 인정했고, 본능적으로 티 내며 살지 않는 법을 터득했다. (유딩 시절 이야기는 묻어두기로 하자…) 성인이 되고 나서야 몇 번 어플로 만남을 시도해 보려 했지만 만남은 마음처럼 잘 따라주질 않았다. 뭘 믿고 낯선 사람한테 덜컥 날 보여줘? 그래, 곽지석은 게이 주제에 자만추 선호하는 오만한 벽장 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밴드 멤버 중에 유일하게 곽지석의 취향을 아는 건 오승민뿐이었다. 정말 어이없게도 전화 한 통 빌려줬다가 깔려있던 것도 까먹고 있었던 게이 매칭 앱 들켜서. 앱 숨기기라도 좀 해놔라… 오승민의 감상은 간단했고 곽지석은 허겁지겁 아이콘을 꾹 눌러 앱을 삭제했다.
넌 연애 안 하냐? 어느 날 곽지석 자취방에 누워 실실대며 썸녀랑 카톡 하던 오승민이 질문을 던졌을 때 곽지석은 뭐랬더라.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 있으면 하지…아직 본 적 없는 게 문제지만.’
그 대답에 배부른 소리 쩌네. 얼굴값 미친아- 하며 오승민한테 뒤통수를 처맞았던 기억.
왜 그때 그 기억이 다시금 나는 걸까.
신이시여…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이… 헤테로일 거란 말은 없으셨잖아요…
정수 형? 여자친구 데려다주고 바로 온다던데요.
공연 전에 단합 겸 김정수 환영식을 하자며 모였던 그 회식 자리에서 곽지석은 0고백 1차임을 거하게 당하고 만다. 아니, 뭐래. 저 고백 할 생각 없었거든요? 곽지석은 이렇게 말하겠지만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끊임없이 김정수를 쫓던 눈을 부정할 순 없을 테지.
그 말 듣자마자 사시나무 떨리듯 진동을 시작한 손을 애써 잡아 누르느라 전완근에 쥐 난 건 아무도 모를 거다. 뭘 놀라고 난리. 예상 못 한 것도 아니잖아. 누가 봐도 내 과(?)는 아니잖아. 후- 잘잘 떨리는 한숨을 애써 내쉬었다.
“아 미안해. 늦을 생각은 없었는데.”
뒤늦게 고깃집으로 들어온 김정수가 자연스럽게 곽지석의 옆자리에 앉는다. 물티슈 꺼내 손바닥 슥슥 닦고선 쓰레기통에 그걸 버리며 곽지석이 썼던 물티슈까지 같이 버려준다. 지석이도 술 마셔? 네… 뭐 그럴려구요. 그래, 대신 물 많이 마셔. 그러면서 곽지석 컵에 물 한 잔 가득 따라준다.
김정수는 고기 먹는 내내 곽지석 쪽으로 반찬을 먹기 좋게 밀어준다거나 곽지석이 탄 고기를 집어 먹으려고 하면 안 돼! (이주연이 강아지냐고 놀렸다) 하며 고기를 뺏어 탄 부분을 가위로 잘라 앞 접시에 올려준다거나 하는 미친 행태를 보여줬다.
“지석이 술 먹으면 얼굴 빨개 지는 편이구나.”
심지어 발개진 곽지석 두 뺨에 자기 두 손을 올리고는 오오. 뜨끈하다- 하면서 실실 웃는 개미친놈끝판왕의 면모까지 보여주면.
“아, 형. 뭐해요오…”
불가항력. 최종 붕괴. 네네, 제가 졌어요. 그냥 헤테로 짝사랑하고 지옥 가겠습니다. 사르르 녹아내리는 마음과는 달리 속으로 피눈물 쏟으며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때 고깃집에선 익숙한 멜로디의 어떤 가요가 울려 퍼졌다.
더 깊이 빠져 죽어도 되니까… 다시 한번만…
“지석아-”
“지석아, 카페 같이 다녀오자.”
“지석아, 이걸로 땀 닦아.”
저 형은 맨날 지석이만 예뻐하더라. 정수 지석이 덕후잖아. 웅성웅성 합주실을 채운 말 들을 뒤로 한 채 김정수가 건네준 물티슈로 지석이 얼굴에 작게 맺힌 땀을 꾹꾹 눌러 닦아낸다. 아아 토할 거 같애. 슬쩍 옮긴 시선 끝엔 개노답이라고 쓰인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 오승민이 걸친다. 미친놈 나라고 좋겠냐고. 사실 좋다. 좋아 죽을 거 같다. 좋아서 죽고 싶다. 시벌…
한 주 동안 거의 매일 밤새듯이 합주하며 호흡을 맞춰가니 김정수는 어느새 이 밴드의 원년 멤버였던 것처럼 빈자리를 아낌없이 채워냈다. 아니 오히려 플러스가 됐지. 실음과답게 예리한 통찰력과 좋은 귀로 합주의 퀄리티를 몇 배 더 올려놓았다. 한형준은 기타 솔로 라인의 짜임새를 더 디테일하게 잘 살리게 되었고, 오승민은 밤새가며 찾던 사운드 메이킹에 투자하는 시간을 덜 수 있었다. 구건일과 이주연도 리듬이 더 꽉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며 매번 김정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곽지석은 합주실에 그 누구보다 몇 시간 더 일찍 와 연습을 하던 김정수의 뒷모습을 안다. 그 아름다운 뒤태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게 기특하고 고마워 곽지석도 가끔은 일찍 합주실에 가 기꺼이 김정수의 건반 피드백을 도왔다. 함께 연습하는 시간은 즐거웠다. 김정수는 다정한 말투로 곽지석을 보며 기타에 재능이 있다고, 좀만 더 일찍 시작했으면 내 후배였을 수도 있었겠다며 오바 섞인 칭찬을 자주 하곤 했다. 연습하다 쉴 때면 은근히 김정수 옆에 가 괜히 건반을 두들겨 본다던가 피드백을 물어본다든가 하며 서슴지 않고 거리를 좁혀갔다. 사심이 아예 없었다면 구라고. 그렇게 둘은 누구보다 빠르게 또 깊게 친해졌다.
김정수는 곽지석을 유독 예뻐한다. 귀여워한다. 오승민도 인정한 사실이었다. 워낙에 배려가 몸에 배고 다정을 표출하는 게 익숙한 사람 같아 보이긴 했지만 곽지석에게만 유난스레 구는 때가 자주 있었다. 이주연한테는 툭툭 장난스런 시비도 곧잘 걸고 구건일은 하루가 멀다하고 놀려먹으면서. 곽지석은 만지면 깨질까 쓰다듬으면 흩어질까. 이건 좀 오반가. 여튼 어딘가 조심스레 대하는 게 느껴졌다. 웃기게도 곽지석은 양심 엿 바꿔먹은 게이 새끼라 그런 다정 주면 주는 대로 잘도 받아먹었다. 또 김정수는 곽지석 한정으로 웃음이 헤퍼서 곽지석은 자주 오바 떨며 김정수를 웃겨주기도 했다. 솔직히 김정수가 웃으면서 귀엽다는 표정으로 바라봐주는 게 너무 달고 좋았다. 영원히 그의 광대가 되어줄 자신이 있음… 김정수가 까르륵 웃다가 곽지석 머리라도 쓰다듬고 턱이라도 긁어오면, 아아 형 제발 이러지 마세요. 울부짖는 곽지석과 아니? 더 줘. 더 해. 나만 봐. 헤헤거리는 곽지석이 매번 싸웠다. 일단 받아먹고 쓰면 뱉자 했지만 열 이면 열 다 달콤해 혀끝이 아릴 지경이었다.
남들은 볼 생각도 없고 보지도 못하는 곽지석 얼굴에 붙은 작은 먼지 조각을 떼어내 준다든지, 삘 타서 이주연 한형준이랑 장단 맞춰 헤드뱅잉 난리를 치고 흐트러진 앞머리를 손수 정리해 준다든지, 회의한다고 합주실 책상에 모여 앉아 얘기 나누고 있으면 어느새 곽지석 손가락은 김정수에게 잡혀 흔들흔들 장난질 당하고 있었다.
혹시 이 형 알고 이러나? 진짜 혹시나 해서 오승민 떠봤는데 욕만 한 사발 처먹고 끝났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그 형은 곽지석 이렇게 위아래위위아래로 롤러코스터 태워놓고 합주 끝나면 슝 여자친구 만나러 가버리니까… 씨발 인생 씁다. 그 뒷모습 보면서 오승민이랑 눈물 젖은 담배만 태워댔다.
마음은 곽지석도 모르게 자꾸만 커져갔고, 질투는 불쑥 날을 세웠으며, 욕심은 지독하게 몸집을 부풀려갔다. 헤테로를 짝사랑하는 게이는 정말 최악이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매일이었다.
그리고 현재.
“형”
“응?”
“…요즘은 여자친구분 안 만나세요?”
카페에서 과제하고 있는 곽지석 맞은편엔 휘핑 두 번 추가한 아이스 초코 쪽쪽 빨아 마시는 김정수가 있다. 그리고 곽지석은 최근 들어 736190번째 하고 싶었던 질문을 참다 참다 겨우 던진 찰나였다.
원래도 열심인 형이긴 했지만, 요즘은 붙박이처럼 합주실을 벗어나지 않는 김정수였다. 한 달 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미세하게 어딘가 얼이 빠진 김정수의 얼굴을 곽지석은 기억한다. 그날 합주 끝나고 오승민이랑 담타 가지면서 오늘 정수형 좀 이상하지 않았냐…? 하고 물었지만 엥? 그래? 모르겠는데. 라는 대답만 들었다. 괜히 김정수 신경 쓰는 거 티 내고 싶지 않아 더 물고 늘어지진 않았지만…
“…나 헤어졌는데.”
“에, 예? 네? 아…아아 진짜…요…”
“엉, 한 달 됐나.”
그렇게 말하는 눈빛에선 정말 단 한 톨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서. 곽지석은 괜히 조금 더 파고들고 싶어지는 욕심이라는 게 생기는 거다.
“왜 헤어졌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