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별통신규약
익명 A
*해당 글은 민감한 소재(자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있잖아, 정수.
너는 왜 그런 거야?
검은 정장. 혹은 단정한 차림을 한 이들이 드나들었다. 인생을 허투루 살진 않았나 봐. 눈 앞에 펼쳐진 음식을 두고도 저 너머에 그저 맘 편히 웃고 있는 사진과 눈싸움했다.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지석아. 왜 안 먹고 있어.
당신은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으면서도 앞에 둔 음식을 입에 넣지 않는 아들 친구가 더 걱정된 모양인지 피골이 상접한 채로 지석의 맞은편에 앉았다.
어머니도 좀 드셔야죠.
아직, 생각이 안 드네.
자식 앞세운 속을 지석이 무슨 수로 헤아릴까. 그는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제 속도 역하면서,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참아가며 뜨거운 육개장에 쌀밥을 적셔 욱여넣었다.
정수한테 너 같은 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 말이 돌처럼 식도를 쳐 막는 기분이었다. 나 같은 친구가 뭘까. 다행이라는 걸 보니 그녀에게 지석은 제법 좋은 사람인 것도 같았다.
여기서 드는 의문.
과연 정수에게 지석은 좋은 사람이었을까?
지석은 원망 섞인 눈으로 영정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정수.
너는 왜 죽은 거야?
장례식장엔 유독 담배를 피워대는 이들이 많다. 저 속에서도 향이 피어나니, 매캐한 건 매한가지라 그럴까. 장초 하나를 꼬나물었다가 불도 붙이지 못한 채로 멍하니 하늘인지 허공인지 구분도 안 되는 공간에 시선을 던졌다.
사실 실감이 안 났다. 지금도 네가 입에 물린 장초를 거칠게 낚아채어 제발 몸 망치는 짓 좀 하지 말라는 잔소리를 할 것 같았으니까.
조문객은 적지 않았다. 그래, 정수는 좋은 사람이니까. 그 관계의 깊이는 알 수 없어도, 분명 그의 비보에 슬퍼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니까.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인데 하고 생각했다.
자신이 더는 신을 믿지 않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언젠가 정수에게도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신이라고 하는 존재도 결국 이기적인 존재인지라 선한 존재를 곁에 두고 싶어 한다 고. 정수, 너도 그런 사람이라서일까. 네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 신이 널 탐하고야 말았던 걸까.
푸념이다. 상실에서 오는 회피이자 방어기제. 마치 널 잃은 적 없는 사람처럼.
상실의 아픔 대신 뱉어지는 담배 연기가 나풀나풀 날으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정수라는 존재가 없어도 지석은 잘만 살았다. 어릴 때처럼 죽고 못 사는 사이도 아니었고, 서로의 영역을 착실히 쌓아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막막할까.
왜 자꾸만 네가 없다는 사실에 잘만 살아오던 일상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가 밀려오는 걸까.
다 태우지도 못한 담배를 끄고 돌아왔다. 그녀는 매캐한 냄새를 풍기는 아들 친구를 가엽다는 듯이 안아주었다. 그녀 를 마주 안고 생각했다. 네가 안아줬다면 더 따뜻하고 든든했겠지.
내일 또 올게요.
뭐 하러 그래.
자기 전에 꼭 한술 뜨고 주무세요.
어서 가 봐.
나는 내일 다시 올 테고,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잠들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꾸벅 인사하곤 장례식장을 벗어났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멍하니 지나가는 차를 쳐다보면서 처음으로 이 세상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한 번도 인지하고 살아본 적이 없다. 누군가는 가장 소중한 자식을 잃었고, 또 누군가는 가족보다도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 그럼에도 세상은 끝도 없이 재생되는구나. 그 속에 가슴 아픈 이들만 주저앉아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는구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해?
이대로 아무렇지 않은 척 정수를 잠시 잊고 살아내야만 하는 걸까? 그렇게 살아내면 나는 정말 잘 사는 게 맞는 걸까? 너무 어려웠다. 이게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다.
정신 차려 보니 드물게 버스를 타려 기다리는 사람 하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도착 예정 정보 판엔 어떤 숫자도 떠오르지 않았고, 도로에도 차가 많이 줄어있었다. 얼마나 앉아 있었던 거야.
정처 없이 걸었다. 그냥 택시를 잡아 집으로 가면 될 텐데도 상실이 그런 당연한 사고마저도 마비시키는 건지 그냥 발길이 닿는 대로 걷게 했다.
걷고, 또 걸었다.
“있지. 사실 나 너 되게 귀찮았었어.”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서 중얼거렸다.
“너 우리 엄마보다 잔소리 심했어, 알아?”
이렇게라도 게워 내야만 할 것 같아서.
“너 아니었으면 나 연애도 엄청 했을 텐데, 너 때문에 못 한 거야. 우리 매일 붙어있었잖아.”
더는 참아낼 수 없어서.
“너 진짜 짜증 나.”
결국 너는 나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왜, 왜 사라져 버린 거야.
매일은 오던 곳이었다. 어느 날은 너희 집을 두고 왜 맨날 여기로 오냐고 하던, 또 어느 날은 네가 없어 심심하다며 오늘은 안 올 거냐 보채던, 너의 집. 김정수의 흔적이 넘쳐흐르는 곳. 조심스럽게 도어락에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문을 열자마자 숨이 막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시발…….”
이 집은 아직 모르는 듯했다. 당장이라도 네가 저 방에서 걸어 나올 것만 같이 따뜻했고, 아직도 너의 향으로 가득했다. 이제 김정수는 이 집으로 돌아올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끌린 듯이 너의 방으로 향했다. 반듯하게 정리된 침대에 누웠다.
흐윽.
내내 참아내었던 울음이 저항도 없이 터져 나왔다.
포근해.
너를 너무 닮아서.
벌써 네가 너무 보고 싶어.
그러니까 정수, 너는 왜 그래야만 했어?
왜 나를 두고, 내가 아무것도 해볼 수 없게 했어?
나는 너한테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야?
적어도 나한테는 네가 벌써부터 가장 큰 흉터가 될 것 같은데 너는 내가 아무 상처도 내지 못했다는 듯이 사라져 버린 것이 원망스러웠다.
적어도 너의 가장 큰 상처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침대 옆 작은 탁자.
작은 다이어리.
홀린 듯이 그 다이어리에 손을 뻗었다.
펼치자마자 떨어지는 종이 하나.
꼬깃꼬깃 접혀있는 걸 조심스럽게 펼쳤다.
[곽지석에게.]
나는 무너졌다. 그 아래로 적힌 수많은 말보다도 가장 앞서 적힌 겨우 다섯 글자에.
[이 편지가 너한테 전해졌으면 하다가도, 끝끝내 전해지지 않길 바라며 이제껏 못다 한 말을 적어보려고 해.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된 게 벌써 몇 년째인지 이제는 바로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참 많이 흘렀네.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아. 나는 항상 우리 사이가 궁금했다. 너의 말처럼 우린 가장 친한 친구 정도인 걸까? 물론 이제껏 한 번도 물어보진 못했어. 너도 알잖아. 내가 생각보다 겁이 많다는 거.
맞아. 나 너한테 거짓말하고 있었어. 나는 너한테 가장 친한 친구일지 몰라도, 나한테 너는 많이 특별했으니까. 늘 그걸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어. 너는 늘 이 상한 데서 눈치가 빠르니까. 비록 너를 속이고 있지만, 그래서 우리가 가까울 수 있었다고 생각해. 오히려 다행이었지.
그런데 지석아. 나는 그게 조금 미련했다고 생각해. 너는 너인 채로 살아가는데 나는 내가 나이지 못한 채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 너를 원망하는 건 아냐. 너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까. 나는 단지 내가 조금 미울 뿐이야.
너를 그냥 좋은 친구로 여기려는 노력조차도 어려워지기 시작했어. 재채기처럼 너한테 말해버릴 것 같아서, 너한테 연락도 못 하겠더라. 그래서 네가 날 미워하더라도 난 이해할 수 있어. 이게 뭐가 좋은 친구야.
결국 우리는 좋은 친구 사이일 수 없었나 봐.
다 내 탓이야. 다 내 잘못이고.
그러니까 지석아,
나는 네가 이 편지를 읽더라도 너무 울진 않았으면 좋겠어.]
가슴이 찢어질 듯 아렸다. 무수히 쏟아지는 말을 제대로 씹어 삼키지도 못했다.
아니었다.
너에게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비겁한 이는 나였다.
내 고통은 겨우 엄살일 뿐이었던 거다.
내가 너에게 내내 상처였는 줄도 모르고.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었다. 감히 울부짖는 것조차도 너에게 죄스러워서. 네가 보지도 못할 줄 알면서도 무릎 꿇고 웅크린 채로 그 작은 종이 한 장이 마치 너라도 된 듯이 품었다.
신을 믿지 않겠다고 했다. 그게 얼마나 나약한 반항이었던가. 빌었다. 구질구질하게. 제발 너를 돌려달라고. 어떤 대가라도 치를 테니 제발 김정수를 이 세상에게로 돌려달라고.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어쩌면 신은 나의 염원을 들어준 걸까?
아니.
나는 확신했다.
신은 당신이 사랑한 너를 가여워한 것이 틀림없다고.
*
그 애를 돌려주세요.
내가 그 애를 힘들게 한 거라면, 나 같은 건 다 잊혀도 괜찮으니까. 그 애만은 꼭,
*
“얼른 안 일어나!”
날벼락이다. 말 그대로 날벼락. 분명 의식이 흐려지기 전까지 슬픔에 잠식되어 가는 중이었는데, 어째서 등이 얼얼한 거지? 아주 익숙하고 그리운 고통,
“빨리 씻고 밥 먹어!”
이라고 회상하기도 전에 어마무시한 호통이 한 번에 휩쓸고 갔다. 엄마가 대체 정수 집을 어떻게 알고 온 거지? 걔가 그런 걸 우리 엄마한테까지 알려주진 않았을 텐데. 눈을 비비고 일어났을 땐 그냥 내가 잠에서 덜 깼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독립으로 인해 진작에 사라진 나의 옛 방을 마주하기 전까지 말이다.
어?
아니다. 아무래도 꿈이 맞는 것 같다. 그럼 안 아플 거잖아, 그치?
망설임 없이 두 손으로 양 볼을 있는 힘껏 꼬집,
아아악-!
“곽지석!”
학교 갈 준비하라니까 뭐 하는 거야!
아, 꿈 아니구나.
추억이 되었던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몇 대 더 맞고 나서야 이제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았다. 정갈하게 차려진 아침을 우물우물 씹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내가 지금 몇 학년이지…?”
“얘가 진짜 왜 이래?”
엄마는 그러면서 내 이마에 손을 올려두었다. 열은 없는데. 그럼 잠이 덜 깬 거야? 너 3학년이 잖아. 공부가 많이 힘들어? 그래도 정신을 단단히 잡아야지. 엄마는 너 믿지만 그래도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니까-. 아, 알겠어 엄마. 내가 좀 이상한 꿈을 꿔서 그래 하하하.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도망이었다.
지석아, 한 숟갈만 더 먹어! 애절한 외침을 뒤로 하고 방문을 닫았다.
3학년.
우연일까, 운명일까. 하필 돌아와도 딱 이 시기로 돌아왔다.
우리는 3년을 내내 붙어있었다. 나는 정수가 좋았다. 재밌고, 다정했으니까. 너도 그랬던 것 같다. 같은 학교, 같은 학원, 같은 동네. 내가 너한테 우린 평생 같이 함께하자는 말을 자주 했었던 때. 갑자기 네가 먼저 군대로 떠나 버려 한동안 만나지 못하기 전, 네가 아주 미묘하게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전, 왜인지 내가 오기로 우리의 관계로 붙잡고 버티는 것 같다고 느끼기 전, 마지막으로 우리가 우리였던 그 해.
내가 굳이 이 시기로 돌아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때쯤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구나. 그럼 나는 그걸 알아내야 한다. 그걸 알아내야 현재의 네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다녀올게!”
다급하게 집을 나섰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를 완전히 버려야 한다. 나는 그걸 기꺼이 해낼 생각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김정수를 위한 일이라는 일념 하나로.
숨을 헉헉거리며 뛰다 보면 늘 만나던 곳에 이어폰을 꽂은 채 서 있는 이가 보였다. 사라지지 않은 김정수였다. 시간이 흘러 현재가 되어 돌아올 그 어떤 미래에 나를 버리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김정수. 행동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출력되는 바람에 그 커다란 애를 있는 힘껏 껴안아 버렸다.
“야, 뭐해, 놀랐잖아!”
안간힘을 썼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어쩌면 아무것도 모를 네게 두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말이다. 네 존재가 이 세상에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감이 일었다.
나를 떼어내려 이리저리 몸을 비트는 데도 너를 꼭 붙들었다.
“뭔데, 또 뭔 일인데.”
한쪽 이어폰을 빼며 고개를 돌리는 그 얼굴을 피하며 답했다.
“정수, 나 오늘 진짜 이상한 꿈 꿨다?”
“또 이상한 꿈 꿨겠지.”
“사라졌어. 나한테서 네가.”
네가 편지 한 통만 덜렁 남긴 채로 죽어버렸다고, 그래서 나는 너를 잃은 상실감에 우느라 그 편지를 열어보지도 못하고 깨어났다고. 그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진짜 이상한 꿈이네.”
그러니까. 진짜 이상하잖아. 네가 날 두고 사라질 리가 없는데. 라고, 어릴 때였다면 뻔뻔하게 조잘거렸을 테지만 이제 와서 뜸이 늘어난 대답을 들으니 왜인지 자신이 없어졌다. 너는 어쩌면 이때쯤부터 떠나고 싶었던 걸까?
“나 안 떠날 거지?”
“뭔 소리야.”
“약속해. 나 안 떠난다고.”
“너 오늘 진짜 좀 이상하다?”
“아, 빨리!”
알겠어. 빨리 학교나 가. 이러다가 늦겠어. 보채는 말에 지는 척 답하며 건넨 이어폰 한쪽. 내가 이상하다고 말하면서 하는 행동이 다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그러게 언제부턴가 이런 게 다 자연스러워졌다. 누구 하나 의문을 가지지 않게 된 지가 얼마인지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노래는 언제나 정수의 취향대로 흘러나왔다. 처음엔 내가 좋아하는 노래도 끼워 넣더니 이젠 그러지도 않았다. 그게 불만이었다기보단 이젠 딱 김정수의 취향으로 범벅된 노래를 듣는 것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는 쪽이 맞았다.
노래가 네 곡쯤 흘렀을 때쯤이면 교문이 보였다. 흘깃 시선을 옮기면 너는 평상시처럼 귀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고만 있었다. 그 편지를 읽어버린 나는 이제 정수의 모든 행동을 무의식으로 인식할 수가 없었다.
너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김정수에 대해서라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단 한 가지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