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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바칩니다.

어떻해

오전 10시 즈음.

특별할 것 없이 몇 번이고 딸랑이는 문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시계를 확인하고는 괜히 계산대 앞을 서성였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문 쪽을 힐끔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고개를 들었다가 금세 시선을 거뒀다.


책을 한 권 옮겼다가 다시 제자리에 두었다. 해야 할 일은 남아 있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방울 소리가 울릴 때마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고개를 드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도 아니었다.

김정수는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괜히 영수증을 만지작거렸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점점 궁색해졌다. 시계를 다시 봤다. 아직 몇 분이 남아 있었다. 



오전 10시가, 네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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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바칩니다.

W.어떻해



-



곽지석, 아니 가온을 처음 만난 건 지난 8월 독서 모임에서였다.


처음 가입을 제안한 사람은 서점으로부터 한 블록 떨어진 거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형이었다.


“너 포함 5명이고 이주일에 한 번, 항상 내 카페에서 할 거야.”


원체 책과는 담을 쌓고 살던 형이기에 독서 모임을 만든다는 사실이 미심쩍었다.

그러나 마침 그 시기 김정수는 휴일마다 드러누워 있기만 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던 참이었으므로 아담한 규모에 장소까지 마련된 독서 모임에 흔쾌히 가입했다.


모임에서는 실명을 대신해 별명을 사용했는데 김정수의 별명은 ㅡ조금 유치하게 들릴 수 있으나ㅡ ‘떡볶이’였다. 물론 저도 별명을 이리 지을 생각은 없었다. 별명을 사용하는 줄 모르고 처음 참석한 모임에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고, 저의 차례가 무섭게 다가오고 있었고, 아침을 거른 김정수는 배가 고팠다. 그렇게 떠오른 게 ‘떡볶이’였다. 말을 하기 전 좀 어버버하기는 했지만 별로 부끄럽지는 않았다. 왼쪽엔 ‘루이 32세’가, 그 왼쪽엔 ‘킹콩’이 든든하게 앉아 있었으니까. 


“저는 어.. 떡볶이입니다! 떡볶이를 좋아해서요. 취미로 글도 쓰고 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떡볶이’의 차례를 무사히 넘긴 듯 싶었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 웃음을 참고 있는 걸 보기 전까지는.


‘가온’이 웃음을 참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입술은 앙다물어 보이지 않았고 부릅뜬 큰 눈은 천장을 향해있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 ‘서른두 살 안경잡이 루이 32세입니다.’를 듣고서는 눈 하나 까딱 안 했으면서 고작 떡볶이가 웃기다고?


“저는 사과입니다 …….”


“저는 …….”


떡볶이에 무슨 웃긴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웃음을 얼마나 열심히 참는지 이제는 울상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 박수는 열심히 치네.



-



박스 속에 정리해 두었던 책들을 하나씩 꺼내 책장에 꽂고 있었다.

책장이 생각보다 높아 곽지석이 아래쪽을 김정수가 위쪽을 맡았다.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나뉘었다. 김정수는 사다리 위에 올라서서 위 칸을 채우고 있었고 곽지석은 바닥에 앉거나 쪼그려 앉아 아래 칸을 정리했다.


확실히 두 사람이서 하니 일이 빨랐다. 가득 차 무겁기만 하던 박스는 금세 바닥을 보였고 점심시간 전에는 한쪽 책장을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석 씨 그 책 좀 올려줄래요? 아- 어어. 그거요.”


사다리 위에서 김정수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곽지석은 세 권 남은 박스를 힐끗 보더니 그중 한 권을 집어 들고 위를 향해 건넸다. 김정수의 손끝과 책 모서리가 아슬아슬하게 닿았다.



“형 오늘 점심 같이 드실래요?”

빈 박스 옆 쭈그린 곽지석이 사다리 위의 김정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제가 살게요. 형 원하는 거 먹어요.


“좋아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떡볶이 먹어요.”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 진짜 그냥 떡볶이가 먹고 싶었거든. 오늘 아침부터.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곽지석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엏ㅎ. 그래요.”


짧은 숨 섞인 소리. 방금 웃은 거지.


“방금 비웃었죠.”


“안 웃었어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


방금 들었는데요.

아니라니까요.

맞다. 내 별명 듣고는 왜 웃었어요?

앟. 안 웃었는데요?

어어 지금도 웃었잖아.

아닌데. 웃은 적 없는데요?

됐어요 떡볶이 말고 다른 거 먹어요 그냥.

앟ㅎㅎ 왜 그래요 형ㅎㅎ

.

.

.



-



모임 시간은 오전 열한 시. 그리고 탁상시계의 분침은 이미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카페엔 어리바리해 보이는 알바생 하나와 8인용 테이블에 덩그러니 앉은 김정수, 그리고 가온 뿐.

고작 네 번째 모임이었다.


김정수가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형 어디세요?]


보낸 지 30분이 지났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킹콩‘과 ’해적왕‘은 이미 잠적한 지 삼 주가 지나갔고 오늘은 형과 ’사과‘마저 오지 않았다. 별명만 남고 실체는 하나둘 사라지는 중이었다. 이거 불안한데. 모임 멸망의 단골 레퍼토리다. 사실 11시 20분부터는 체념한 상태였다. 안 올 게 훤했으니까. 그럼에도 자꾸 시계만 보게 됐다.


가온은 말없이 테이블 위에 놓인 책 표지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어색할까 봐 일부러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나 역시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30분간 이어진 정적을 깬 건 가온이었다.


“다들 좀 늦으시네요..”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그러게요. 차가 막히나.”


마음에도 없는 말. 일요일 오전에 무슨 차가 그렇게 막히겠나. 그냥 빨리 정리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30분 동안 말 한마디 안 섞고 있던 둘이 무슨 얘기를 하겠거니와 그렇다고 나 혼자 팽하고 가버릴 수도 없는 상황. 괜히 먼저 일어나면 더 무례해질 것 같았다. 그냥 다음 주에 다시 시간을 잡자고 해야겠다. 그 정도의 결론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럼”

“저희”


타이밍이 겹쳤다.


“아, 가온 씨 먼저”

“떡볶이 님 말씀하세요!”


또 겹쳤다. 제발.

같은 생각을 하는지 가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뇨아뇨, 가온 씨 먼저 말씀하세요.”


잠깐의 침묵.


“그.. 저희끼리 먼저 하고 있을까요?”

가온이 입을 열었다.


이 상황에서 면전에 대고 아니오라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군다나 상대는 이렇게까지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럽시다.


그렇게 덩그러니 앉은 두 사람 간의 독서 모임이 시작됐다. 사람들도 준비된 진행도 없었다. 테이블 위엔 두 권의 같은 책과 막 시작된 어색한 대화만이 있었다. 방금 전 대답을 들은 가온 씨의 얼굴에 티 나게 화색이 돌았다. 나는 책을 다시 펼쳤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아주 미세하게 들었다.



-



“재고 있는지 확인해 볼게요. 없으면 주문해 드릴까요?”


눈을 잔뜩 찡그린 공감 백배 표정. 허리를 전부 감싸는 앞치마를 둘둘 감은 곽지석. 귀여워 죽겠네.


손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하는 손놀림도 제법 익숙해졌다. 펜을 쥔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고개를 숙였다 들 때마다 앞머리가 살짝 흔들린다. 종종거리는 곽지석을 바라보며 김정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곽지석이 서점에서 일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돼간다. 처음엔 계산대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어색해 보였는데 이제 슬슬 적응도 한 것 같고. 왜인지 서점의 손님도 늘었다.


“형 창고에 이 책 재고 한 번만 더 확인해주실 수 있어요? 창고에서 본 것 같아서요.”


어느새 다가와 제게 꼬부랑글씨가 적힌 포스트잇을 건네고 바로 다른 손님을 응대하러 총총 사라진다.


같은 남자에게 이렇게까지 귀여움을 느껴본 적이 있던가. 그치만 어느 누구라도 이리 작고 동그랗고 하얀 사람이 똑 부러지게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미소를 참을 수 없을 터. 스스로 가게에 이런 인재를 데려오다니. 저 자신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갑작스러운 제안에 응해준 곽지석이 참 고맙…


“형 재고 확인하셨어요?”


아 맞다.


“어어 잠시만. 지금 찾으러 가.”


포스트잇 위 알아보기 힘들게 적힌 제목을 다시 노려보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



“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책 좋아합니다!”


1주가 지난 오늘도 역시 둘뿐인 자리였다. 동그란 은테 안경을 쓴 가온이 말했다.


오, 의외로 학구적인 취향. 낭만파일 줄 알았는데.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사실은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가. 이성보다 먼저 반응하는 건 늘 눈. 그러니까 첫인상 같은 것들이었다. 제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는 어떻게 봐도 글자가 빽빽하게 채워진 두꺼운 책보다는 순정 만화가 더 잘 어울리는 쪽이었다. 이를테면 그가 가진 투명하고 흰 피부라든가, 눈썹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부드러운 콧대, 맑고 커다란 눈. 정돈되지 않은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단정해 보이는 인상. 동그란 안경을 써서 그런가. 오늘따라 얼굴이 더 동그래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어, 눈동자. 원래 이렇게 맑았었나. 지금 보니까 속눈썹도 엄청 길고..


“…ㄸ덕보.”

“떡볶이 님?”


..

떡볶이?

웬 떡볶이?

맞다. 나 떡볶이지.


김정수는 그제야 자신이 가온의 얼굴을 꽤 노골적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선이 마주친 그가 진작 말을 멈췄다는 것도.


아. 황급히 시선을 돌린 김정수가 멋쩍은 듯 뒷목을 쓸었다. 손끝이 괜히 더 뜨거운 것 같았다.


“떡볶이..님은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 있으세요?”



근데 이 사람 귀는 왜 이렇게 빨갛지? 더운가? 실내는 그렇게 덥지 않은 것 같은데.

혹시 나 때문에 그런 건가 싶다가도 그건 너무 자의식과잉이라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귀가 눈에 띄게 붉었다. 안경다리 아래쪽까지.



아.


그제야 상황이 이해됐다.

떡볶이라고 부르는 게 역시 민망하구나. 역시 김정수의 별명은 생각보다 입에 올리기 곤란했다. 듣기에도 확실히 달갑지는 않았고.



“저 가온 씨.”

“떡볶이 말고 김정수. 김정수라 불러주세요.”



-



“정수 형.”


한가한 저녁 시간. 오늘도 김정수는 창가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서점 안은 온풍기의 낮은 진동음이 또렷하게 들릴 만큼 조용했다.


“형.”


최근 들어 글이 이상하게 잘 써졌다. 길게 고민하지 않아도 문장이 이어졌고 한 문장을 고치느라 같은 줄을 몇 번씩 다시 보는 일도 줄었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생각들이 손끝으로 곧장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글 쓸 맛이 났다.


“형, 글 쓰세요?”


반사적으로 노트북을 덮었다.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몸이 먼저 움직여 생각보다 소리가 크게 났다. 저도 놀랄 만큼 급한 동작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고개를 들자 곽지석이 김정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갸웃한 채였다. 뭐야. 왜 숨겨요.


“형 매일 이 시간에 쓰시잖아요.”


“전에 모임에서도 취미라고 말했었는데?”


아.

그제야 기억났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스치듯 던졌던 말이었는데. 사소한 걸 잘도 기억하네. 노트북 위에 얹힌 손에 괜히 힘이 들어갔다. 방금까지 쓰고 있던 문장이 아직 화면에 남아 있을 텐데. 그걸 떠올리자 더 열어 보이기 싫어졌다. 아무튼 못 보여주겠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곽지석한테는 절대.


“아, 그냥….”


계속해서 곽지석이 눈을 초롱하게 뜨고 서 있었다.

보여달라는 무언의 부탁 같았다.


그대로 노트북을 가방에 넣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충전기를 정리하고, 의자를 밀어 넣고, 테이블 위도 한 번 쓸어보고. 필요 이상으로 꼼꼼하게.


좀 전까지 쓰고 있던 문장이 머릿속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채 어정쩡하게 남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



[형 미쳤어요?]


글을 쓰다 말고 휴대전화를 바라보는 김정수의 미간이 그대로 찌그러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문장 하나를 붙잡고 씨름하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한숨이 먼저 새어 나왔다.


[미안하다.. 아니 나도 잘 해보려 했는데]


허 참.

그래. 이 사람 입에서 ‘독서 모임’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부터 이상했다. 독서는 무슨. 결국 진짜 목적은 연애였구만. 머리가 지끈지끈해온다. 클리셰를 피해 갈 수가 없구나. 괜히 사람만 불러 모아 놓아서 일만 벌여두고.


정리하자면 이렇다. 형이 첫 번째 모임에서 ‘사과’ 씨에게 첫눈에 홀딱 반했고, 네 번째 모임을 하루 앞둔 밤 술에 흠뻑 취한 채로 사과 씨에게 고백을 해버린 것이다. 문제는 그 고백이 완전히 엉망이었다는 것. 형이랑 사과 씨는 사실상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모임에서 말 몇 번 섞어본 게 전부였다. 그러니까 형은 사과 씨에게 일명 ‘고백 공격’을 한 셈이다. 여지도 없이 들이받은 고백. 그러니 대차게 차인 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지.


이제야 모임에 두 사람이 안 나온 이유를 알겠다. 저도 모르게 허. 소리 내어 탄식했다.


[정수야 진짜 미안하다.]


몇 번을 미안하다고 하는 건지. 솔직히 말하면 조금 웃기기도 했다. 완전히 예상 밖의 일은 아니라 적어도 숨기지 않고 말해준 건 고마웠다. 모른 척 넘어갔으면 더 화났겠지.


그리고 나도 형 없이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애. 훨씬 조용하고, 덜 피곤하고, 좀 더 지적이고.


[미안하면 어떻게 할 건데요?]

그러니까 그냥 고기 한 번 사고 퉁쳐요 형.


메시지를 보내놓고 휴대폰을 덮었다. 의자에 몸을 기대며 기지개를 켰다. 다시 노트북 앞으로 몸을 당겨 앉아 아까 끊긴 문장부터 이어서 타이핑을 시작했다.




[내가 다 사과 연락 돌렸어. 이제 제대로 진행 안 될 것 같아서 내가 책임지고 모임 파하기로 했다.]

[다음부터 안 나와도 돼.]



어,



-



문 닫기 10분 전.

곽지석이 빗자루를 세워 두고 계산대에 기대 서 있었다.


“형.”


“응.”


카운터를 정리하던 김정수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영수증을 하나씩 맞춰 접은 후 접힌 모서리를 손끝으로 눌러 다시 정렬했다. 계산대를 천으로 한 번 닦았다. 이 시간대엔 늘 비슷한 동작을 반복한다. 오늘 하루도 끝이구나.


“저 내일도 나오죠.”


“그렇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럼 다행이에요.”

곽지석이 활짝 웃었다. 말 그대로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곤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빗자루를 잡고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저렇게 좋아할 일인가. 아, 혹시 못 나올 사정이 생긴 건가.


“왜?”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빗자루 소리도 멈춘 것 같았다.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다.



“좋아서요.”


짧은 말이었다.


그 한마디에 순간 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서점 일이 좋다는 의미로 말했겠지만. 분명 그런 뜻이겠지만. 괜히 정리해 둔 영수증을 다시 만졌다. 이미 반듯하게 맞춰 둔 모서리를 한 번 더 눌러 보고 맨 위에 있던 한 장을 빼냈다가 다시 제자리에 끼웠다. 의미 없는 동작을 반복했다. 서점 문을 잠글 때까지 둘 사이에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좋아서요.


그 말이 잠들기 직전까지 머릿속을 맴돌았다. 

서점 일이 좋다는 말로는 조금 남는 느낌이었다.



-



정오에는 서점에서 떠오르는 SF 신예 작가와의 북토크 시간을 가졌다. 참여한 독자는 많지 않았지만 김정수로서는 글쓰기에 관한 조언을 여럿 들을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여운이 남아 이 작가의 책 몇 권을 주문했다. 그 후로는 하루 종일 신간 도서를 정리했다. 평소보다 주문한 책이 많기도 했고 아예 책장을 싹 교체할 생각이라 정리할 게 산더미였다. 혼자서 하면 족히 사흘은 걸릴 분량이라 책을 담은 박스와 책을 담을 박스들을 책장 앞에 가지런히 정돈해 두었다. 내일은 친동생한테 좀 도와달라고 해야지.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감을 한 시간 남겨둔 시간에는 꼭 글을 쓴다. 김정수가 하루도 빠짐없이 지키는 철칙이다. 사람이 붐빈다면 몰라도 이 시간대의 서점은 늘 한산해서 글을 쓰기에 딱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김정수는 창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한 문장, 한 문장을 눌러쓰고 있었다.


딸랑-


출입문에 달린 방울이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피부색과 대비되는 새카만 롱패딩을 입은 남자가 핫팩을 꼭 쥐고 들어왔다. 어깨를 살짝 움츠린 채였다.


“안녕하세요.”



어. 가온 씨다.


김정수는 조금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가온 씨도 이제야 자신을 발견한 듯했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졌다. 그러고는 김정수와 김정수가 입은 앞치마를 번갈아 바라본다.


“헐 정수 님이다. 여기서 일하시는지 몰랐어요. 대박.”


모임이 사라진 후로 4개월 만에 보는 가온이었다.

연락처도 정확한 이름도 몰라 따로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우연히 마주친 일도 없었고.


“등잔 밑이 어두웠네요!! 카페 바로 옆에서 일하셨었네.”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가온은 눈을 접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웃을 때마다 눈꼬리가 둥글게 말렸다.



아! 제 서점이에요.

헐 대박.

가온 씨 원래 이쪽 자주 다니세요?

아 네! 저 근처 살아서요.


출입문을 가로막은 채 몇 분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서점 안으로 아예 자리를 옮겼다. 사실 간단히 안부만 묻고 끝내도 됐지만 불현듯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서점 안 2인용 테이블에 가온이 조심스레 앉았다. 곧이어 김정수가 따뜻한 초콜릿이 담긴 머그 두 잔을 가져왔다. 감사해요. 아녜요 밖에 춥던데요.


“가온 씨는 그럼 지금…”


“아, 지석이요! 곽지석이에요. 제 이름.”

뿌듯한 듯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짓는다.


“아아. 지석 씨는 지금 학생이신 거예요?”


“네! 근데 지금은 휴학했어요.”


그러시구나. 김정수는 핫초코를 홀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색하게 눈을 마주한 채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아 그래도 다음 학기에는 복학할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일단 돈도 좀 벌고… 어… 네. 그래서 오늘도 알바 면접 다녀오고...”


민망한 듯 눈을 피한 곽지석이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머쓱한지 알바를 구하고 있다는 말을 괜히 몇 번이나 덧붙였다.


알바.

그 단어가 이상하게 귀에 남았다. 김정수는 핫초코 잔을 쥔 채 잠깐 생각이 멈췄다. 서점 안을 한 번 훑어본다. 벽에 기대 놓은 박스들, 반쯤 비워진 책장,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 안 될 분량.


뜬금없었다. 지금 아니면 다시는 못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이 사람을 문밖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지석 씨.”

“여기서 일할래요?”


“저기 보이죠.”


괜히 박스 쪽을 가리켰다.


“저거요. 혼자 다 하려니까 좀 막막해서.”


변명처럼 덧붙였다. 그게 진짜 이유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이렇게라도 곽지석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유도 없이.



-



오후 11시 반. 거실 소파에 앉은 김정수가 노트북을 열었다.

퇴근 후 샤워를 막 끝낸 뒤라 머리카락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고 수건을 대충 덮은 채였다. 따뜻한 집과 개운해진 몸. 그야말로 나른한 상태였다. 이 기분이 싫지 않아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따냈다. 캔이 열리는 소리가 조용한 거실에 짧게 울렸다.


틈틈이 써 내려가던 글들은 어느새 50페이지 분량의 워드 파일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올해 초 별다른 계획 없이 시작한 글쓰기는 생각보다 많은 걸 남겼다. 서점을 운영하며 읽는 일에 익숙해져 있던 김정수에게 쓰는 일 역시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시간 들이었다. 아직은 설레발에 불과했지만 내년에는 조금 더 진지하게 글을 다듬어 투고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조심스레 들었다.


그간 써온 문장들을 하나하나 다시 읽어 나갔다. 긴 글과 짧은 글. 매끈한 문장과 덜 다듬어진 문장. 조각난 단어들. 어색했던 글들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제자리를 찾아가며 점점 안정된 호흡을 갖추고 있었다. 쓰는 사람도 글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기분이었다.


취기가 서서히 올랐다. 몸이 늘어지고 생각의 속도는 느려졌다. 김정수는 소파에 반쯤 몸을 눕힌 채 글을 마저 읽었다. 노트북 화면이 시야 위쪽에서 희미하게 흔들렸다.



‘사랑.’


어느 순간부터였다. 글에서는 이 복잡미묘한 감정만이 읽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치만. 그러니까 이건. ‘사랑’이라는 표현 없이도 노골적으로 사랑을 말하는 글들이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모를 수 없을 만큼 또렷하게 외치고 있었다. 노곤해진다. 아니, 이건 노곤한 게 아니라.


누굴 생각하면서 썼는지 모를 리 없었다. 생각 안 하려고 했다. 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문장을 읽을수록 더 선명해졌다. 저녁마다 창가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 그때마다 떠오르던 얼굴. 이 감정이 혼란인지 사랑인지 구분하려다 실패했다. 애초에 구분할 수 있는 걸까. 아니다. 일단 자자. 그냥 좀 자야겠다. 내일 생각하자. 서둘러 손을 뻗어 남은 맥주를 한 번에 넘기곤 눈을 감았다.



-



“좋아서요.”


그 한마디가 끈질기게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



술기운은 점점 몸을 감싸왔지만 이상하게도 정신만은 또렷해지는 듯했다. 생각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한 방향으로만 흘러갔다. 떠올리지 않으려 할수록 더 분명해졌다. 방금 읽은 문장들과 지워지지 않는 표현들. 애써 다른 의미를 붙여보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언제부턴가 쓰던 글들 하나하나가 모두 곽지석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더는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직접적인 이름은 없었지만 분명했다. 꼭꼭 삼켜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들을 김정수는 문장으로 대신 흘려보내고 있었다. 서점의 창가 자리에서, 매일 저녁.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곽지석을 향한 러브레터를 쓰고 있었다.


끝까지 부정하던 사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김정수는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망했다.”


잠 못 드는 밤, 두 손을 얼굴 위에 얹은 김정수가 작게 읊조렸다.



-



김정수는 곽지석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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