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카루스 딜레마
해팔2
이카루스는 아마 질식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아마 얼어 죽었으리라.
적어도 날개가 녹아서 죽었다느니 하는 말은 다 거짓이란 것은 확실하다.
태양은 뜨겁다.
그건 누구도(적어도 지구에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하늘 위로 올라가면, 창공을 가로지르면 산소는 부족하며 온도 또한 점점 낮아진다.
그럼에도 태양은 뜨겁다.
그래서 편지를 썼다. 조잡하게 신문지 오려 붙인 다소 협박 편지 같은 것이었지만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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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정수가 입대하게 된 건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아주 어릴 땐 그저 정부군 정복이 멋있어 보여 군인을 꿈꿨던 것 같기도 했지만 뭐, 그건 이젠 흐릿한 기억일 뿐이었고 지금은 그저 위험하지만, 꽤 많은 월급 따박따박 받을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랬다.
"충성,"
제 이름 불리면 관등성명 먼저 튀어나왔던 병아리 시절 지나 능글맞게 경례 올리는 정도가 되고서야 김정수는 군대가 체질이라는 말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위계질서에 따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고 극도로 정돈된 생활은 안정 그 자체였으니까. 그냥 적당히 능글거리며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 정수는 내륙 수비군 중사인 지금을 유지하고 싶었다.
"김정수 중사, 전방 생각은 없나? 잘만 하면 상사에 원사까지 금방 달 수 있을 텐데. 아니면 아직 어리니 사관학교 들어가는 것도 늦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러니까 이 말은 절대 김정수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다 자기를 생각해서라는 말은 알았지만 정수 본인은 절대 위험해질 생각 없었으니까.
"네? 잘못 들었습니다? 아 중대장님 저는 그럴 깜냥 안 되는 거 아시잖습니까."
"깜냥이 안되기는 무슨, 너 임마 2년 만에 중사 다는게 쉬운 줄 아냐? 너 재능 있어. 내가 아까워서 그래. 중사 월급 빤히 아는데. 아무튼 잘 생각해 보라고. 요즘 젊은 애들 사이에선 그게 유행이라며. 파이어족인가 뭔가 하는 거."
"네네, 알았으니까 중대장님은 가서 쉬십쇼. 근무 서는 거 방해하지 마시고요."
"이 새끼도 가만 보면 내 과라니까. 수고하고, 내가 한 말 진지하게 생각해 봐. 내가 진짜 아까워서-."
그렇게 중대장님 꼰대라며 타박하곤 벽에 기대어 선다. 한겨울치고 따뜻한 날이었다. 적당히 선선한 바람과 그리 뜨겁지 않은 태양에 농땡이 치기 좋은 날이라 생각하던 정수의 평화를 깬 건 경찰 쪽에서 온 무전이었지.
"R- 6지구입니다. 지금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언덕 위에 학생인지 뭔지 청년 하나가 날겠다고 설치고 있어요. 이거 한두 번도 아니고 군법에 위배되니 나는 건 꿈도 꾸지 말라고 몇 번을 타일렀는데…. 아무튼 와서 좀 도와주셨으면 해서요."
"아 예, 알겠습니다. 한 명이면 충분하겠습니까?"
"예,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 크리스마스 축제다 뭐다 해서 경찰 인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비행 문제는 군 담당이라. 아무튼 얼른 와주셨으면 합니다. 저 녀석도 정신 차려야죠."
도착한 언덕에서 보이는 풍경은 그저 비현실 그 자체였다. 낡은 코트 하나에 의지한 채 소중하게 품에 안은 흰 날개는 그 어떤 새의 것과도 비견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니, 아름답다는 말로 부족했다. 그건 분명 신화에 나오는 천사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목숨 걸 가치가 있어 보였다는 말이다. 거기에 정수는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그저 언덕 아래서 조용히 그가 날개를 펼치고, 소중히 날개를 쓸어내리더니 등에 매달곤 망설임 없이 뛰어나가는 그 일련의 동작을 온전히 눈에 담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수는 눈이 아주 좋았고 찰나의 순간 동안 그의 표정이 슬로우모션처럼 지나갔다. 5초, 그래 5초였다. 단 5초간의 비행에서 그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웃고 있었다.
“미친….”
그 순간만큼은 축제의 음악도 주홍빛 노을도 그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김정수는 태양을 향해 나는 사람은 태양보다 빛난다는 사실을 날아오르는 곽지석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 무엇보다 기구한 주제에 무엇보다 숭고한 꿈을 향해 날아오른다는 것은 정수 자신에게서는 있지 못한 무언가였기에. 감히 이 감정을 사랑이라 정의하지 못하고 그저 동경이라 정의할 수밖에 없었다. 바보같이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이카루스를 사랑하게 되어 안정된 삶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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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의 비행의 끝은 늘 추락이었지만 지석은 아무래도 행복했다. 고작 5초지만 세상을 발밑에 둘 수 있었으니까. 사실 거창한 이유에서 시작한 비행은 아니었다. 그저 하늘을 날아보고 싶었다. 그게 불법임은 알았지만 그래도 지석의 꿈은 하늘에 있었다. 깃털을 줍기 위해 새들을 쫓기도 하고 이것저것 조잡하게 붙여다가 날개랍시고 언덕에서 뛰어내리다 다치기도, 경찰서에 잡혀가기도 몇 번. 그래도 그냥 좋았다. 날개가 형태를 갖춰가고, 뛰어내리던 것이 점차 비행의 형태를 갖춰가는 것이 퍽 보람 있었거든.
"뭐야, 이거."
그러니까 지석의 차고 앞에 빵과 우유, 흰색 편지봉투 보고는 그저 당황뿐이었다. 나는 것이 죄악인 이곳에서 나에게 올 편지라곤 협박이나 정신 차리라는 말들, 그도 아니면 차가운 현실을 알리는 고지서들뿐이었으니까.
⌜네 비행을 봤어
네 표정도
그게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
앞으로도 비행해 줘
나를 위해서라도⌟
그거 보고 곽지석은 웃음만 나왔다. 처음으로 제 꿈을 응원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건 생각보다 더 벅차오르는 일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거든. 비록 신문 조각 오려 붙여 만든 협박 편지 같은 편지였지만 그거라도 충분했다.
"하여간 웃기네, 이런 일도 다 있고. 간 큰 인간이 또 있었어."
이 나라에서 비행은 그걸 돕는 것만으로도 군법으로 회부될 만큼 금기시되어 있었으니. 대신 자기는 유당불내증 있어서 우유는 못 먹는데 그거 말곤 너무너무 고맙다는 포스트잇 하나 남겨놓곤 다시 꿈속으로 빠져든다. 날아보겠다는 달콤한 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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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서 하늘을 본다는 건 사치였다. 고층 빌딩이 만들어낸 그늘은 습했고, 사람들은 땅만 보고 걸었다. 정부는 안전과 보안을 이유로 개인의 비행을 금지했다. 하늘은 오직 군용 드론과 감시 위성, 그리고 고위 관료들의 전용기만을 위한 길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제 몸뚱어리 하나 띄우겠다고 덤비는 꼴이라니.
정수는 망원경 렌즈 너머의 청년을 관찰했다. 곽지석. 신원 조회는 진작 끝났다. 전과 없음(비행 시도 훈방 조치 제외), 가족 없음, 직업은 폐차장 아르바이트.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는 식인가.
"으악!"
지석이 또 굴렀다. 이번엔 왼쪽 날개 지지대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정수는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초소 난간을 잡았다. 아프겠다. 저러다 어디 하나 부러지지. 당장이라도 확성기를 들고 멈추라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그건 곧 체포를 의미했다.
지석은 절뚝거리며 일어나더니, 부러진 날개를 제 자식인 양 쓰다듬었다. 무릎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데도 그는 날개를 먼저 걱정했다. 그리고 다시 웃었다. 정수는 그 웃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밥이 나오는 것도,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까지.
하지만 밤이 되고 근무 교대를 할 때쯤, 정수는 인정해야 했다. 회색빛으로 죽어있는 이 도시에서, 땀과 피를 흘리며 살아 움직이는 건 저 무모한 이카루스 하나뿐이라는 걸. 그 생동감이, 죽은 듯 살아가던 정수의 심장을 묘하게 건드렸다.
⌜나의 이카루스가 되어 줘서 고마워
우유는 미안
네 5초가 10초가 되고 1분이 되는 그 순간을 함께 할 수 있게 해줘
멀리서 지켜볼게⌟
정수는 생활관 휴게실 구석에 앉아 신문을 펼쳤다. 가위질 소리가 사각사각 울렸다. 지나가던 동기가 웬 스크랩이냐며 물을 때 정수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 좀 보려고. 하며 얼버무렸다. 하지만 정수의 가위 끝이 쫓는 건 세상 돌아가는 꼴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오늘 자 신문 1면 헤드라인: <반군, 국경 지역에서 비참한 최후>.
정수는 여기서 '비'를 오려냈다.
사회면 기사: <고위공직자 뇌물 수수, 행방 묘연>.
여기서 '행'을 오려냈다.
광고란: <당신의 꿈을 위한 최고의 선택>.
여기서 '꿈'을 오려냈다.
[비행을 꿈꾸는 너에게]
아이러니했다. 폭력과 비리, 사고와 죽음으로 도배된 신문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들만 골라내야 했다. '사망', '체포', '금지' 같은 단어들 사이사이에 숨겨진 '사랑', '희망', '날개' 같은 단어들을 채굴하는 작업은 마치 지뢰밭에서 꽃을 찾는 것과 같았다.
풀칠한 손끝이 까맣게 물들었다. 정수는 삐뚤빼뚤하게 완성된 문장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군인인 자신이, 불법 비행자에게 보내는 응원이라니. 이게 들통나면 영창으로 끝나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는 이 짓을 멈출 수 없었다. 낮에 망원경으로 본 지석의 멍 든 팔뚝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그는 편지봉투 안에 PX에서 산 소염진통제 패치를 몰래 밀어 넣었다.
⌜오늘 봤어
예쁘더라. 웃는 것도 나는 것도.
다친 데는 없지?
다쳤으면 발라.⌟
지석은 작업실—사실은 버려진 차고—한구석에 쌓인 편지들을 보물단지처럼 모아두었다. 처음엔 섬뜩했다.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거니까. 하지만 그 시선엔 악의가 없었다.
어느 날은 작업실 문틈으로 따뜻한 캔 커피가 굴러들어 왔다. 또 어느 날은 찢어진 날개 천을 기울 수 있는 튼튼 한 방수포가 놓여 있었다. 군용 천막에나 쓰일 법한 질긴 천이었다.
"군인인가?"
지석은 어렴풋이 짐작했다. 이 근처는 군사 제한구역이니 일반인은 들어올 수 없다. 나를 잡아가야 할 사람이 나를 돕고 있다. 그 배덕하고도 위험한 친절이 지석은 묘하게 안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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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3일 전. 정수는 자신의 방한복 안감을 뜯어내고 있었다. 보급관에게 걸리면 경위서를 써야겠지만, 밤공기가 칼날처럼 매서웠다. 지석이 입고 있는 그 얇아빠진 코트로는 상공의 추위를 견딜 수 없을 게 뻔했다.
바늘에 찔린 손가락을 입에 물며 정수는 생각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때, 행정반에서 호출이 떨어졌다.
"전방 주시 태만 관련해서 상부 지시가 내려왔다."
중대장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기간, 테러 위협이 감지됐다. 미확인 비행 물체는 경고 없이 즉각 격추한다. 예외는 없다. R-6 지구, 특히 김정수 중사. 자네 구역에서 장난질 치는 놈들, 이번엔 봐주지 마. 실탄 사용 허가한다.“
"……실탄 말입니까?"
"그래. 머리를 쏘든 날개를 쏘 든 떨어뜨려. 만약 놓치면, 그 책임은 네가 진다. 옷 벗을 각오 해.“
회의실을 나온 정수의 주머니 속엔 미완성된 가죽 모자가 들어 있었다. 차라리 가서 말할까. 죽는다고. 이번엔 진짜 죽는다고. 가서 멱살이라도 잡고 말려야 하나. 하지만 정수는 알았다. 지석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비행이 목숨보다 큰 의미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그날 밤, 정수는 밤을 새워 모자를 완성했다. 그리고 가장 잔인하고도 다정한 편지를 썼다.
⌜ 크리스마스이브에 비행할 거란 쪽지 봤어.
정말 성공할 것 같아.
하지만
그날은 안 된다고 하면 내가 이기적인 걸까?
너도 알잖아.
겨울의 상공은 더없이 춥다는 걸
날아봤으니 알 거잖아.⌟
지석은 늘 새벽녘 문 앞에 있는 쪽지를 기다리게 됐다. 사실 어쩌면 그와 함께 놓여있는 따뜻한 빵과 주스를 기다리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 관심이 마음에 들었다. 다만 이브가 아니면 기회가 없었다. 경찰이든 군이든 크리스마스 전야제로 정신없을 그날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거든. 날개가 녹아 이카루스가 되든 날개가 얼어붙어 추락하든 좋으니 그저 저 창공을 날고 싶었으니까. 이것만큼은 익명의 후원자(빵과 주스 조금일 뿐이라도 어쨌든)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양보 되지 않는 것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원자를 미워할 수 없던 건 편지에 동봉된 군용 방한복 안감 뜯어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두툼한 비행 모자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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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된 이브엔 눈이 내렸다. 비행하기 좋은 날은 아니었지만, 더없이 낭만적인 날이었으니까. 지석은 커다란 날개 짊어지고 언덕을 올랐다. 손이 어는 것 똑똑히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오늘은 실패할 걱정보다는 성공할 기대가 더 컸기에. 머리에 둘러쓴 비행 모자가 퍽 따뜻했다.
"얼어 죽지 않을게. 이카루스처럼 추락하진 않을게."
허공에 작게 중얼거리곤 보이지 않겠지만 언덕 아래서 저를 보고 있을 눈동자를 잠시 습관처럼 찾아보다 이내 날개 달고 날아오른다.
그리고 정수의 귀에 날카로운 무전이 꽂힌다. 더없이 잔인한 무전이.
"R- 6지구 미확인 비행물체 발견. 즉시 격추 바람. 반복한다. 미확인 비행물체 발견. 즉시 격추 바람."
서치라이트가 금방이라도 지석 찾아낼 듯 매섭게 언덕 훑는다. 정수는 다급히 처소로 돌아가 서치라이트 조종간 잡은 동료의 제어판에 커피 쏟는다.
"아 미안, 진짜 미안."
"뭔데, 김정수 뭔데. 야 지금 비상사태인데 생전 안 하던 실수를…!"
"미안 미안,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나한테 넘기고 가서 쉬어라."
"아니, 뭔 소리야. 지금 가서 쉬어야 하는 건 너 같은데? 너 상태 안 좋아 보여."
"아니 내가 알아서 한다고! 내가 너보다 서치라이트 잘 다루니까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생전 처음 있는 김정수의 신경질에 자리 피한 동료에 그제야 혼자 되고 마음 놓고 서치라이트 지석과 멀어지게 할 수 있었다. 정수가 지석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그뿐이었으니까.
"제발…. 제발…. "
그저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서치라이트 돌리다 지석의 비행이 끝나간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그제서야 서치라이트 지석에게 비춘다. 그 빛이 길이 되어 지석의 비행이 안전히 끝나길 빌며.
"나, 날았어. 나 진짜로 날았어!"
그 길의 끝에서 지석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찾던 태양은 그저 나를 위해 얼어붙은 땅에 발 붙이고 선 저 사람이었다는 것을. 승리감에 고취되어 눈앞의 사람이 군복을 입고 있다는 것쯤은 보이지도 않을 만큼 행복해서 나보다 더 벅찬 얼굴을 한 정수에게 가 안겼다. 눈밭에 발자국이 찍혔고, 정수는 지석의 뺨을 감싸 쥐고 지석을 훑었다. 행여나 생겼을지 모르는 다친 곳을 찾느라 눈이 바쁘게 굴러가다 이내 지석의 말에 손을 멈춘다.
"네 말이 맞았어. 하늘은 엄청 춥더라."
자신의 방한복 지석에게 덮어준다. 여전히 낡은 코트뿐이라 언 몸이 신경 쓰였고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여전히 눈이 내렸고 종이 울렸다. 정수는 지석을 부축해 일으켰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긴장이 풀린 탓인지 지석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걸을 수 있겠어?"
"아니,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너무 좋아서 그런가 봐."
"핑계는."
정수는 툴툴거리면서도 자연스럽게 등을 내밀었다.
"업혀. 초소까지 데려다줄게. 거기 가면…. 따뜻한 코코아 있어. 우유 안 들어간 거."
지석이 정수의 넓은 등에 조심스럽게 몸을 기댔다. 군인의 등은 딱딱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포근하고 안락했다. 정수가 천천히 눈밭을 걷기 시작했다. 뽀드득, 뽀드득.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눈 위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하나로 겹쳐 찍혔다.
지석은 정수의 어깨너머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달빛이 비치고 있었다. 더 이상 하늘이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를 알리던 종이 멈추고 정적이 이어지려던 찰나-
"메리 크리스마스- "
정수의 발걸음이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이어졌다. 귓바퀴가 붉어져 있었다.
"…. 그래. 너도."
하늘을 날고 싶었던 소년은 이제 땅 위에서 가장 안전한 비행을 하고 있었다. 그를 떠받친 단단한 등이 있는 한, 이카루스는 결코 추락하지 않을 것이다.
"있잖아- 내가 생각해 봤는데 정수가 내 태양인 것 같아."
퍽 다급한 눈빛으로 가슴팍 좇더니 이내 알았다는 듯 시선 올려 눈 맞추고 대답하는 것에 정수의 심장 내려앉는다. 그제야 정수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동경이라 치부하고 덮어놨던 감정이 사실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내 태양이 너인 거야. 넌 계속 태양을 따라가. 난 여기서 너를 기다릴 테니까."
이카루스는 태양을 좇는다. 가장 뜨거운 것을 향해 가장 차가운 항해를 해나간다. 태양을 향해 날아간 것 또한 도전이라는 네 지론을, 그저 춥지 않게 안아주는 것밖엔 못 하더라도, 신문지 오려 붙인 조잡한 편지나 따뜻한 빵 정도뿐이라도 그저 응원하기로 했다.
지석이 환하게 웃었다. 5초간의 비행에서 보여주었던 그 표정이었다. 아니, 그때보다 더 눈부셨다. 정수는 지석의 낡은 코트 위로 자신의 옷을 한 번 더 여며주며, 그를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서로의 심장 박동만이 유일한 온기였다.
하늘을 날고 싶었던 이카루스는 결국 땅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날개가 녹아서도, 얼어 죽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중력의 품이 그리워서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나의 이카루스."
정수의 낮은 속삭임이 눈발에 흩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그러나 가장 따뜻한 착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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