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히 고해하여 (상)
루켄
※ 감히 고해하여 (상)편에는 폭력, 살인, 신체 훼손, 자살, 종교적 폭력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벽은 쿰쿰했다. 돈 뜯는 일도 업은 업이라고 꼴에 출퇴근도 직책도 확실한 사무실 내부에 저 혼자만 남은지도 벌써 두 시간 반쯤이 지났다. 김정수는 태우지도 않을 담배를 손가락 마디에 꽂아 넣은 채 애꿎은 숨만 거칠게 내뱉었다. 이상하게 빡이 치면 손에 땀이 흥건했다. 그 뜨겁고 축축한 땀 때문에 담배 필터 속까지 김정수의 향이 지독하게 배어서 담배의 향을 이겼다. 김정수는 별 걸 다 이긴다.
두 시간 반. 발코니 난간에 아슬하게 기대어 서서 더 아슬하게 바람에 휘청이는 종이를 꼭 쥐었다. 넓고 성의 없는 A4용지 한 장에 달랑 적혀있는 손글씨 몇 줄은 읽을 수록 더 어려웠다. 마치 암호 같았다.
기타 줄은 이제 그만 보내도 돼요.
그 문장이 문제였다.
기타 줄을 그만 보내셔라....
세 달만에 보낸 편지 치고 분량이 적은 것도 흠이라면 존나게 흠이었다만, 사실 그딴 영역에서는 이미 통달한지 오래다. 근데 딴건 몰라도 세 달만에 온 편지에 적힌 말이 꼭 이딴 식이어야 했을까. 다른 새끼도 아니고 네가.
답답했다. 한숨을 몰아쉬는 일도 질린다. 이 바닥에서 네가 너인 걸 아는 년놈들은 아무도 없는데. 네가 어디서 뭐 하고 살고 있는지, 아니지. 살아있다는 걸 아는 놈도 딱 나 하나 뿐인데. 근데 그런 내가 너한테 이딴 편지를 받고도 당장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네. 진짜 아무것도 없네. 별걸 다 이겨대는 김정수의 유일한 허점. 딱 한 놈만큼은 평생을 주고도 못 이겨먹었다.
그래서 오늘도 감히 위험을 무릅쓰고 편지했다.
그럼 어쩔까. 이제 난 뭘 해 줄까.
숨어살겠다며. 그렇게 살게 해달라며.
그래놓고 바깥으로 소리 다 처새어나가는 기타가 당장 취미인 너를,
그런 너를 내가 어디까지 살펴야할까, 지석아.
감히 고해하여 (상)
w. 루켄
아버지는 지역을 넘어 반도의 유명한 대가리였다. 어느 깡패새끼 앞에 서든 이름을 들으면 고개를 처박거나 혀를 내두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심지어는 그 이름만 꺼냈을 뿐인데 갑자기 다리를 후들거리는 놈도 간혹 있었다. 그런 아버지는 아주 지독하게도 사랑꾼이었다. 꼴에. 그리고 그걸 열여덟 먹기까지도 몰랐다. 자는 제 어깨를 발로 툭툭 치면서 낳아뒀더니만 막상 길러보니까 좆만해서 어쩌냐며 혀를 찰 때 그걸 눈치챘어야 했다. 뒤에 딸린 욕짓거리와 지 몸뚱아리 하나랑 여자 하난 잘 붙들고 살라고 사지 멀쩡한 사내새끼로 낳았더니만- 하는 푸념에 좀 더 집중했어야 했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날 말고도 눈치 챌 기회는 많았다. 언젠가부터 아버지는 본인 목숨과 어머니의 인생을 위해 대가리가 된 듯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좋은 남자이자 좋은 남편이 되려고 아주 별짓을 다 했다. 자기같은 깡패 새끼랑 살면 앞으로가 더 위험하다는 말로 제 어머니를 여름날 새벽길에 내쫓았고, 그딴 등신같은 짓만 골라 하는 주제에 끝까지 처자식 잘 챙기는 아비 행색을 하려고 늘 반듯한 정장을 입고서 매일 아침 학교 앞까지 데려다 주셨다. 물론 그게 다였다. 정말 전부였다. 아버지는 내 학교가 흰 벽돌의 상고가 아닌 그 옆에 있는 빨간 벽돌의 과학고라는 것도 삼 년 내내 몰랐다. 음... 관심이 없었다기보단, 지키려는 게 많았으니까 멀쩡한 일상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병신이었다.
사실 사람 패고 다니는 주제에 뭐가 그리 바쁜가 싶었는데, 저도 제법 크고 나니까 짐작가는 것들이 늘었다. 대가리 총량의 법칙. 사람을 팬다는 건 그만큼 처맞을 수도 있다는 뜻. 그리고 대가리가 맞는다는 건 그 아래 달린 모든 건 처맞아도 싼 존재가 된다는 것. 아마 아버지는 두 어깨가 무거웠을 것이다. 지킬 게 많은 인간은 대게 그렇다.
그래서 나는 지키고 싶은 게 없는 삶이 가장 완전한 삶이라고 믿었다. 누가 건드려도 잃을 게 없는 인간이 가장 강한 인간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이 믿음이 곡해였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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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바람이 차가웠다. 며칠 내내 비만 퍼부어대더니 모의고사 날이라고 비도 안 왔다. 지석은 이렇게나 꼴사나운 하늘의 배려에 성은이 망극해, 부러 두 정거장을 먼저 내려서 집까지 좀 걸었다. 속이 뉘엿뉘엿 올라올 듯해도 끝까지 바닥만 보고서 천천히 걸었다. 그 덕에 낙엽의 눅눅한 정도까지 측정이 가능했다. 물론 이런 찐따같은 취미도 집앞 골목에 들어서서는 멈췄다. 그날은 멈추고 싶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집 대문이 열려있었다. 걸음이 빨라졌다. 그래서 자꾸만 걸음이 꼬였다. 평생을 쌔빠지게 튀는 짓만 골라하며 살아온 주제에, 제게는 늘 튀지 말고 조용히 살자고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신조. 그 신조에 따라 집의 대문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손님이 오나 늘 굳게 닫혀있었다.
대문은 늘 닫혀 있어야 했다. 조용해야 했다.
열려있는 대문 틈새로 본 마당 꼬라지에 지석은 숨쉬는 법을 잠시 잊었다. 마당에 널브러져있는 이름 모를 여자의 코트가 잔디와 비슷한 색이었음에도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집 마당 초록색 잔디에 이름 모를 사내들이 죄다 피떡이 된 채로 쓰러져있던 날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직감했다. 문을 열면 여자가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 여자가 어떤 꼴로 널브러져 있든 절대 놀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문고리를 젖히는 순간에 낙뢰보다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붉은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며 처참히 지석의 큰 두 눈을 가득 채웠다. 아버지의 허황된 눈빛이 연하게 스미는 햇살과 강하게 겹쳐 제 뇌를 관통했다. 아버지의 눈동자는 차마 닫히지 못한 커튼 틈으로 눈치없이 침입한 햇빛과 정통으로 부벼대고 있는 주제에 깜빡이지도 빛나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목이 반쯤 썰려서는 눈 뜬 채 죽었다. 엎어진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눈은 보랏빛으로 충혈된 주제에 허연 눈물을 흘렸다. 아마 감정의 색깔인 듯 했다. 지석은 길게 내려오는 앞머리를 연거푸 거칠게 쓸어넘겼다. 숨을 쉬는 법을 잊어서인지 아니면 오늘 모의고사 내내 피곤했어서인지 갑자기 폐가 제멋대로 히끅이더니 눈에서는 눈물을 줄줄 흘려댔다. 저 꼬락서니로 있는 누구와 달리, 흐르는 눈물에 의도는 없었으니 아마 지석의 눈물은 생리현상이었다. 생각해보면 지석의 눈은 자주 눈물을 흘리는 체질이었다. 답지 않게 눈물이 쉬이 그치지 않았다. 눈물이 그치지 않는 것이 웃겼다. 꼴사납게 뒤집힌 아버지와 그 옆에 엎어진 여자. 지석은 그 옆에 무릎을 감싸안고 앉아서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경박스러웠고 역겨웠다. 그래서 더 열렬히 처웃었다.
그 다음에는 닫히다 만 거실의 커튼을 마저 닫고 불을 켰다. 형광등이 천천히 두어 번 깜빡이다가 이내 밝게 불을 밝힌다.
"그러게, 전등 좀 미리미리 갈아두라니까."
마당에 시끄럽게 널브러져 있었던 올리브색 코트의 주인, 그 여자의 정체도 엎어진 그 태가 제대로 보이자마자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왜 돌아온 거야 진짜..."
곽지석이 중학교 들어갈 때 본인은 집을 나갔던, 제발 나가라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서 진짜 자식까지 버리고 간 어머니가 다시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돌아오자마자 돌아가신 게 좀 안쓰러웠다.
썰리고 엎어지고 흘리는 남녀에서 시선을 거둔 지석은 그제야 차분히 집 내부를 살폈다. 딱히 뭐가 털린 건 없는 것 같았다. 차라리 털렸으면 어땠을까. 멍청한 사랑 때문에 아버지가 휘청이는 새를 타 반도 대가리 지망생 중 하나가 아버지의 목을 친 듯했다. 깡패밥 열아홉 인생 덕에 시나리오가 저절로 읽혔다. 상황 판단이 끝나니 이제야 숨이 차분히 쉬어진다. 차가운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게 영 불쾌했다. 어쩌다 가만히 당하기만 했을까.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무슨 의미인 걸까. 약점일까 허점일까.
둘을 보면 자꾸 어리석은 것들이 읽혔다. 둘은 손을 붙인 채 죽었다. 이런 걸 곱씹으면 겨우내 멈췄던 웃음이 다시 슬그머니 샜다. 자기 집 거실에서 눈 뜨고 죽은 아버지와 그날 이후로 한 번도 볼 수 없었지만 태만 보고도 단박에 알아채버린 손 붙들린 채 죽은 어머니.
맹세컨데, 지석의 열아홉 인생 중 가장 다이내믹한 하루이지 않을수가.
지석은 당장에 이 꼴사나운 광경을 처리해 줄 인물이 필요했다. 성인 둘을 처리하기에 지석은 작고 힘이 없었다. 게다가 할줄 아는 건 공부 뿐인 전혀 평범하지 않은 곽지석에겐 이런 비밀까지도 눈 감아줄 친구가 존재할리 없다. 지석은 아직까지도 송글송글 맺혀 흐르는 피를 내려보다가 아버지의 자켓 주머니를 뒤져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집 밖으로 나갔다. 담배 아깝게. 이건 젖으면 안 되지.
혹시라도 어느 날 아버지가 죽으면 넌 집 근처에 있지도, 거기로 다시 돌아오지도 말라던 언젠가의 아버지를 무시했다. 그 말에 힘이 있고 싶거든 내가 보는 앞에서 죽지는 마셨어야지.
"어차피 살아남은 내가 더 강한 거 아닌가."
잘근잘근 씹어대며 피우는 담배 때문에 어설프게 새는 발음이 불편한데도 자꾸만 혼잣말이 나왔다. 지석은 본인 폐부에 애매히 걸친 듯한 담배 기운과 얽힌 성인 둘의 피가 몸밖으로 죄다 빠져나오기 전까지는 집에 도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냥 좀 계속 걸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집 근처 골목 어귀에서 놈을 만났다.
"야"
하필이면 이런 날, 하필이면 이렇게나 비죽한 톤으로 말을 걸어오는 등신이라니.
"네?"
고개를 드니 의외의 인물이 사탕을 쪽쪽 빨아대며 저를 야렸다. 옆집 옥탑에 혼자 세 들어 사는 또래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모르는 인물이었다. 누구세요. 저 아세요? 알아도. 왜 다짜고짜 반말이세요. 이제 좀 마음 다잡고 집으로 기어들어가려는 사람을 처붙들고 지랄이세요.
살의도 예의도 없는 상호 간 삐딱한 시선이 몇 번 오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이 다시금 말을 붙였다.
"왜 쪼개."
아까부터 봤는데 계속 미친새끼처럼 허허실실 처웃잖아, 네가. 싸가지 없는 말본새와 달리 어투는 나긋나긋했다. 아아, 태생이 다정인 호구 새끼들은 딱 질색인데. 놈은 더 안 봐도 그런 부류인 듯 싶었다. 그래서였다. 매미도 입 꾹 닫고 소리내지 않던 어느 구월의 새벽, 길게 이어지는 정적을 깬 건 의외로 곽지석이었다.
"힘 세요?"
놈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더 무어라 말을 이을 생각이 없던 지석이 발걸음을 돌려 다시 집으로 향했고, 그걸 따라나선 건 힘 센 호구의 자의였다. 처음부터 다 알았으면서 순진한 척 처묻는 변태새끼. 호구는 꼴에 다정만 하지는 않았다. 부모 죽인 대가리 지망생, 그거 반도의 대가리는 못 되겠다. 옆집 옥탑 호구도 눈치챌 정도로 발자국 남겨가면서 빚어내는 작품이면... 그건 실력이라고 칭하기도 실례지.
상황이 우습게 흘러간다. 죽은 부모와 남겨진 저, 어설프게 떠난 살인자 깡패새끼와 모든 걸 다 관전한 듯한 옥탑 호구. 제가 피식하고 웃으면 또 다시 질문이 들렸다. 남이 처웃는 이유가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이렇게 집요하게 물 어대는 거지. 정말이지 특이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본인은 힘 세냐는 내 물음에는 답하지도 않았으면서.
놈은 아무 말 없이 집까지 따라오더니, 말도 없이 부엌과 차고에 있는 기름을 모조리 털어와서 마구 뿌려댔다. 그러더니 그제야 대답했다.나 힘 별로 안 세. 어떻게 둘을 옮겨. 그냥 태울게. 저는 무어라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무엇이든 깔끔하게 처리해 주겠다는 저 태도가 신기했다.
"안 챙겨도 돼?"
챙길 거 없다는 대답을 똑똑히 들었으면서 자꾸만 다시 물어보는 이 집요함이 사람 기분을 계속 갉아댔다. 아주 좆같지만은 않았고, 대충 뭣같았다. 지석은 대답이 짧아서 그런가 싶어 이번엔 길게 답했다.
"뭐가 소중해 봐야 아쉬운 줄도 알죠."
분명 못 알아들을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놈은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더니 본인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하나 건넸다.
"가서 먼저 씻고 있어. 너한테 냄새 존나 나."
심지어는 당황해서 네? 하고 되묻는 지석을 빤히 보더니 구체적으로 어떤 냄새가 나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게 궁금해서 되물은 게 아닌데. 그리고 그게 궁금해서 되물은 게 아니라는 걸 본인도 알 텐데. 호구와 고아 사이엔 자꾸 알아도 기꺼이 모르고 마는 게 생기는 만큼, 몰라도 금방 알아내고 마는 것도 생겨났다. 백이십퍼 확률로 놈이 방금 건넨 열쇠는 굳이 되묻지 않아도 그 옥탑방의 열쇠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네가 불태운 집 아들이 무슨 마음을 품었을 줄 알고 집 키를 막 건네줘요?"
"... 뭐 가져본 게 있어야 잃는 기분도 알지."
뭐에 맞은 듯 눈이 빠르게 깜빡여지더니 고개가 절로 두어 번 끄덕여졌다. 계산과 납득이 끝난 지석은 서둘러 신발만 다른 흰색 운동화로 바꿔신고 나갔다.
대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회색 트레이닝 바지 주머니를 뒤져서 찾아낸 라이터로 칠해둔 기름길을 따라 불을 질렀다. 집이 밖에서 보던 것보다 더 크네. 시간 좀 걸리겠다. 신발장 앞에서 시작한 불길이 차분히 소파까지 옮겨갔을 즈음 김정수는 집 밖으로 나와서 반대쪽 바지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열을 셌다. 수를 다 세고 났더니 커튼으로 꽉 막힌 유리창 뒤로 새어나오는 붉은 빛이 점점 강해진다. 그제야 쥐고있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번쩍이는 커튼 뒤 불빛과 동시에 피어오른 건 라이터 불꽃이 아닌 헛웃음이었다. 씨발... 나 아까 라이터 던지고 나왔지. 허탈하게 웃다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뭐에 홀려도 제대로 홀렸지. 집 가서 샤워나 해야지. 등신, 등신아. 이상하게 낮부터 몽롱하게 빠져있던 정신머리에 셀프로 쌍욕을 좀 뱉고는 녀석이 씻고 있을 제 집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탄내나는 주택에서부터 걸음을 떼려는 순간, 갑자기 제 뒷통수에 뭐가 꽂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오른쪽 눈이 의지와 관계없이 꿈뻑여졌다.
"어떤 씹새끼가 진짜...."
골이 아려올 때쯤 뒷통수에서 뜨거운 게 주륵 흘러내렸다. 그 씹새끼는 결국 피까지 본 김정수가 아직도 뒤를 뒤돌아보지 않자 바짝 약이 오른 듯했다. 순식간에 성큼성큼 걸어왔다. 걸음소리를 들으니 견적이 나왔다. 오냐, 물근육 찐따 아저씨야. 딱 봐도 깡패새끼 손인 것이 정수의 몸을 쥐더니 단박에 돌아보게 했다.
"너 처음 보는 낯짝이네? 족보도 없는 썅놈. 개새끼야, 너 이 집이 무슨 집인지는 알고 불 질렀어?"
성난 몸짓과 달리 말투가 뭐랄까... 그저 그랬다. 감흥이 없었달까. 남자는 낮에 본 녀석의 부모를 죽이고 튀던 등신도, 등신 따라와서는 뒷바라지하던 따까리 등신들 중 한 명도 아니었다. 단박에 눈치 깠다. 너도 나랑 똑같은 거지새끼구나. 상황이 우습게 흘러가니 단박에 거짓말이 우려졌다.
"저야 모르죠."
정수는 심부름을 뛸 때마다 건수 친 뒤에 팁 더 받으려고 짓어대던 그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대사를 이어갔다.
"방금 이거, 저는 심부름으로 한 거라서요..."
아아, 설마 혹시 이 집 주인이세요? 하는 묘하게 상기된 멘트가 끝나자마자, 남자의 주먹이 김정수의 뺨으로 꽂혔고, 그 와중에 애매하게 꽂히는 바람에 광대 옆 피부가 찢어졌다.
"..하아...."
열이 오르자 손바닥에 땀이 났다. 그리고 김정수는 축축하고 커다란 손바닥으로 내리꽂는 뺨이 주먹보다 아프다는 사실을 다년간의 처맞음 데이터 덕분에 알고 있었다.
늙은 거지새끼는 고작 뺨 한 대 처맞아놓고선 아프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시끄러워. 김정수는 우는 아기도 달래본 적 없는 주제에, 시끄러운 어른 을 달래는 법을 아주 잘 알았다.
"돈 필요하시죠?"
진작에 좀 말로 하시지. 이렇게 얼굴을 처갈아두시면 드리고 싶었던 걸 다 못 드리잖아. 아저씨가 이 집 주인한테 얼마를 뜯어내셔야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존나 늦은 늙다리치고 이 정도 수확이면 서운하진 않으셔야지. 아, 요만큼은 뺄게요. 병원 가서 여기 이거 요만큼 찢어진 거 치료 좀 받으려고요. 아저씨, 깽값 아시죠? 깽값.
생긋 웃는 얼굴로 대사를 줄줄 쏟아내자 시끄럽던 소리는 뚝 멎었다. 그래. 이럼 다 되더라니까. 김정수는 마지막까지도 지랄맞게 나긋나긋했다.
"아아, 요거는 부탁값."
주머니에 굴러다니던 오만원 권 몇 장을 가지런히 겹쳐서 곱게 반 접고는 벙찐 등신의 넥카라에 꽂아넣으며 말했다. 길거리 돌아다니는 사람들 겁먹어요. 표정 좀 푸시고, 제 얼굴은 꼭 잊으시구요. 응? 그럼 아저씨 조심히 들어가세요.
발걸음이 가벼웠다. 집으로 향하던 천 번의 발걸음 중 오늘이 제일 가벼웠다. 낙엽 쌓인 계단이 거슬렸음에도 그랬다. 진짜 좀 쓸어둘 걸 그랬나. 불그스름한 게 딱 봐도 고약하고 미끄러워보였다. 내일. 내일 쓸어야지. 답지않게 이상한 다짐을 했다.
그저 현관문 앞에 신발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인데, 집 온기가 평소와 달랐다. 방금 처음 말 섞은 녀석이 제 집에서 씻고 있는 꼴이 재미있었다. 무턱대고 들였지만 그렇다고 다시 무턱대고 내보낼 생각은 없었다. 집 주인 허락도 없이 보일러를 고온수로 맞춰두고 삐걱대는 화장실 문틈 사이로 김이 새어나올만큼 뜨거운 물로 씻는 놈. 하는 짓에서부터 없이 살아본 티를 찾을 수가 없다. 딱 봐도 있는 집 아들을 내가 뭣하러. 하지만 그렇다고 사글세를 받거나 가진 걸 내놓으라며 괴롭힐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놈의 집에서 챙겨나온 물건이 그 값의 몇백 배는 더 나갈테니까. 김정수는 그냥 땡 잡았다고 생각했다. 모시고 살면 좆될 공주님을 구출한 것도 아니고, 그저 교복 입는 사내새끼인지라 더더욱.
"저기요, 집에 수건이 딱 여섯 개 뿐이에요?"
씻고 나온 녀석의 쫑알거림은 의외로 흡족스러웠다. 게다가 무슨 변태새끼처럼 색깔 맞춰서 정리해 둘 건 또 뭔데요. 나 진짜 욕실 수납장 열었다가 웃겨 죽는 줄. 혹시 강박증 있으세요? 녀석은 별 영양가 없는 소리를 잘도 해댔다. 방금 가족이 사라진 미성년자라기엔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그제서야 알 아서 잘도 꺼내 입은 제 반팔 반바지가 눈에 띄었다. 이게 원래 이런 옷이었던가.
"고딩, 팬티도 갈아입었어?"
"...개변태새끼 맞네....."
녀석은 인상을 찌뿌리더니 본인 머리를 탈탈 털던 수건을 제 얼굴에 집어던졌다. 어디서 습득한 싸가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앞으로 가르칠 게 참 많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챙긴 물건을 떠올리면 전혀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아주 잠깐, 내가 꼴사나운 연민으로 내 벌을 내가 직접 집에 들였나 싶었는데, 다시 생각하니 벌은 아닌 듯 했다. 그래, 적적한 마당에 잘 됐지. 넌 집이 없고, 난 가진 게 없으니까. 난 너에게 집을 주고, 넌... 네가 직접 준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난 받은만큼은 해낸다는 주의라. 아무래도 공짜는 뒤가 존나 구리잖아. 거지새끼인 것도 다 티나고.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녀석에게서부터 강속구로 꽂힌 축축한 수건을 도로 빨래통에 집어넣으려고 하자, 이번엔 아주 급하게 말을 쏘아댔다. 웃기는 녀석이네.
"그, 저기요! 아니 거기 좀 닦아요."
"닦긴 뭘 닦아, 너나 남의 집 바닥 물바다로 만들지 말고 네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기나 닦아. 오른쪽 열어보면 수건 몇 개 더 있어."
"아니... 그쪽 머리에 피요. 그 잠깐 사이에 대체 뭘 하고 왔길래 통수에서 피를 흘려요?"
그 말을 듣자 뒷통수가 아닌 뒷골이 찌릿했다. 이상하리만큼 이 상황이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미성년자. 이런 와중에도 본인 팔자 걱정이 아닌 남 뒷통수에 찐득하게 엉겨붙은 피딱지를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아무렇지 않은 녀석 때문에 저까지 아무렇지 않아진다. 존나 아무렇지 않지 않은 상황에도 아무렇지 않은 기분이 쉽게 전이가 되나.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몸에 힘이 들어갔다.
녀석이 저벅저벅 걸어와 제 얼굴에다 대고 한숨을 내쉰다. 어제 새로 뜯은 치약 향을 다 맡기도 전에 녀석의 머리카락에서 낙하한 물방울이 제 발등에 똑똑 떨어졌다. 간지러운 촉감에 발가락이 움츠러든다. 얘는 아마 모르는 듯 했다. 그저 열심히 제 뒷통수에 엉겨붙은 피를 닦는다. 쓰라렸다.
"야, 알아서 자."
태생이 다정인 호구새끼인 줄은 단박에 알았다만 이 정도로 티나게 호구일 줄은 몰랐는데. 놈은 알아서 자라는 말을 끝으로 형광등을 껐다. 불만 어둡게 끄면 뭐 해.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와도 된다는 무언의 신호처럼 느껴지는 살짝 열린 방문과 알아서 자라는 말을 끝으로 제게 덜컥 안겨진 이불이 과하게 보송했다.
지석은 빠르게 계산했다. 바깥은 여전히 정신없는 경광등 불빛이 가득했고, 정작 저 집 외아들인 나는 저들이 조사하려는 것에서 완전히 논외인 듯 했다. 하기야. 내가 곽지석이라는 걸 아는 놈도, 반도의 대가리한테 아들이 있었다는 걸 아는 놈도 개중에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지석은 다시 시선을 집안으로 돌렸다. 절대로 보라색이 되지 못하는 빨갛기만 하고 파랗기만 한 바깥보다는 어둡기만 한 지금이 더 마음에 들었다. 어둡기만 한 집. 밝은 색의 이불을 쥐어주는 남자가 혼자 사는 집.
놈의 집은 좁았다. 거실인지 부엌인지 구분짓기 애매한 공간 하나와 세탁실인지 화장실인지 구 분하려는 시도조차 실례인 화장실과 방 하나. 방 안에는 침대 하나와 이불 하나, 협탁 하나. 그리고 협탁 위에는 검은색 라이터와 무슨 컨셉인지 감도 안 잡히는 책 몇 권과 노트 한 권, 그리고 펜 하나.
어차피 평생을 존재감 없이 살아온 터. 제 존재의 마지막 발자국도 모두 태워졌겠다, 이제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솔직히 근데 까놓고 막말로... 내가 들어왔냐? 네가 들였지.
"... 네가 들였어."
지석은 살짝 열려있던 방의 문고리를 잡아 슬며시 안으로 밀었다. 동시에 끼익거리는 눈치없고 낡기만 한 소리에 저절로 인상이 찌뿌려졌다. 입술을 아주 꽉 깨물었다. 또 동시에는 어둡기만한 그 방 한 켠에서 풉 하고 터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진짜 짜증 나 씨발....
"도둑이다, 도둑."
"지금 나 놀려요?"
"응. 더 해도 돼?"
진짜 미친놈. 미친새끼. 호구새끼 주제에 이딴 식으로 사람 놀려 먹기나 하는 등신. 등신 중에 상등신. 지석은 실제로는 내뱉지도 못할 거면서 화끈한 욕짓거리를 속으로 내뱉었다. 후끈 달아오른 얼굴만큼이나 화끈하게 방문을 쾅 닫았다. 그제야 읊조려지는 개미친새끼....
"뭐? 개미친새끼?"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르겠는 놈이 방문을 벌컥 열고는 어둠 속에서 저를 내려다봤다. 깜짝아, 누구 기절시킬 일 있어요? 그러는 너는, 얌전히 자는 사람을 깨우긴 왜 깨워? 제가 언제 깨웠다고 그래요. 시끄러워. 말은 지가 먼저 시켰으면서....
놈은 시끄럽다는 말로 단박에 저를 다물게 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방 안이었다.
"두꺼운 이불 없어. 오늘은 그냥 이거 깔고 자. 봐서 주말에 깔고 잘만한 거나 하나 사러 가게."
"베개 없어요?"
"도련님인 거 티 내? 그냥 좀 처자지."
사실 당장도 잠들 수 있었지만 놈을 이겨먹고 싶은 마음에 되도 않는 시비를 걸었고, 다시 또 완패했다. 네- 하는 짧은 대답을 끝으로 얇은 이불 위로 몸을 뉘였다. 편한 자세를 찾으려 이리저리 몸을 굴려대던 중에 갑자기 침대 위에서 푹신한 게 하나 내던져졌다. 그럼 그렇지. 지석은 더듬거리며 푹신한 걸 받아들고 곧바로 머리맡에 붙였다. 형체가 불규칙한 것이 베개는 아니고 인형인 듯 했다. 답지 않으시네. 건수를 잡은 지석이 바로 휴대폰 불빛을 인형에 비췄고 그 모양새를 확인한 순간, 풉 하고 웃음이 제대로 터져서는 놈의 침대 위까지 올라갔다.
"와아, 진짜 안 어울리네. 웬 고양이 인형이요?"
"... 너 지금 나 놀려?"
"네. 더 해도 돼요?"
놈은 어설픈 데자뷰에 혀를 몇 번 끌끌 차다가 그만하고 자라는 말로 다시 또 단박에 지석을 다물게 했다. 많아봤자 한두 살 차이일 것 같은데 이상하게 어른같았다. 여전히 창밖엔 경광등이 소란스러웠지만 바닥에 눕고 나면 그저 놈의 숨소리만 들렸다. 절대 잠들지 못할 것 같은 밤은 안 자고는 못 배기는 밤이 됐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놈의 고양이 인형은 말도 안 되게 푹신했다. 평소라면 거슬렸을 타인의 숨소리와 초침 소리도 그저 순한 정적같았다.
지석은 이해 안 되는 이 모든 상황을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노력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계산하는 순간 곧장 직시하게 될 현실로부터 떨어지기로 선택한다. 도피했다. 오늘부터 현실은 제가 지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지정했다. 지금이 현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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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낮과 밤이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고 불편함은 그저 디 폴트값으로 자리잡았다. 놈은 생각보다 규칙적인 삶을 살았다. 아침엔 밥 되는 걸 꼭 챙겨 먹었고, 샤워하면서는 김건모의 서울의 달을 열창했다. 그런 다음엔 웃통을 까고 나와서 달달거리지만 성능 하나는 확실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고, 청바지를 입고 외출했다. 어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갈 땐 꼭 인사를 건넸다.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집 잘 지키고 있어, 고딩. 나 이제 학교도 안 가는데 고딩은 무슨 고딩이야- 하고 아무리 반박해도 들려오는 인사는 한결같았다. 그렇게도 놈은 꾸준히 저를 이겼다.
또, 놈은 금요일마다 편의점에서 맥주 네 캔을 사 왔는데, 그걸 꼭 혼자 마셨다. 다 먹지도 못하는 주제에 넌 아직 안 돼 두 달 지나면 먹게 해 줄게- 하며 열을 돋궜다. 옥탑에서 혼자 담배 태우는 건 너무 독거노인 같다면서 자나깨나 질질 끌고 나갈 때는 언제고. 웃기는 놈. 맞담은 되는데 알코올은 안 되는 이상한 법칙 속에서 벌써 여러 번의 금요일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