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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고해하여 (상)

루켄

  ※ 감히 고해하여 (상)편에는 폭력, 살인, 신체 훼손, 자살, 종교적 폭력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벽은 쿰쿰했다. 돈 뜯는 일도 업은 업이라고 꼴에 출퇴근도 직책도 확실한 사무실 내부에 저 혼자만 남은지도 벌써 두 시간 반쯤이 지났다. 김정수는 태우지도 않을 담배를 손가락 마디에 꽂아 넣은 채 애꿎은 숨만 거칠게 내뱉었다. 이상하게 빡이 치면 손에 땀이 흥건했다. 그 뜨겁고 축축한 땀 때문에 담배 필터 속까지 김정수의 향이 지독하게 배어서 담배의 향을 이겼다. 김정수는 별 걸 다 이긴다.

 

   두 시간 반. 발코니 난간에 아슬하게 기대어 서서 더 아슬하게 바람에 휘청이는 종이를 꼭 쥐었다. 넓고 성의 없는 A4용지 한 장에 달랑 적혀있는 손글씨 몇 줄은 읽을 수록 더 어려웠다. 마치 암호 같았다.

 

 

 

   기타 줄은 이제 그만 보내도 돼요.

 

   그 문장이 문제였다.

 

 

 

기타 줄을 그만 보내셔라....

 

   세 달만에 보낸 편지 치고 분량이 적은 것도 흠이라면 존나게 흠이었다만, 사실 그딴 영역에서는 이미 통달한지 오래다. 근데 딴건 몰라도 세 달만에 온 편지에 적힌 말이 꼭 이딴 식이어야 했을까. 다른 새끼도 아니고 네가.

 

 

 

   답답했다. 한숨을 몰아쉬는 일도 질린다. 이 바닥에서 네가 너인 걸 아는 년놈들은 아무도 없는데. 네가 어디서 뭐 하고 살고 있는지, 아니지. 살아있다는 걸 아는 놈도 딱 나 하나 뿐인데. 근데 그런 내가 너한테 이딴 편지를 받고도 당장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네. 진짜 아무것도 없네. 별걸 다 이겨대는 김정수의 유일한 허점. 딱 한 놈만큼은 평생을 주고도 못 이겨먹었다.

 

 

 

   그래서 오늘도 감히 위험을 무릅쓰고 편지했다.

 

 

 

   그럼 어쩔까. 이제 난 뭘 해 줄까.

 

   숨어살겠다며. 그렇게 살게 해달라며.

 

   그래놓고 바깥으로 소리 다 처새어나가는 기타가 당장 취미인 너를,

 

   그런 너를 내가 어디까지 살펴야할까, 지석아.

 

 

 

감히 고해하여 (상)

w. 루켄

 

 

   아버지는 지역을 넘어 반도의 유명한 대가리였다. 어느 깡패새끼 앞에 서든 이름을 들으면 고개를 처박거나 혀를 내두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심지어는 그 이름만 꺼냈을 뿐인데 갑자기 다리를 후들거리는 놈도 간혹 있었다. 그런 아버지는 아주 지독하게도 사랑꾼이었다. 꼴에. 그리고 그걸 열여덟 먹기까지도 몰랐다. 자는 제 어깨를 발로 툭툭 치면서 낳아뒀더니만 막상 길러보니까 좆만해서 어쩌냐며 혀를 찰 때 그걸 눈치챘어야 했다. 뒤에 딸린 욕짓거리와 지 몸뚱아리 하나랑 여자 하난 잘 붙들고 살라고 사지 멀쩡한 사내새끼로 낳았더니만- 하는 푸념에 좀 더 집중했어야 했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날 말고도 눈치 챌 기회는 많았다. 언젠가부터 아버지는 본인 목숨과 어머니의 인생을 위해 대가리가 된 듯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좋은 남자이자 좋은 남편이 되려고 아주 별짓을 다 했다. 자기같은 깡패 새끼랑 살면 앞으로가 더 위험하다는 말로 제 어머니를 여름날 새벽길에 내쫓았고, 그딴 등신같은 짓만 골라 하는 주제에 끝까지 처자식 잘 챙기는 아비 행색을 하려고 늘 반듯한 정장을 입고서 매일 아침 학교 앞까지 데려다 주셨다. 물론 그게 다였다. 정말 전부였다. 아버지는 내 학교가 흰 벽돌의 상고가 아닌 그 옆에 있는 빨간 벽돌의 과학고라는 것도 삼 년 내내 몰랐다. 음... 관심이 없었다기보단, 지키려는 게 많았으니까 멀쩡한 일상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병신이었다.

 

   사실 사람 패고 다니는 주제에 뭐가 그리 바쁜가 싶었는데, 저도 제법 크고 나니까 짐작가는 것들이 늘었다. 대가리 총량의 법칙. 사람을 팬다는 건 그만큼 처맞을 수도 있다는 뜻. 그리고 대가리가 맞는다는 건 그 아래 달린 모든 건 처맞아도 싼 존재가 된다는 것. 아마 아버지는 두 어깨가 무거웠을 것이다. 지킬 게 많은 인간은 대게 그렇다.

 

   그래서 나는 지키고 싶은 게 없는 삶이 가장 완전한 삶이라고 믿었다. 누가 건드려도 잃을 게 없는 인간이 가장 강한 인간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이 믿음이 곡해였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구월, 바람이 차가웠다. 며칠 내내 비만 퍼부어대더니 모의고사 날이라고 비도 안 왔다. 지석은 이렇게나 꼴사나운 하늘의 배려에 성은이 망극해, 부러 두 정거장을 먼저 내려서 집까지 좀 걸었다. 속이 뉘엿뉘엿 올라올 듯해도 끝까지 바닥만 보고서 천천히 걸었다. 그 덕에 낙엽의 눅눅한 정도까지 측정이 가능했다. 물론 이런 찐따같은 취미도 집앞 골목에 들어서서는 멈췄다. 그날은 멈추고 싶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집 대문이 열려있었다. 걸음이 빨라졌다. 그래서 자꾸만 걸음이 꼬였다. 평생을 쌔빠지게 튀는 짓만 골라하며 살아온 주제에, 제게는 늘 튀지 말고 조용히 살자고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신조. 그 신조에 따라 집의 대문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손님이 오나 늘 굳게 닫혀있었다.

 

   대문은 늘 닫혀 있어야 했다. 조용해야 했다.

 

 

 

  열려있는 대문 틈새로 본 마당 꼬라지에 지석은 숨쉬는 법을 잠시 잊었다. 마당에 널브러져있는 이름 모를 여자의 코트가 잔디와 비슷한 색이었음에도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집 마당 초록색 잔디에 이름 모를 사내들이 죄다 피떡이 된 채로 쓰러져있던 날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직감했다. 문을 열면 여자가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 여자가 어떤 꼴로 널브러져 있든 절대 놀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문고리를 젖히는 순간에 낙뢰보다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붉은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며 처참히 지석의 큰 두 눈을 가득 채웠다. 아버지의 허황된 눈빛이 연하게 스미는 햇살과 강하게 겹쳐 제 뇌를 관통했다. 아버지의 눈동자는 차마 닫히지 못한 커튼 틈으로 눈치없이 침입한 햇빛과 정통으로 부벼대고 있는 주제에 깜빡이지도 빛나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목이 반쯤 썰려서는 눈 뜬 채 죽었다. 엎어진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눈은 보랏빛으로 충혈된 주제에 허연 눈물을 흘렸다. 아마 감정의 색깔인 듯 했다. 지석은 길게 내려오는 앞머리를 연거푸 거칠게 쓸어넘겼다. 숨을 쉬는 법을 잊어서인지 아니면 오늘 모의고사 내내 피곤했어서인지 갑자기 폐가 제멋대로 히끅이더니 눈에서는 눈물을 줄줄 흘려댔다. 저 꼬락서니로 있는 누구와 달리, 흐르는 눈물에 의도는 없었으니 아마 지석의 눈물은 생리현상이었다. 생각해보면 지석의 눈은 자주 눈물을 흘리는 체질이었다. 답지 않게 눈물이 쉬이 그치지 않았다. 눈물이 그치지 않는 것이 웃겼다. 꼴사납게 뒤집힌 아버지와 그 옆에 엎어진 여자. 지석은 그 옆에 무릎을 감싸안고 앉아서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경박스러웠고 역겨웠다. 그래서 더 열렬히 처웃었다.

 

그 다음에는 닫히다 만 거실의 커튼을 마저 닫고 불을 켰다. 형광등이 천천히 두어 번 깜빡이다가 이내 밝게 불을 밝힌다.

 

   "그러게, 전등 좀 미리미리 갈아두라니까."

 

 

 

   마당에 시끄럽게 널브러져 있었던 올리브색 코트의 주인, 그 여자의 정체도 엎어진 그 태가 제대로 보이자마자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왜 돌아온 거야 진짜..."

 

 

 

   곽지석이 중학교 들어갈 때 본인은 집을 나갔던, 제발 나가라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서 진짜 자식까지 버리고 간 어머니가 다시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돌아오자마자 돌아가신 게 좀 안쓰러웠다.

 

   썰리고 엎어지고 흘리는 남녀에서 시선을 거둔 지석은 그제야 차분히 집 내부를 살폈다. 딱히 뭐가 털린 건 없는 것 같았다. 차라리 털렸으면 어땠을까. 멍청한 사랑 때문에 아버지가 휘청이는 새를 타 반도 대가리 지망생 중 하나가 아버지의 목을 친 듯했다. 깡패밥 열아홉 인생 덕에 시나리오가 저절로 읽혔다. 상황 판단이 끝나니 이제야 숨이 차분히 쉬어진다. 차가운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게 영 불쾌했다. 어쩌다 가만히 당하기만 했을까.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무슨 의미인 걸까. 약점일까 허점일까.

 

   둘을 보면 자꾸 어리석은 것들이 읽혔다. 둘은 손을 붙인 채 죽었다. 이런 걸 곱씹으면 겨우내 멈췄던 웃음이 다시 슬그머니 샜다. 자기 집 거실에서 눈 뜨고 죽은 아버지와 그날 이후로 한 번도 볼 수 없었지만 태만 보고도 단박에 알아채버린 손 붙들린 채 죽은 어머니.

 

   맹세컨데, 지석의 열아홉 인생 중 가장 다이내믹한 하루이지 않을수가.

 

 

 

   지석은 당장에 이 꼴사나운 광경을 처리해 줄 인물이 필요했다. 성인 둘을 처리하기에 지석은 작고 힘이 없었다. 게다가 할줄 아는 건 공부 뿐인 전혀 평범하지 않은 곽지석에겐 이런 비밀까지도 눈 감아줄 친구가 존재할리 없다. 지석은 아직까지도 송글송글 맺혀 흐르는 피를 내려보다가 아버지의 자켓 주머니를 뒤져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집 밖으로 나갔다. 담배 아깝게. 이건 젖으면 안 되지.

 

   혹시라도 어느 날 아버지가 죽으면 넌 집 근처에 있지도, 거기로 다시 돌아오지도 말라던 언젠가의 아버지를 무시했다. 그 말에 힘이 있고 싶거든 내가 보는 앞에서 죽지는 마셨어야지.

 

   "어차피 살아남은 내가 더 강한 거 아닌가."

 

   잘근잘근 씹어대며 피우는 담배 때문에 어설프게 새는 발음이 불편한데도 자꾸만 혼잣말이 나왔다. 지석은 본인 폐부에 애매히 걸친 듯한 담배 기운과 얽힌 성인 둘의 피가 몸밖으로 죄다 빠져나오기 전까지는 집에 도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냥 좀 계속 걸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집 근처 골목 어귀에서 놈을 만났다.

 

 

 

   "야"

 

   하필이면 이런 날, 하필이면 이렇게나 비죽한 톤으로 말을 걸어오는 등신이라니.

 

 

 

   "네?"

 

   고개를 드니 의외의 인물이 사탕을 쪽쪽 빨아대며 저를 야렸다. 옆집 옥탑에 혼자 세 들어 사는 또래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모르는 인물이었다. 누구세요. 저 아세요? 알아도. 왜 다짜고짜 반말이세요. 이제 좀 마음 다잡고 집으로 기어들어가려는 사람을 처붙들고 지랄이세요.

 

   살의도 예의도 없는 상호 간 삐딱한 시선이 몇 번 오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이 다시금 말을 붙였다.

 

   "왜 쪼개."

 

   아까부터 봤는데 계속 미친새끼처럼 허허실실 처웃잖아, 네가. 싸가지 없는 말본새와 달리 어투는 나긋나긋했다. 아아, 태생이 다정인 호구 새끼들은 딱 질색인데. 놈은 더 안 봐도 그런 부류인 듯 싶었다. 그래서였다. 매미도 입 꾹 닫고 소리내지 않던 어느 구월의 새벽, 길게 이어지는 정적을 깬 건 의외로 곽지석이었다.

 

 

 

   "힘 세요?"

 

   놈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더 무어라 말을 이을 생각이 없던 지석이 발걸음을 돌려 다시 집으로 향했고, 그걸 따라나선 건 힘 센 호구의 자의였다. 처음부터 다 알았으면서 순진한 척 처묻는 변태새끼. 호구는 꼴에 다정만 하지는 않았다. 부모 죽인 대가리 지망생, 그거 반도의 대가리는 못 되겠다. 옆집 옥탑 호구도 눈치챌 정도로 발자국 남겨가면서 빚어내는 작품이면... 그건 실력이라고 칭하기도 실례지.

 

   상황이 우습게 흘러간다. 죽은 부모와 남겨진 저, 어설프게 떠난 살인자 깡패새끼와 모든 걸 다 관전한 듯한 옥탑 호구. 제가 피식하고 웃으면 또 다시 질문이 들렸다. 남이 처웃는 이유가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이렇게 집요하게 물어대는 거지. 정말이지 특이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본인은 힘 세냐는 내 물음에는 답하지도 않았으면서.

 

   놈은 아무 말 없이 집까지 따라오더니, 말도 없이 부엌과 차고에 있는 기름을 모조리 털어와서 마구 뿌려댔다. 그러더니 그제야 대답했다.나 힘 별로 안 세. 어떻게 둘을 옮겨. 그냥 태울게. 저는 무어라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무엇이든 깔끔하게 처리해 주겠다는 저 태도가 신기했다.

 

 

 

   "안 챙겨도 돼?"

 

   챙길 거 없다는 대답을 똑똑히 들었으면서 자꾸만 다시 물어보는 이 집요함이 사람 기분을 계속 갉아댔다. 아주 좆같지만은 않았고, 대충 뭣같았다. 지석은 대답이 짧아서 그런가 싶어 이번엔 길게 답했다.

 

   "뭐가 소중해 봐야 아쉬운 줄도 알죠."

 

   분명 못 알아들을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놈은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더니 본인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하나 건넸다.

 

   "가서 먼저 씻고 있어. 너한테 냄새 존나 나."

 

   심지어는 당황해서 네? 하고 되묻는 지석을 빤히 보더니 구체적으로 어떤 냄새가 나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게 궁금해서 되물은 게 아닌데. 그리고 그게 궁금해서 되물은 게 아니라는 걸 본인도 알 텐데. 호구와 고아 사이엔 자꾸 알아도 기꺼이 모르고 마는 게 생기는 만큼, 몰라도 금방 알아내고 마는 것도 생겨났다. 백이십퍼 확률로 놈이 방금 건넨 열쇠는 굳이 되묻지 않아도 그 옥탑방의 열쇠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네가 불태운 집 아들이 무슨 마음을 품었을 줄 알고 집 키를 막 건네줘요?"

 

   "... 뭐 가져본 게 있어야 잃는 기분도 알지."

 

 

 

   뭐에 맞은 듯 눈이 빠르게 깜빡여지더니 고개가 절로 두어 번 끄덕여졌다. 계산과 납득이 끝난 지석은 서둘러 신발만 다른 흰색 운동화로 바꿔신고 나갔다.

 

 

 

   대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회색 트레이닝 바지 주머니를 뒤져서 찾아낸 라이터로 칠해둔 기름길을 따라 불을 질렀다. 집이 밖에서 보던 것보다 더 크네. 시간 좀 걸리겠다. 신발장 앞에서 시작한 불길이 차분히 소파까지 옮겨갔을 즈음 김정수는 집 밖으로 나와서 반대쪽 바지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열을 셌다. 수를 다 세고 났더니 커튼으로 꽉 막힌 유리창 뒤로 새어나오는 붉은 빛이 점점 강해진다. 그제야 쥐고있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번쩍이는 커튼 뒤 불빛과 동시에 피어오른 건 라이터 불꽃이 아닌 헛웃음이었다. 씨발... 나 아까 라이터 던지고 나왔지. 허탈하게 웃다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뭐에 홀려도 제대로 홀렸지. 집 가서 샤워나 해야지. 등신, 등신아. 이상하게 낮부터 몽롱하게 빠져있던 정신머리에 셀프로 쌍욕을 좀 뱉고는 녀석이 씻고 있을 제 집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탄내나는 주택에서부터 걸음을 떼려는 순간, 갑자기 제 뒷통수에 뭐가 꽂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오른쪽 눈이 의지와 관계없이 꿈뻑여졌다.

 

   "어떤 씹새끼가 진짜...."

 

   골이 아려올 때쯤 뒷통수에서 뜨거운 게 주륵 흘러내렸다. 그 씹새끼는 결국 피까지 본 김정수가 아직도 뒤를 뒤돌아보지 않자 바짝 약이 오른 듯했다. 순식간에 성큼성큼 걸어왔다. 걸음소리를 들으니 견적이 나왔다. 오냐, 물근육 찐따 아저씨야. 딱 봐도 깡패새끼 손인 것이 정수의 몸을 쥐더니 단박에 돌아보게 했다.

 

   "너 처음 보는 낯짝이네? 족보도 없는 썅놈. 개새끼야, 너 이 집이 무슨 집인지는 알고 불 질렀어?"

 

   성난 몸짓과 달리 말투가 뭐랄까... 그저 그랬다. 감흥이 없었달까. 남자는 낮에 본 녀석의 부모를 죽이고 튀던 등신도, 등신 따라와서는 뒷바라지하던 따까리 등신들 중 한 명도 아니었다. 단박에 눈치 깠다. 너도 나랑 똑같은 거지새끼구나. 상황이 우습게 흘러가니 단박에 거짓말이 우려졌다.

 

   "저야 모르죠."

 

   정수는 심부름을 뛸 때마다 건수 친 뒤에 팁 더 받으려고 짓어대던 그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대사를 이어갔다.

 

  "방금 이거, 저는 심부름으로 한 거라서요..."

 

  아아, 설마 혹시 이 집 주인이세요? 하는 묘하게 상기된 멘트가 끝나자마자, 남자의 주먹이 김정수의 뺨으로 꽂혔고, 그 와중에 애매하게 꽂히는 바람에 광대 옆 피부가 찢어졌다.

 

 

 

  "..하아...."

 

  열이 오르자 손바닥에 땀이 났다. 그리고 김정수는 축축하고 커다란 손바닥으로 내리꽂는 뺨이 주먹보다 아프다는 사실을 다년간의 처맞음 데이터 덕분에 알고 있었다.

 

  늙은 거지새끼는 고작 뺨 한 대 처맞아놓고선 아프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시끄러워. 김정수는 우는 아기도 달래본 적 없는 주제에, 시끄러운 어른을 달래는 법을 아주 잘 알았다.

 

 

 

  "돈 필요하시죠?"

 

  진작에 좀 말로 하시지. 이렇게 얼굴을 처갈아두시면 드리고 싶었던 걸 다 못 드리잖아. 아저씨가 이 집 주인한테 얼마를 뜯어내셔야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존나 늦은 늙다리치고 이 정도 수확이면 서운하진 않으셔야지. 아, 요만큼은 뺄게요. 병원 가서 여기 이거 요만큼 찢어진 거 치료 좀 받으려고요. 아저씨, 깽값 아시죠? 깽값.

 

  생긋 웃는 얼굴로 대사를 줄줄 쏟아내자 시끄럽던 소리는 뚝 멎었다. 그래. 이럼 다 되더라니까. 김정수는 마지막까지도 지랄맞게 나긋나긋했다.

 

  "아아, 요거는 부탁값."

 

  주머니에 굴러다니던 오만원 권 몇 장을 가지런히 겹쳐서 곱게 반 접고는 벙찐 등신의 넥카라에 꽂아넣으며 말했다. 길거리 돌아다니는 사람들 겁먹어요. 표정 좀 푸시고, 제 얼굴은 꼭 잊으시구요. 응? 그럼 아저씨 조심히 들어가세요.

 

 

 

  발걸음이 가벼웠다. 집으로 향하던 천 번의 발걸음 중 오늘이 제일 가벼웠다. 낙엽 쌓인 계단이 거슬렸음에도 그랬다. 진짜 좀 쓸어둘 걸 그랬나. 불그스름한 게 딱 봐도 고약하고 미끄러워보였다. 내일. 내일 쓸어야지. 답지않게 이상한 다짐을 했다.

 

   그저 현관문 앞에 신발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인데, 집 온기가 평소와 달랐다. 방금 처음 말 섞은 녀석이 제 집에서 씻고 있는 꼴이 재미있었다. 무턱대고 들였지만 그렇다고 다시 무턱대고 내보낼 생각은 없었다. 집 주인 허락도 없이 보일러를 고온수로 맞춰두고 삐걱대는 화장실 문틈 사이로 김이 새어나올만큼 뜨거운 물로 씻는 놈. 하는 짓에서부터 없이 살아본 티를 찾을 수가 없다. 딱 봐도 있는 집 아들을 내가 뭣하러. 하지만 그렇다고 사글세를 받거나 가진 걸 내놓으라며 괴롭힐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놈의 집에서 챙겨나온 물건이 그 값의 몇백 배는 더 나갈테니까. 김정수는 그냥 땡 잡았다고 생각했다. 모시고 살면 좆될 공주님을 구출한 것도 아니고, 그저 교복 입는 사내새끼인지라 더더욱.

 

 

 

   "저기요, 집에 수건이 딱 여섯 개 뿐이에요?"

 

   씻고 나온 녀석의 쫑알거림은 의외로 흡족스러웠다. 게다가 무슨 변태새끼처럼 색깔 맞춰서 정리해 둘 건 또 뭔데요. 나 진짜 욕실 수납장 열었다가 웃겨 죽는 줄. 혹시 강박증 있으세요? 녀석은 별 영양가 없는 소리를 잘도 해댔다. 방금 가족이 사라진 미성년자라기엔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그제서야 알아서 잘도 꺼내 입은 제 반팔 반바지가 눈에 띄었다. 이게 원래 이런 옷이었던가.

 

 

 

   "고딩, 팬티도 갈아입었어?"

 

   "...개변태새끼 맞네....."

 

   녀석은 인상을 찌뿌리더니 본인 머리를 탈탈 털던 수건을 제 얼굴에 집어던졌다. 어디서 습득한 싸가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앞으로 가르칠 게 참 많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챙긴 물건을 떠올리면 전혀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아주 잠깐, 내가 꼴사나운 연민으로 내 벌을 내가 직접 집에 들였나 싶었는데, 다시 생각하니 벌은 아닌 듯 했다. 그래, 적적한 마당에 잘 됐지. 넌 집이 없고, 난 가진 게 없으니까. 난 너에게 집을 주고, 넌... 네가 직접 준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난 받은만큼은 해낸다는 주의라. 아무래도 공짜는 뒤가 존나 구리잖아. 거지새끼인 것도 다 티나고.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녀석에게서부터 강속구로 꽂힌 축축한 수건을 도로 빨래통에 집어넣으려고 하자, 이번엔 아주 급하게 말을 쏘아댔다. 웃기는 녀석이네.

 

   "그, 저기요! 아니 거기 좀 닦아요."

 

   "닦긴 뭘 닦아, 너나 남의 집 바닥 물바다로 만들지 말고 네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기나 닦아. 오른쪽 열어보면 수건 몇 개 더 있어."

 

   "아니... 그쪽 머리에 피요. 그 잠깐 사이에 대체 뭘 하고 왔길래 통수에서 피를 흘려요?"

 

   그 말을 듣자 뒷통수가 아닌 뒷골이 찌릿했다. 이상하리만큼 이 상황이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미성년자. 이런 와중에도 본인 팔자 걱정이 아닌 남 뒷통수에 찐득하게 엉겨붙은 피딱지를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아무렇지 않은 녀석 때문에 저까지 아무렇지 않아진다. 존나 아무렇지 않지 않은 상황에도 아무렇지 않은 기분이 쉽게 전이가 되나.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몸에 힘이 들어갔다.

 

   녀석이 저벅저벅 걸어와 제 얼굴에다 대고 한숨을 내쉰다. 어제 새로 뜯은 치약 향을 다 맡기도 전에 녀석의 머리카락에서 낙하한 물방울이 제 발등에 똑똑 떨어졌다. 간지러운 촉감에 발가락이 움츠러든다. 얘는 아마 모르는 듯 했다. 그저 열심히 제 뒷통수에 엉겨붙은 피를 닦는다. 쓰라렸다.

 

 

   "야, 알아서 자."

 

   태생이 다정인 호구새끼인 줄은 단박에 알았다만 이 정도로 티나게 호구일 줄은 몰랐는데. 놈은 알아서 자라는 말을 끝으로 형광등을 껐다. 불만 어둡게 끄면 뭐 해.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와도 된다는 무언의 신호처럼 느껴지는 살짝 열린 방문과 알아서 자라는 말을 끝으로 제게 덜컥 안겨진 이불이 과하게 보송했다.

 

   지석은 빠르게 계산했다. 바깥은 여전히 정신없는 경광등 불빛이 가득했고, 정작 저 집 외아들인 나는 저들이 조사하려는 것에서 완전히 논외인 듯 했다. 하기야. 내가 곽지석이라는 걸 아는 놈도, 반도의 대가리한테 아들이 있었다는 걸 아는 놈도 개중에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지석은 다시 시선을 집안으로 돌렸다. 절대로 보라색이 되지 못하는 빨갛기만 하고 파랗기만 한 바깥보다는 어둡기만 한 지금이 더 마음에 들었다. 어둡기만 한 집. 밝은 색의 이불을 쥐어주는 남자가 혼자 사는 집.

 

  놈의 집은 좁았다. 거실인지 부엌인지 구분짓기 애매한 공간 하나와 세탁실인지 화장실인지 구분하려는 시도조차 실례인 화장실과 방 하나. 방 안에는 침대 하나와 이불 하나, 협탁 하나. 그리고 협탁 위에는 검은색 라이터와 무슨 컨셉인지 감도 안 잡히는 책 몇 권과 노트 한 권, 그리고 펜 하나.

 

   어차피 평생을 존재감 없이 살아온 터. 제 존재의 마지막 발자국도 모두 태워졌겠다, 이제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솔직히 근데 까놓고 막말로... 내가 들어왔냐? 네가 들였지.

 

 

 

   "... 네가 들였어."

 

   지석은 살짝 열려있던 방의 문고리를 잡아 슬며시 안으로 밀었다. 동시에 끼익거리는 눈치없고 낡기만 한 소리에 저절로 인상이 찌뿌려졌다. 입술을 아주 꽉 깨물었다. 또 동시에는 어둡기만한 그 방 한 켠에서 풉 하고 터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진짜 짜증 나 씨발....

 

   "도둑이다, 도둑."

 

   "지금 나 놀려요?"

 

   "응. 더 해도 돼?"

 

   진짜 미친놈. 미친새끼. 호구새끼 주제에 이딴 식으로 사람 놀려 먹기나 하는 등신. 등신 중에 상등신. 지석은 실제로는 내뱉지도 못할 거면서 화끈한 욕짓거리를 속으로 내뱉었다. 후끈 달아오른 얼굴만큼이나 화끈하게 방문을 쾅 닫았다. 그제야 읊조려지는 개미친새끼....

 

 

 

   "뭐? 개미친새끼?"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르겠는 놈이 방문을 벌컥 열고는 어둠 속에서 저를 내려다봤다. 깜짝아, 누구 기절시킬 일 있어요? 그러는 너는, 얌전히 자는 사람을 깨우긴 왜 깨워? 제가 언제 깨웠다고 그래요. 시끄러워. 말은 지가 먼저 시켰으면서....

 

   놈은 시끄럽다는 말로 단박에 저를 다물게 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방 안이었다.

 

   "두꺼운 이불 없어. 오늘은 그냥 이거 깔고 자. 봐서 주말에 깔고 잘만한 거나 하나 사러 가게."

 

   "베개 없어요?"

 

   "도련님인 거 티 내? 그냥 좀 처자지."

 

  

 

   사실 당장도 잠들 수 있었지만 놈을 이겨먹고 싶은 마음에 되도 않는 시비를 걸었고, 다시 또 완패했다. 네- 하는 짧은 대답을 끝으로 얇은 이불 위로 몸을 뉘였다. 편한 자세를 찾으려 이리저리 몸을 굴려대던 중에 갑자기 침대 위에서 푹신한 게 하나 내던져졌다. 그럼 그렇지. 지석은 더듬거리며 푹신한 걸 받아들고 곧바로 머리맡에 붙였다. 형체가 불규칙한 것이 베개는 아니고 인형인 듯 했다. 답지 않으시네. 건수를 잡은 지석이 바로 휴대폰 불빛을 인형에 비췄고 그 모양새를 확인한 순간, 풉 하고 웃음이 제대로 터져서는 놈의 침대 위까지 올라갔다.

 

   "와아, 진짜 안 어울리네. 웬 고양이 인형이요?"

 

   "... 너 지금 나 놀려?"

 

   "네. 더 해도 돼요?"

 

   놈은 어설픈 데자뷰에 혀를 몇 번 끌끌 차다가 그만하고 자라는 말로 다시 또 단박에 지석을 다물게 했다. 많아봤자 한두 살 차이일 것 같은데 이상하게 어른같았다. 여전히 창밖엔 경광등이 소란스러웠지만 바닥에 눕고 나면 그저 놈의 숨소리만 들렸다. 절대 잠들지 못할 것 같은 밤은 안 자고는 못 배기는 밤이 됐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놈의 고양이 인형은 말도 안 되게 푹신했다. 평소라면 거슬렸을 타인의 숨소리와 초침 소리도 그저 순한 정적같았다.

 

   지석은 이해 안 되는 이 모든 상황을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노력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계산하는 순간 곧장 직시하게 될 현실로부터 떨어지기로 선택한다. 도피했다. 오늘부터 현실은 제가 지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지정했다. 지금이 현실이라고.

 

 

-

 

 

   불편한 낮과 밤이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고 불편함은 그저 디폴트값으로 자리잡았다. 놈은 생각보다 규칙적인 삶을 살았다. 아침엔 밥 되는 걸 꼭 챙겨 먹었고, 샤워하면서는 김건모의 서울의 달을 열창했다. 그런 다음엔 웃통을 까고 나와서 달달거리지만 성능 하나는 확실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고, 청바지를 입고 외출했다. 어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갈 땐 꼭 인사를 건넸다.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집 잘 지키고 있어, 고딩. 나 이제 학교도 안 가는데 고딩은 무슨 고딩이야- 하고 아무리 반박해도 들려오는 인사는 한결같았다. 그렇게도 놈은 꾸준히 저를 이겼다.

 

   또, 놈은 금요일마다 편의점에서 맥주 네 캔을 사 왔는데, 그걸 꼭 혼자 마셨다. 다 먹지도 못하는 주제에 넌 아직 안 돼 두 달 지나면 먹게 해 줄게- 하며 열을 돋궜다. 옥탑에서 혼자 담배 태우는 건 너무 독거노인 같다면서 자나깨나 질질 끌고 나갈 때는 언제고. 웃기는 놈. 맞담은 되는데 알코올은 안 되는 이상한 법칙 속에서 벌써 여러 번의 금요일을 보냈다.

 

   계절이 바뀐대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 모든 패턴에 익숙해질 즈음, 지석은 잠이 많이 늘었다. 겨울잠이라도 자는 거냐는 놈의 다정하고도 가시 돋친 빈정거림에 대꾸할 힘조차 없을만큼 아주 늘어져서 잠만 잤다. 싸구려 토퍼의 가운데가 점점 바닥과 닿아갔다. 아무리 없이 살아도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살아야지 하는 놈의 가오의 비례해 집 바닥은 늘 따뜻했고, 그 덕에 지석은 가끔 뜨거운 사막에서 헤엄치는 꿈을 꿨다.

 

 

   첫눈이 오던 날도 지석은 뜨거운 사막에서 헤엄치는 꿈을 꿨다. 분명 모래는 부드러웠지만 그 위에서 헤엄치는 지석에겐 모래가 미칠듯이 따가웠다. 하지만 헤엄쳐야만 나아갈 수 있었다.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계속 키우던 금붕어가 제게 복수하는 게 분명했다. 이 반복되는 복수가 이끼 묻은 돌보다 나를 더 좋아해 주던 금붕어를 끝까지 돌보지 못한 나의 파렴치한 죄 때문이라면, 이깟 건 얼마든지 감내해줄 터라고 다짐했다. 꿈속에서도 선명히 그런 생각들을 했다. 그렇게 또 헤엄쳤다. 오늘따라 사막의 모래가 더 꾸물거렸다. 토퍼를 바꿀 때가 됐다. 하지만 바꿔달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정도로 염치없는 성정은 되지 못한 터라 그저 매일밤을 마저 잠들었다.

 

   그리고 또, 첫눈이 오던 그날에 평소보다 더 일찍 눈이 떠진 건 코를 찌르는 밥 냄새 때문도, 듣기 싫어도 다 들리는 샤워기 물 줄기 아래 놈의 서울의 달 열창 때문도 아니었다.

 

 

 

   "계세요?"

 

   이 집에서 문 두드리는 존재는 처음이었다.

 

   괜히 온갖 생각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휘발된 줄 알았던 경광등의 불빛까지도 선연했다. 눈도 다 뜨지 못한 채로 집 주인을 찾았다. 형, 저기요, 집에 없어? 놈이 집에 없다. 오늘은 주말인데 방에도 없고 씻는 소리도 안 들리는 거 보니 외출한 듯 했다. 그럼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지도 모르는 상황. 지석은 예정에 없던 일에 있어서 늘 유연했다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밖에 서 있는 인물이 다시 한 번 집 문을 두드렸다. 안에 계시는 것 같은데 문 좀 열어 주세요.

 

   한 번도 여기가 내 집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막상 주인 없는 집에 불청객이 찾아오니까 정말이지 집 지키는 개라도 된 듯했다. 이게 다 놈이 매일 건네던 인사 때문이다.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집 잘 지키고 있어.  집을 지켜야 한다. 그것도 잘.

 

 

 

   "... 누구세요?"

 

   아주 조금만 열었을 뿐인데 찬 공기가 들이닥쳤다. 반대 서 있는 작자와의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왼손에는 빗자루를 꼭 쥐었다.

 

 

 

   "문을 왜 이렇게 늦게 여셔요, 우편이에요."

 

   지석은 그제야 경계를 풀었다.

 

   우편이요? 잠깐이지만 수많은 생각이 스쳐갔던 제 자신이 불쌍했다. 내내 혀를 잘근잘근 씹느라 혀 중앙이 얼얼했다. 텅빈 눈으로 말간 얼굴을 한 지석에게 집배원이 다시금 말을 붙였다. 아아, 그 빗자루 챙겨 나오시느라 그랬나? 잘 생각하셨어요. 여기 계단 좀 쓰셔야겠어. 눈이 그새 많이 쌓여서 올라오는 길에 넘어질까 봐 정말 허벅다리에 힘 꽉 줬어요. 아... 그러셨어요? 죄송해요. 눈이 펑펑 내리는 게 본인 잘못도 아닌데 곽지석은 그저 사과했다.

 

 

 

   "이건데, 직접 수령하셔야 해서요. 김정수 씨 되시죠?"

 

   놈의 이름을 모르던 건 아니지만,

 

 

 

   "김정수 아니세요?"

 

   직접 듣고 나니 어색했다. 죄송한데 제가 김...이 아니라서요. 그러자 집배원은 다시 무언가를 기계에 톡톡 입력하더니 제게 이름을 물었다. 저는 곽, 곽지석이요. 답답하게 구는 저 때문에 뺏기는 시간이 통 아까운지 소매를 거칠게 걷어 시계를 확인하곤 새로 빌지를 뽑아 쭉 잡아뜯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럼 김정수와 무슨 관계냐고 물었다.

 

 

 

   " ... 그게.."

 

   관계? 관계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무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말이 안 나왔다. 그냥... 저는 그냥 제 집이 없어졌고, 없어진 그날부터 이 집에서 살았고, 말씀하신 그 사람과 이 집에서 같이 삽니다. 같이 사는 사람. 보통 사람들이 같이 사는 사람을 뭐라고 하더라.

 

 

 

   "도, 동거인이요."

 

   혀까지 씹어가며 고민한 끝에 내뱉은 답변치고, 집배원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네 동거인- 하며 아래 동거인이라고 휘갈겨 쓴 희고 얇은 종이를 건넸다. 여기 아래 사인 부탁드려요. 지석은 꿈뻑이던 눈을 두어차례 부비다가 펜을 건네받았다. 그때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동반한 걸 보니 집 앞 편의점이라도 다녀온 듯 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석은 괜히 펜을 더 꾹꾹 눌러가며 서명했다. 마지막 석 자가 조금 찌그러졌다.

 

   "다 됐죠? 그럼 조심히 가세요."

 

   놈이 올라오는 중인 줄 알면서도 급하게 문을 닫았다. 그제야 손에 꼭 쥐고 있던 빗자루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동거인. 어쩌면 놈은 그 말을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문이 닫히고 신발장 등이 꺼지자 그제야 찬바람이 뼛속까지 느껴졌다. 발도 시렸다. 집배원과 대면하는 사이 하얀 눈이 집 안으로 들어왔었나보다. 얼마나 급했는지 사이즈도 브랜드도 제각각인 슬리퍼 위로 쌓였던 눈이 발가락을 타고 천천히 녹았다. 내려다본 발가락이 무지 빨갛다. 나는 뭐 때문에 긴장했을까.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의 존재를 가늠할 수 없어서인지, 준비되지 않은 채 맞이한 추위 때문인지, 생각해 본 적 없던 질문과 더해지던 압박 때문이었는지. 답이 뭐든지간에 일단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주 별로였다. 슬리퍼를 벗고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문을 뭐 그렇게 세게 닫아?"

 

   힘 없이 축 늘어진 채 화장실에 들어가려는 지석의 팔목이 단숨에 붙잡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제 왔어요? 방금. 놈은 들고 있던 봉투를 내려놓고는 지석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지금 일어났어? 정신을 못 차리네. 아... 네. 그래, 얼른 씻고 밥 먹어.

 

   진짜 웃기는 새끼. 변태같은 놈. 분명히 내려가는 집배원과 마주쳤을텐데 그저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간다.

 

     

 

   "어디 갔다 왔어? 주말인데요."

 

   "주말 그게 뭐 중요한가. 돈 많이 준다길래 일 좀 하나 했어.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쇼핑도 하고."

 

   "새벽부터?"

 

   대답은 없었다. 지석은 시위라도 하는 듯 놈이 대답할 때까지 숟가락을 들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버티는 거야? 놈은 지석의 액션을 쳐다보지도 않고는 질문만 던졌다. 그리곤 차게 식어버린 지석의 국 그릇을 가져다가 따뜻한 걸로 다시 퍼줬다.

 

   "너 그렇게 버티고 있으면 또 다 식는다?"

 

   지금 이 말은 지금 내가 버텨봤자라는 거겠지. 뾰족한 수 없이는 놈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젠 잘 안다. 그제야 지석은 동동 떠 있는 두부를 하나 떠서 삼켰다.

 

 

 

   "저번에 두부 없다고 찡찡거렸잖아, 네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새벽부터 어디로 일 다녀온 거냐고 물었는데, 갑자기 무슨 두부 타령이야. 뇌에 힘을 주기도 전에 곧장 이어지는 말이 더 어려웠다. 근데 강아지 키우는데 돈 존나 많이 든다더라. 이번엔 또 무슨 강아지 타령이야.

 

   "고딩, 나 이제 아마 규칙적으로 출퇴근 할 것 같아."

 

   "원래도 그랬잖아요."

 

   "그건 그냥 뭐라도 해야 되니까 그랬던 거고. 심부름 하나 치는 거 얼마나 골 아픈지 알아?"

 

   몰라. 모르지만 굳이 모른다는 말은 안 했다. 그러니까 나도 알바 한다고 했잖아요- 따위의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또 다물릴 게 뻔했다. 놈은 이상했다. 함부로 거뒀고, 함부로 책임진다. 그리고 가끔은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늘어놓았고, 그럼에도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생색은 또 기가 막혔다. 때문에 지석은 그냥 딱 죽겠는 심정의 연속이었다. 나보고 씨발 뭐 어쩌라고요... 돈 버느라 존나 힘들다면서 정작 일은 못 하게 하고.

 

 

 

   "일자리 생겼거든. 꼴에 직급도 있대."

 

   갑작스러운 취직 소식에 벙찐 상태로 밥을 씹는 저와 달리 놈은 왠지 들뜬 얼굴을 하고선 큭큭대며 웃었다. 오늘따라 낯선 것의 연속이다. 낯선 것들 때문에 기분이 싱숭생숭해질 때가 되면 놈은 귀신같이 필요 이상의 익숙함으로 저를 붙잡았다. 배부르다. 고딩도 다 먹었어? 하는 매일 있는 질문과 함께 제 그릇도 함께 포개어 싱크대로 가져다놓는다. 그 다음에는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따서 반쯤 마시고는 비타민을 챙겨 먹겠지. 그 다음은 장갑 끼고 설거지 하라는 잔소리겠지.

 

   "너 설거지 꼭 장갑 끼고 해라~ 손 다 버려."

 

  놈은 뻔한 잔소리와 함께 담배 한 개비를 깨물고는 의자에 걸려있던 후드집업을 걸쳐 입는다. 지석은 그때까지도 텅빈 눈을 뜨고는 놈의 흔적만을 열렬히 좇았다. 어이가 없네. 아니, 그래서 아침에 나 혼자 두고 어디 갔다 왔냐고... 빨린 기가 돌아오는 즉시 네가 말도 없이 어디 갔다 온 사이에 내가 너 대신에 네 앞으로 온 우편 하나 받았다고. 두부는 뭔 소리고, 새로 한다는 그 일은 또 뭔데- 하고 죄다 쏘아붙일 예정이었다만, 역시나 이번에도 놈이 빨랐다.

 

 

 

   "근데 고딩, 나 네 동거인이야?"

 

 

 

   머리를 존나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러자 놈은 눈을 잔뜩 휘어가며 웃는다. 저건 제대로 한 대 쳤다는 뿌듯함의 표상일까? 의중을 읽어내기도 전에 그 질문 아닌 질문을 끝으로 놈은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문을 닫았다. 씨발.... 하나부터 열 끝까지 다 마음에 안 드네.

 

   급하게 뒤를 쫓았다.

 

 

 

   "야!!!!"

 

   그 차림 그대로 뛰어나오는 녀석이 반가웠다. 대충 오 초 전에 본 것 같은데도 그랬다. 동거인 관계라서 그런지 말도 짧네...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뱉었다. 방금 내뱉은 혼잣말이 저 녀석의 불난 속에 부채질을 한 듯 했다. 들었어요? 어디서부터? 아니 들었으면 빨리 올라와서 네가 우편 수령하지 왜 가만히 있었는데? 근데 동거인이 뭐, 왜. 뭐가 어때서요. 아니 그럼 무슨 관계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하는데. 거기서 내가 뭘 어떻게 했어야 되는데요?

 

   대충 발에 걸리는 거 아무거나 신고 나온 나 때문에 본인 또한 사이즈도 브랜드도 제각각인 슬리퍼. 지금 이 상황에 웃긴 건 딱 이 사이좋은 짝짝이 슬리퍼 뿐이었다. 마구 쏟아낸 녀석의 말을 끝으로 정적이 찾아왔다. 오늘 눈이 와서 그런가 생각보다 안 춥네. 발만 좀 시렵고. 그래서 네 발이 괜찮은지 궁금했다. 그래서 물어볼 터 녀석에게도 시선을 옮겼다. 제가 딴 생각을 좀 하는 사이에 씩씩거리던 호흡이 진정된 모양이었다. 같이 산 지도 벌써 네 달 째인데, 여전히 칼을 갈고 날을 세우는 녀석이 어렵다. 정해두었던 질문은 굳이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녀석의 다섯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도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얼굴 보니까 지금 내 대답이 궁금한 게 아니네.

 

   "성질 다 냈어?"

 

   꼭 이럴 땐 가만히 못 있거나 소리부터 지르더라. 앙 다물린 채로 오물거리는 녀석의 입술을 쳐다보다가 제가 피우던 담배를 녀석 입에 물렸다. 빨아.

 

 

 

   "대답 잘했어. 동거인 맞지 뭐. 그러니까 내가 돛대의 돛까지도 나눠주지."

 

   지석은 그제서야 얌전히 입에 물린 것을 빨았다. 천천히 타닥거리는 미세한 소리가 좋았다.

 

 

 

   "다 빨았어? 들어가자 지석아."

 

   놈은 말 한 마디로 저를 진정시키는 재주도, 빡돌게 하는 재주도 모두 갖췄다. 다 빨았어? 까지는 진정. 그런데 그 뒤에 붙은 호칭은 빡. 놈과 나는 한 번도 서로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다. 말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저 저기- 또는 고딩- 으로 대신했다. 제가 당황한 듯 쿨럭이자 놈은 제게 물려있던 담배를 자연스레 뺏어가서는 난간에 소복히 쌓인 눈 위로 꽂았다.

 

   몸을 돌려 집으로 향하는 놈의 등짝을 보다가 깨달았다. 빡침의 본질이 어쩌면 걱정에 존재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고. 톺아보니 그랬다. 잘 나가지 않던 주말에 아침 일찍부터 외출했고, 처음으로 외부인이 집에 왔고, 그 외부인이 건네고 간 우편은 여전히 뜯지 않았다. 자꾸 알아듣기 힘든 소리만 했고, 갑자기 일자리가 생겼다고 했다. 게다가 이름으로 저를 부른다. 불안이 엄습했다. 지석은 정수를 가로질러 먼저 도어락을 열고는 집 안으로 우당탕탕 뛰어들어가 방문을 닫았다. 어쩌면 오늘이 뒤늦은 사춘기의 그릇된 발현 첫날이었던가.

 

 

 

   "애새끼 키우는 것도 아니고 진짜 돌겠네. 야, 슬슬 문 좀 열지?"

 

   벌써 십 분째 이어지는 대치였다. 지석은 져줄 용의가 없다. 이건 애새끼 말고 같이 사는 사람으로 대해야지만 시작할 수 있는 대화이니까. 애새끼라고 처부르지 마. 알았어 고딩. 그것도 하지 마. 그럼 뭐라고 부를까. 지석은 곰곰히 생각했다. 이름으로 부르라고 말하기는 또 죽어도 싫었다. 뒤늦은 사춘기의 그릇된 발현이란 그런 거니까.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놈이 선수를 쳤다.

 

 

 

   ".... 지석아?"

 

   고작 반 살 차이인 주제에 놈은 어른이 맞았다.

 

 

 

   "그럼 너도 이제 여기요, 저기요, 이놈, 저놈, 이 새끼, 저 새끼, 개새끼, 그거 다 그만할 거야?"

 

   너무 예리한 게 문제라면 문제인 어른. 눈치가 쓸데없이 빠른 어른. 간파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뭐든 꿰어낼 수 있는 미친 변태.

 

 

   방문이 열리고 끼익거리는 눈치없고 낡기만 한 소리와 함께 멋쩍은지 머리만 벅벅 긁는 고딩, 아니 지석이가 나왔다. 하마터면 못 참고 웃을 뻔했다. 다 풀린 매듭 줄 그냥 가위로 싹둑 오릴 뻔한 거지.

 

   그렇게 둘은 다시 식탁에 마주앉았다. 대낮이었다. 그런데 대낮인 걸 떠나서 우리가 식탁에 마주앉아서 대화라는 걸 해본 적이 있었나? 맹세코 처음이다. 몰래 정수의 맥주를 훔쳐 먹었던 날도, 학교는 안 가지만 억울해서 수능은 치고 오겠다고 통보했던 날도, 다정한 호구새끼의 무거운 생색에 못 이겨 차라리 저도 알바라도 하면 안 되냐고 물었을 때도 둘은 늘 허공을 두고 대화했으니까.

 

   "정 사장 만나러 갔었어."

 

   너도 알지? 정 사장. 모른다고 하고 싶지만 지석은 잘 알았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오는 통화 소리 때문에 정수가 정 사장의 심부름을 하며 일당을 챙긴다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었다. 정수는 대답도 반문도 없는 지석의 액션을 두고 긍정임을 눈치챘다. 마저 이야기를 이어갔다. 정 사장이 급한 건수가 하나 생겼다면서 평소 부르던 심부름값의 세 배를 더 띄워서 부르더라? 그래서 나갔어.

 

 

   아침 일곱 시, 정 사장에게서 문자가 한 통 왔다. 잠귀가 밝은 정수는 희미하게 반짝이는 불빛과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깼다. 대뜸 온 통보식 문자에 허 하고 바람 빠지는 웃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다시 전원을 끄고 잠을 청하려고 할 때, 자극적인 말풍선이 하나 더 놓였다. 사백. 대뜸 던져진 숫자였다. 그리곤 여덟 시까지 늘 보던 장소로 오라는 문자를 끝으로 더 무어라 말이 없었다. 김정수를 잘 아는 놈의 문자 방식이었다. 제가 읽을 줄 알았고, 나올 줄도 알았으니 할 수 있는 횡포였다. 앞으로는 이런 통보식 호출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할지까지 다 세워둔 것과 다르게 정수는 그저 침대에 걸터앉아있다가 대충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갔다. 평소처럼 샤워하고 머리를 가지런히 정돈한 뒤에 청바지를 꺼내입지 않은 이유는, 제 고양이 인형을 베고서 세상 모르게 자는 저 녀석이 깰까 봐. 그 하나 때문이었다. 이 시간부터 부른 이유 따위는 겁나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악몽도 안 꾸고 편하게 자고 있었는데 너 때문에 깼다면서 으르렁 거릴 녀석은, 조금 겁이 났다.

 

   아침 여덟 시, 정 사장과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익숙한 차가 아닌 경찰차가 한 대 서 있었다. 혹시 몰라서 챙겨 나온 현관 앞에 놓여있던 고딩의 택배 박스 뜯는 칼이 이렇게까지 위로될 줄이야. 주머니에 들어있는 파란색 커터칼의 심지를 살짝 뽑을 때쯤 뒷 좌석의 창문이 열렸다. 역시나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얼른 타자. 차 때문에 그래? 그냥 미관상 좋으라고 마련했는데. 어때, 마음에 드셔?"

 

   모자를 푹 눌러쓴 채로 골목에 들어온, 누가 봐도 수상한 심부름꾼이 지금 경찰차에 타서 좋을 게 있을까. 원치 않게 가방끈이 짧아서 대가리에 국영수를 덜 넣은 탓에 계산기 없이는 계산도 잘 안 하던 김정수가 다급히 머리로 계산을 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백이 밟혔다. 아침에 받은 문자 속 사백이 진짜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곧 있으면 말일이니까. 정수가 허탈하게 웃어대는 찰나, 운전석에 앉아있던 경찰이 내려서 뒷좌석 차 문을 열어 주었다. 자고 있던 순간보다 깨어있는 지금이 더 꿈같다.

 

   차에 올라탄 정수는 시동이 걸리자마자 부러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안녕하세요, 정 사장님 심부름 하러 나왔습니다. 시키실 일이 어떤 걸까요?"

 

   정수의 질문을 듣기는 한 건지 남자는 그저 운전석에 앉은 경찰에게 목적지를 읊었다. 경관님, 요 앞에 한 바퀴 빙 돌고서 진선마트 앞에서 얘 하차요.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태를 훑었다. 경박스럽지만 또 없어보이지는 않는 태에 기가 죽을까 부러 고개를 빳빳하게 세웠다. 집에서나 어른이지 바깥에만 나오면 그냥 애새끼인 게 꼭 이럴 때 탄로가 났다. 이런 자각은 하게 될 때마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기분을 느낄 새도 없이 남자의 말이 귀에 꽂혔다.

 

   "사장? 걔가 그래? 귀여운 씹새끼네 그거."

 

   김 대리야, 사장 말고 앞으로는 그냥 정 과장님- 하고 불러. 아, 내가 우리 청년 이름은 모르는데 김씨이신 건 알아서. 내가 들어보니까 우리 김 대리가 일을 그렇게 잘 한다던데. 눈치가 빠른가 봐. 한 번도 안 잡힌 거 보면.

 

   "씨발아 누구세요?"

 

   저를 다짜고짜 대리라고 부르는 놈과 거리를 두기 위해 급하게 벌인 나름의 대처였다. 남자의 말이 옳다. 김정수는 눈치가 빠르다. 그래서 채진 순간의 눈치 하나로 남자는 눈치채지 못했을 속도로 뒷자리 보조석의 벨트를 뽑아 남자의 두 팔을 묶고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칼을 꺼내들며 질문했다. 너 누구시냐고. 쪽수부터 딸리는 불리한 상황인 줄 알면서도 칼춤을 췄다. 이 상황의 유일한 흠은 계산 안 때리고 칼 뽑은 멍청한 용기도, 본인이 운전석 뒷자리에 앉아있다는 자각 못한 불리한 위치도 아닌 겁대가리 없이 뽑아든 이 칼의 모양새가 곽지석이 다이소에서 그저께 사온 구름 모양 커터칼이었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가장 등신같은 흠. 그럼에도 남자는 이런 김정수의 액션이 마음에 드는 듯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잘 노네! 난 정 사장 아니고 장 사장."

 

   순식간에 봉을 꺼내든 경찰을 말리며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경관님, 됐어요 됐어. 거 앞에 보고 운전대나 똑바로 잡으셔. 초짜같이 왜 이래. 네가 사장인 줄 아는 정 사장의 사장이 나야. 그제서야 이해되는 여러 순간들이 스쳐갔다.

 

   "아, 그리고 전에 김 대리 통수 깬 병신새끼 사장이기도 하고."

 

   통수?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날. 임팩트가 강했던 탓에 회상까지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태웠고 거뒀고 맞은 날. 그리고 그날 기억의 끝물엔 씻고 나온 고딩이 머리에서 떨어뜨린 물방울 때문에 무척이나 간지러웠던 발등이 존재한다는 점까지 완벽하게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누구? 아... 그 둔하게 생긴 아저씨?"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탓에 정수가 창문을 살짝 열며 대답했다. 빡치네. 내가 그때 내 얼굴 잊으라고 쌈짓돈까지 묻혀줬는데.... 나중에 만나면 그거 다시 돌려받겠다고 전해 주세요.

 

   "금방 돌려받겠네."

 

   네? 금방 받겠다고. 오늘 나 돈 주러 왔거든. 보니까 정 과장이 지가 처할 일을 김 대리한테 헐값에 맡기고 있었더라고. 알잖아~ 돈 계산은 나이스해야 되는 거. 다 사람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안 그래요? 김정수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사장이라는 남자가 놀리는 세 치 혀에 잠식될 뻔했다. 손등을 손톱으로 꾹꾹 눌러가며 정신을 차려야 했다. 손등 위로 열 개 정도 깊은 손톱 자국이 생겼을 쯤 사장은 다시 입을 뗐다.

 

   "앞으로 일 좀 꾸준히 할래? 별거 없어."

 

   별거 없기는. 김정수는 여태 정 사장, 아니 정 과장이 맡겼던 일을 곱씹었다. 전달해야 하는 건 늘 같은 노란 봉투였지만, 그 방법들이 달갑지 않았다. 꼭 창문을 부수고 그 안으로 던져야 한다든지, 친구들과 놀고 있는 교복 입은 학생에게 직접 전달해야 한다든지, 아침마다 집 앞에 걸리는 죽 봉투에 정체 모를 비타민과 함께 넣어둬야 한다든지. 찝찝했지만 그 기분을 느낀다고 해서 좋을 게 하나 없음을 알기에 여태 회피해 온 감정들이었다.

 

   "주말은 알아서 노시면 되고, 주중엔 아홉 시까지 출근해요. 월급은 지금 받는 돈만큼은 당연히 챙겨줄 거고. 아, 그 김 대리 일하는 꼬라지 봐서 인센티브도 있고."

 

   어쩐지 정 과장의 문자 말투가 오늘따라 통보식이다 했는데, 어쩌면 이 사장이 그 휴대폰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은 김정수가 제안에 승낙한다는 것을 아는 듯 굴었다. 그런 제 불쾌한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사장의 눈이 반짝였다. 경관님, 잠깐 차 좀 세워요. 우리 여기서 담배 한 대 피우고 가자. 그러자 곧바로 경찰차가 갓길에 부드럽게 섰고, 사장이 내렸다.

 

   정수는 따라 내려서 같이 담배를 태우면 그 제안에 대해 승낙하는 꼴이 된다는 걸 알았다. 방금 전 건네받은 봉투를 열어 대략적인 금액을 확인했다. 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봉투를 열어 액수를 확인하는 것만큼 거지새끼 티 풍기는 행동이 또 어디 없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그딴 걸 가릴 상황이 아님을 알았다.

 

   사백. 얼핏 봐도 그 금액이 맞았다. 열린 차문으로 사장의 좆같은 웃음소리가 들어왔지만 정수는 안 들리는 척 했다. 그래, 궁한 놈으로 보였다면 차라리 다행이지. 부디 제가 품은 약점과 흑심이 비춰지지 않길 바랐다. 이 정도 값이면 같이 사는 고딩과 제 밥값 정도는 앞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계산이 끝났다. 내내 들지 않던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들었다. 뒷목이 뻐근했다.

 

   정수는 씩 웃으며 차에서 내랴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언제 떴는지 모를 해 때문에 부신 눈을 찡그리고는 다 씹힌 발음으로 질문했다.

 

   "뭐 하는 곳인데요?"

 

 

 

   "사채."

 

   예상 못했던 영역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완전히 예상했던 바도 아니었다. 놀라는 표정이라도 들킬까 괜히 기지개를 켜고서는 곧바로 불을 붙였다. 으응... 뭐 그러시구나.

 

   "알지? 아무데도 돈 빌릴 곳 없어서 허덕이는 불쌍한 사람들한테 손 잡아주고 돈도 빌려주는 곳."

 

   모를리가. 굳이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던 기억들이 솟아날까 재빨리 답을 얹었다. 알죠. 좋은 곳.

 

   사장이라는 놈은 김정수에게 대답과 눈빛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좋은 곳이라고 한 대답이 마음에 든 건지, 대답과는 달리 살기가 가득했던 그 눈빛이 마음에 든 건지는 몰라도 지금부터 당분간 김정수에게 소속이 생기는 순간임은 확실했다.

 

   김정수는 집에 돌아가는 걸음 내내 떨떠름한 기분을 정리하지 못했다. 소속이라는 게 반가워질 쯤에는 허탈함이 몰려왔고, 그럼 다시금 소속 없이 지내온 세월을 탓해보고 싶었다. 그제야 휴대폰을 켜고 연락들을 확인했다. 고딩에게서 연락이 와 있을까 마음 졸였던 잠깐이 무색했다. 몇 개의 광고성 알림 과 그 사이에서 존재감을 내비추는 정 과장 이름으로 온 문자가 전부였다. 나야, 김 대리. 집으로 우편 하나 갈 거야. 서약서니까 출근하는 날 들고 와.

 

   답장은 하지 않았다. 저장명을 '정 사장'에서 '정 과장(장 사장)'으로 바꾸고나니 그제서야 시간이 보였다. 요즘 늦잠 많이 자니까 그래도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이네. 그냥 좀... 자고 있었으면 좋겠다. 집에 가서 고딩에게 이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한다고 치자. 그럼 어디서부터 꼬였다고 자백해야 할까. 사실은 내가 네 집 태우던 그날, 네 집에 있던 것들을 좀 훔쳐 나왔다는 말부터? 아니면 사실은 내가 너희 아버지 죽고 나서 그 집 털려고 했었던 등신같은 사채 조직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부터? 아니면 더 과거로 가야하나. 나는 날 때부터 거지였고 그래서 사채를 존나 혐오한다는 것부터? 뭐가 됐건 고딩은 분명 안 좋아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김정수는 당장 고딩과 본인이 살 길이 생겼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집에 고쳐야 할 게 한둘이 아니었다. 첫날부터 삐걱대던 경칩과 녹슨 화장실 거울, 부엌 싱크대 아래 고무 호스와 화장실 안에 있는 드럼 세탁기. 닦아도 자꾸만 피어오르는 소파 옆 곰팡이. 우선 급한대로 고쳐서 살고 내년에 돈 좀 모으고 나면 이사 가고 싶은데. 그런 생각을 하니 사백을 든 몸이 가벼워졌다.

 

   어차피 너도 나도 그날 이후로 인생 많이 달라진 거 아닌가. 그냥... 이제부터는 그런 인생을 살자. 고딩, 너는 동의할 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름 동의하니까. 정수는 계속해서 위로일지 세뇌일지 모를 구절들을 반복하며 집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장면 몇 개와 속마음 몇 개만 걸러내고 죄다 자백했다. 하지만 듣는 지석은 이걸 자백이 아닌 고백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듣는 내내 똑똑 뜯어대는 손가락의 거스러미에서 피가 나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정수는 아무 말도 얹을 수 없었다.

 

   "못 믿겠으면 네가 수령한 우편물 열어 봐. 아마 무슨 서약서일 거야." 

 

   지석은 자꾸만 대답이 없다.

 

   "그... 깡패들도 그냥 아무 때나 사람 패는 나쁜 놈들은 아닌가 봐."

 

   정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잘도 했다.

 

 

 

   지석은 뜯어낸 봉투 속 서류를 슥슥 만지며 훑다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두부는. 두부도 설명해야지."

 

   "무슨 두부?"

 

   "내가 저번에 두부 없다고 찡찡거렸다며."

 

   지석의 말을 끝으로 정수는 호탕하게 웃어제꼈다. 근래 처음으로 가장 시원하게 웃은 덕에 눈꼬리엔 눈물까지 맺혔다. 야, 그걸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어? 이거 참 집요한 고딩, 아니 곽지석이네.

 

   "너 나랑 살고 얼마 안 돼서 내가 밥 해 줬던 거 기억 안 나? 된장밖에 없어서 된장찌개 끓였더니 안에 두부도 없다면서 툴툴댔잖아. 그래서 사 왔어. 오늘도 집에 된장밖에 없는데 두부까지 없으면 네가 내 팔이라도 뜯어서 찌개에 넣을까 봐."

 

 

 

   지석은 기억이라도 떠오른 듯 갑자기 뻐끔거리는 입으로 외마디 탄식을 내뱉더니 본인 머리칼을 잔뜩 헝클었다.

 

   "무슨 그딴 걸 다 기억하고 그래요? 저기, 진짜 개변태새끼 같은 거 알죠?"

 

   "저기 말고"

 

   "네?"  

 

   "정수"

 

   마주앉아 대화한 지는 좀 됐는데, 시선이 얽힌 건 처음이었다. 마주보기 전에는 지금까지 대화하면서 한 번도 마주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다. 게다가 방금 막 낙하산으로 들이꽂힌 감정은 뭐라 정의할 수도 없었다. 지석은 변명을 얹어가며 황급히 호칭을 고쳤다. 아 맞다. 깜빡했어요. 너무 습관이라.

 

   "... 정수"

 

   "옳지"

 

   기다렸다는 듯 따라붙는 옳지 소리에 기분이 더러워졌지만, 오늘은 굳이 짖고 싶지 않았다. 지석이 짖지 않으니 정수도 타이르지 않았다. 이어지는 속시끄러운 정적 속에서 그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낮 않은 채 김정수 곽지석은 상호 묵언으로 동의했다. 그냥 이제부터는 그런 인생을 살자.

 

   그런 인생을 살자고 암묵적으로 합의한 첫날에 남은 징표는, 달라진 호칭으로 족했다.

 

   지석아. 정수.

 

 

-

 

 

   걱정하던 스물과 열아홉을 비웃어야 할 판이었다.

 

   김정수는 고등학생이어야 할 나이부터 심부름을 뛰었던 탓에 몸에 밴 일처리 습관을 뿌리 삼아 뒤탈 없이 늘 깜끔하게 일했고, 늘 을이었던 덕분에 까라면 까는 게 익숙했다. 또 남들은 모르는 확실한 약점과 흑심을 품고 사는 탓에 지켜야 할 선은 칼같이 지켜냈다. 심지어는 태생이 다정인 호구새끼 버릇 결국 남 못 준 덕에 꼭 피 말릴 때까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구슬렸고, 그렇게 신체포기각서까지 받아내는 것이 김정수의 업무였다.

 

   "아저씨, 걱정하지 마요. 싫으면 여기 집 있는 거 다 팔고 갚으면 되잖아. 그치?"

 

   때문에 조직에서는 낯짝 반반해서 사람 잘 구슬리고, 집요하게 알짱거리는 관성 덕에 일머리 하나는 타고난 놈, 소위 말해 에이스로 통했다. 때문에 별명까지 생겼다. 떼인 돈 참 잘 받아오는 놈, 일명 호랑이 새끼. 사장에게 처음 그렇게 불렸던 날 정수는 사실 속으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지석이한테서 '새끼' 소리 벗어나니까 다시 찾아온 온 '새끼'네. 효력이 있다면 매일 떡국을 들이키고 싶었다. 새끼 소리 들을 나이를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은 일종의 몸부림이었다.

 

 

 

   "떡국 먹을까?"

 

   "또? 형 진짜 안 질려?"

 

   퇴근길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지석의 발작이 반가웠다. 먹을 생각도 없었지만 괜히 한 번 더 지석을 놀려보고마는 제 스스로의 취미가 흡족했다. 장난이야. 떡국 안 먹을 거야. 오늘은 고기 먹자.

 

   "이따 전화하면 내려와"

 

일을 하면서 생긴 또 다른 말버릇이었다. 돈을 벌면 벌 때마다 늘 집 잘 지키고 있던 지석은 이제 제가 지켜야 하는 지석이 됐다. 일을 하면서 가장 빡돌았던 순간을 꼽자면, 단언컨데 콩나물 국밥을 먹으러 가기로 쇼부 봤던 날일 것이다. 정수는 그날 퇴근길 버스에서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사람은 안 패겠다던 지석과의 약속을 져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 달이면 이자가 더 붙던 그 도박꾼 대머리가 용감하게도 정수의 뒤를 밟아 미리 마중 나와있던 지석을 치고 튀었다. 사채 빚이 사람 피 말린다는 건 모르는 바 아니지만, 사채 빚보다 더 피 말리는 건 약점과 흑심을 건드는 순간임을 대머리는 몰랐던 듯 싶다. 그날 지석은 오른쪽 팔이 부러졌고, 전치 10주를 처방받았다. 다시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다시는 네가 나 때문에 손끝 하나라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해본 적은 없지만 염치 불구하고 그저 바랐다. 지석과의 전화를 끊고 정수는 그날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그리고 퇴근길 만원 버스에 앉아 손가락 우드득 꺾어대며 심호흡만 반복하던 김정수와 달리 곽지석은 전화를 끊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였다. 김정수에게 줄 선물을 빨리 숨겨야 했다.

 

   휴대폰 케이스 주제에 더럽게 비쌌다. 오늘 둘이서 배 터지게 고기 먹어도 이 케이스 한 개보다 쌀 게 뻔했다. 그럼에도 지석은 만족하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일하고 조금 더 모아서 최신형 휴대폰이라도 사 주고 싶었지만, 정수의 기가 막힌 눈치 때문에 꾸준히 일을 뛰기엔 무리가 있었다. 최근 정수 몰래 단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루 뛰고 일당 받는 거라 종일 일하고서 쥐어지는 지폐 두 장을 보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제 현실을 떠올리면 그 또한 감사했다. 작년까지는 미성년자라 마음대로 일자리를 구하지도 못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감지덕지였다. 사실 지석은 스물이 된 순간부터 늘 정수에게 뭐라도 쥐어주고 싶었다. 어디에서부터 기인한 마음인지는 모르겠다만 예정에도 없던 동거와 연민과 동정으로 얽혀버린 관계에서 자꾸만 을처럼 느껴지는 제 자신을 향한 존재 부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존재 부정을 뇌물이라는 애새끼같은 방법으로 해낸대도 욕짓거리가 아닌 웃음으로 다시 제 존재에 확신을 주길 바라는 더 어리석은 스스로의 소망이 혐오스러웠다. 뇌가 저려올 때마다 김정수는 호구니까, 정수는 다정하니까, 형은 동거인이니까 하는 혼자만의 정의를 되뇌였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길 바라기까지 했다. 그만큼을 바라려거든 언제까지고 맨날 늦잠 자고, 밥 먹고, 게임하고, 책 읽고, 집 치우고, 기타 칠 수는 없으니까. 다 알면서도 늘 부정하고 싶었지만, 부정하려 들 때마다 인정하게 됐다.

 

   벌써 정수와 같이 산 지도 일 년이 되어간다. 요즘 정수가 이사 생각이 있다는 것도, 그 때문에 무리하게 일을 한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그 가을과 겨울, 어쩌다 얽혀버린 동거인이라는 이름표 속엔 포근함도 존재했지만 따가움도 존재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전히 사막에서 헤엄치는 꿈을 꿀 리가 없었으니까.

 

   요즘들어 정수는 휴대폰 필름을 박살낸 채로 퇴근하는 일이 잦았다. 처음엔 필름이 아닌 휴대폰이었다. 휴대폰이 박살났던 날, 김정수는 무릎과 어깨도 다 박살이 나서 왔다. 그러는 주제에 무릎과 어깨 말고 휴대폰을 먼저 바꿨다. 대신에 방탄 필름을 열 매씩 구매했고, 그 덕분에 휴대폰이 아닌 필름을 깨서 왔다. 그리고 또 한동안은 안 그러다가 요즘은 일주일에 대체 필름을 몇 개나 갈아대는지 모르겠다. 현장 그만 나가면 안 되냐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 말 또한 실례임을 알았다. 지석의 양심은 필요 이상으로 주제 파악을 잘하고 있었으니까. 지석은 그런 정수 생각을 하며 본인이 준비한 선물을 만지작거렸다. 분명히 엄청 좋은 케이스라고 했다. 이름부터 전면 울트라 임팩트 방탄 범퍼 케이스. 사방에서 지켜준다는데 덜 아프겠지 하는 생각에 그저께 새벽, 덜컥 값을 지불했다.

 

   선물. 사실 지석은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했다. 굳이 케이스를 선택한 이유도 그랬다. 언제부턴가 곽지석은 김정수 휴대폰의 안위에 집착했다. 이는 정수가 일을 하면서 생긴 지석의 견고한 버릇이었다. 만날 집만 잘 지키고 있으면 됐던 지석은 이제 김정수까지 신경써서 지켜야만 했다.

 

   하루는 퇴근 시간을 넘어서까지 연락이 되지 않았고, 그날은 정수가 처음 인천 현장에 투입된 날이었다. 다 큰 사내가 알아서 일 끝나면 늦게라도 기어들어오겠다는 걸 알았지만 지석은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그날따라 우풍 때문에 몸이 시렸고,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가 거슬렸다. 좁기만 한 방이 너무 넓어서 감히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바닥과 붙어버린 토퍼가 아닌 정수가 누워 자는 침대에 누웠는데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자꾸만 떠올리고 싶지 않은 죽은 아버지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괴로운 나머지 연거푸 세수를 한 탓에 볼이 따가웠는데도 그 행위를 계속해서 몇 번이고 반복했다. 휴대폰에 112를 썼다 지웠다도 체감 백십두 번 정도 반복했다. 하지만 신고할 수 없었다. 김정수는 사채하는 깡패 새끼니까. 더 이상 심부름만 하는 소속 없는 떠돌이가 아니었다.

 

   그날 지석은 꼴딱 밤을 새웠다. 이 집에 오고난 뒤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지석은 첫 날부터 잘 잤었으니까. 해가 떴고, 바깥은 서서히 클락션 소리와 오토바이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새의 지저귐도 멎었다. 완전히 아침이 되었다. 지석의 거친 호흡은 진정되지 않았다. 인천에 간다는 것 외엔 아무것도 몰랐지만 거기까지 가서 뒤져보기라고 할 기력이 있으니 무작정 갈 생각이었다. 여차하면 인천 바다를 싹 다 뒤져도 볼까 했다. 그렇게까지 찾아야만 하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지만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갈 곳 없는 나를 제 외딴섬에 가둬준 호구는 돌아올 곳이 있으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그 사실을 이 지구에서 저만 아는 듯 했으니까.

 

   신고 나갈 것을 고를 정신도 없어서 발에 걸쳐지는 걸로 아무거나 신었다. 그리고 퉁퉁 부은 눈으로 집 문을 열자마자 내뱉은 건 찬 바람 속 뜨거운 한숨이 아닌 고함이었다. 그리고 지석이 고함을 지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문 앞에 쓰러져있는 김정수 몰골이 처참해서도, 그중 특히 눈이 더 퉁퉁 부어있어서도 아니었다.

 

   "거기 왜 그러고 있는데."

 

   오늘 추웠는데. 나 내내 안 잤는데. 그냥 손 한 번만 뻗어서 문에 소리라도 냈으면 내가 문 열어서 너 금방 안으로 들였을 텐데. 등신같은 미련함에 놀라서 고함을 내질렀다.

 

   "야!!!!!!!!"

 

   김정수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고롱고롱하게 겨우 뱉어지는 숨과 달리 웃음은 짓기 쉬웠다. 반갑네, 이 짝짝이 슬리퍼. 요즘은 좀 제대로 짝 맞춰서 신는다 했더니. 전혀 아니었네. 지석아, 잘 잤어?

 

 

 

   정신 차리고 보니 집 화장실이었다. 변기 커버 위에 반강제로 앉혀진 김정수는 아주 강제로 세수를 당했다. 그새 요령이라도 생긴 건지 눌러붙은 피딱지를 아프지 않게 닦아내는 법을 아는 듯 했다. 정말 하나도 안 아팠다.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제 얼굴을 닦아내곤 샤워기 호스를 끌어다가 머리까지 감겼다.

 

   "... 야 암만 그래도 나 지금 옷 입고 있는데.... 냅다 물 끼얹으면 좀 찝찝한데..."

 

   "닥쳐. 김정수 내가 당장 죽여버리기 전에."

 

   진짜 저를 죽일 듯한 기세였다. 죽이겠다는 놈치고 눈동자는 자꾸 떨리고 손가락엔 힘이 없었지만 그래도 죽이겠다니까 그 말을 믿어주기로 했다. 정수는 순순히 닥쳤다.

 

   지석은 정수를 다 씻기고 침대에 눕혔다. 이상하게 차가워야하는 침대가 따뜻했다. 지석아, 너 혹시 내 침대에서 잤어? 대답이 없다. 나 없을 때 내 침대에 누워 자는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네. 말을 하지. 그럼 아침에 출근하면서 네 고양이 인형 침대 위로 올려두고 나갈 걸.

 

   정수는 다 찢어진 입으로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키득거리며 웃었다. 지석은 가만히 꼬나보다가 대답했다. 어차피 형은 집에 들어오지도 않으니까. 그래서 좀 침대에서 잤다. 왜. 안 돼?

 

   "아니."

 

   말도 없이 침대에 누워서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날아온 '아니'라는 정수의 대답은 지석을 단숨에 안도시키기에 충분했다.

 

   "오늘은 옆에서 자. 봐서 주말에 침대 큰 걸로 하나 사러 가게."

 

  

 

   김정수는 자꾸만 이렇게 떠올리게 할 거리를 쥐어줬다. 그저 정수에게 선물할 휴대폰 케이스를 만져댔을 뿐인데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날도, 그 다음엔 침대를 사 들였던 그 주말까지도 회상해버렸다. 2층 주택 집의 옥탑까지 침대 한 번 올려보겠다고 용달에 사람까지 부르면서 별 지랄을 다 떨었던 때를 떠올렸더니 배가 고파졌다. 괜히 고양이 인형을 두어 대 팼다. 에잇, 한 대 더 맞아라.

 

 

 

   "어어, 형. 내렸어? 알았어, 재촉 좀 하지 마. 조금만 기다려. 바로 내려갈게."

 

   빨리 오라면서 천천히 오라는 말은 왜 해? 빨리 오라는 건지 천천히 오라는 건지 모르겠는 인사를 끝으로 지석은 전화를 끊자마자 급히 움직였다. 침대 옆 협탁 아무 칸이나 열어 케이스를 쑤셔넣고 나왔다. 아씨, 포장도 못 했는데.

 

 

 

  집에서 볼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이렇게 가끔 밖에서 볼 때는 어색해서 토할 것 같다. 거짓말처럼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정수는 그런 지석을 알기라도 하는 듯 늘 빨리 걷는 지석의 뒤에서 비적비적 걸으며 같이 가자며 놀려댔다. 또, 집에서 밥 먹을 때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밖에서 먹을 때는 민망해서 뚝딱이게 됐다. 네? 아, 아니 맛있어서. 너 왜 존댓말 해. 하하... 벌써 젓가락 두 번이나 떨어뜨렸다.

 

   "오늘 진짜 왜 그래? 뭐 혼자 집에서 야동이라도 보다가 온 고딩마냥 안절부절을 못 하네."

 

   벌써 세 번째 새로운 젓가락을 꺼내며 핀잔인지 놀리는 건지 모르겠는 구식 멘트까지 날린다. 이럴 때는 꼭 고딩이래. 네 술 친구 되어주기 시작한 지가 언젠데. 그리고 꼭 말은 그렇게 하면서 젓가락은 또 왜 내 방향으로 놓아주기까지 하는 건지, 곽지석은 여전히 김정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김정수는 식당에서부터 고딩에 꽂혔다. 고딩, 밥 많이 먹고 배 똥똥해지면 이따 또 코 골면서 쿨쿨 자라. 고딩, 이따 집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먹을까? 싫으면 말고. 고딩, 근데 오늘은 뭐 하면서 뒹굴뒹굴 했어? 왜 아무 말도 안 해 줘? 고딩, 요즘 집 안 추워? 아낀다고 지랄 떨지 말고 보일러 좀 틀어. 그렇게 따뜻하게 좀 살자고 뺑이 치는 건데 이 형은 너 싸늘하게 굳어서 발견되면 죽은 너부터 한 번 더 죽일 거야.

 

   고딩, 얼마만에 듣는 건지도 모르겠는 싸구려 호칭이지만 지금 곽지석 귀에 그딴 게 중요할 리 없었다. 당장 침대 옆 협탁에는 선물이 들어있고, 처음 줘 보는 고가의 선물이라 어떤 식으로 건네야 할 지조차 감이 안 왔다.

 

 

 

   "고딩."

 

   어차피 들킬 건데 먼저 선수를 칠까?

 

   "고딩?"

 

   내가 뭐 죄 지었어? 그냥 선물이라고 하고 건네면 될 걸.

 

   "야, 고딩."

 

   솔직히 십 만원이 뭐 어때서. 이때까지 월세도 안 내고 잘만 살았으면 이건 그냥 스치는 돈이지.

 

   "곽지석"

 

  정수는 지석의 어깨를 거칠게 부여잡고 지석의 몸을 순식간에 돌려놨다. 세 번이나 불렀는데 이건 아니지. 엉? 지석은 언제 세 번이나 불렀냐는 듯이 안 그래도 크고 동그란 눈을 더 키웠고, 정수는 무척이나 격양된 목소리와 흔들리는 동공으로 지석을 추궁했다. 이건 어디서 기인한 불안함일까. 형은 왜 불안한 눈을 떴을까. 이어지는 정수의 말은 지석의 속을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너 진짜 오늘 왜 그러는데. 무슨 일 있었어?"

 

   답지 않게 정수의 목소리가 잔뜩 떨렸다.

 

   지석은 서러웠다. 선물 하나 쥐어주기도 이렇게나 힘든데 뭘 얼마나 어디까지 바랄 수 있는 건지, 바라도 되는 건지는 감히 감도 안 왔으니까. 웃긴 건, 서러워지자마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슨 이딴 관계가 다 있어.

 

 

 

   "형 진정 좀 해. 그런 거 아니고 사실 줄 게 있어서."

 

   지석은 따라오라는 말과 동시에 벌떡 일어났고, 정수는 그런 지석의 손목을 급하게 붙잡았다. 뭔데. 어디 가는데. 형이 무슨 애새끼야? 어디 안 가고 네 방 가니까 따라오라고. 군말없이 따라갔더니 이번엔 협탁을 노려본다. 따라오라며. 뭐하는 건데. 그러자 갑자기 또 발발 떨리는 목소리로 어이없는 선택권을 내어준다.

 

   ".... 내가 열까, 형이 열래?"

 

   지랄을 한다. 김정수는 픽 터져버린 헛웃음과 함께 협탁을 세차게 당겨 열었고, 그 힘에 못 이겨 우르르 아래로 쏟아진 것들 중에서는, 도무지 정체를 모르겠는 처음 보는 것과 별로 반갑지 않은 것을 동시에 발견했다. 딱 봐도 까맣고 튼튼하게 생긴 케이스와 이상하리만큼 작고 네모난 케이스.

 

   둘 사이 침묵이 오갔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곽지석은 케이스를, 김정수는 작고 네모난 케이스를 냉큼 주웠다. 그제야 서로 든 것을 확인했다. 정수는 등골에 땀이 한 줄기 주르륵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등골이 오싹한 게 아니라 등골이 지렸다.

 

   "뭔데?"

 

   지석은 귀신같이 쏘아붙였다. 뭐냐고 그거.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닌게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당장 버려도 돼. 나와 봐, 버리고 오게. 뭔지는 알자. 네가 알아서 뭐 하게. 나도 이 협탁 같이 쓰는 사람으로서 알 건 알아야지. 내 거일 수도 있잖아. 내 거야, 내 거 맞아. 어쩌라고.

 

   김정수는 크고 강했고, 곽지석은 작고 날렵했다. 이번만큼은 날렵함이 유리했다. 케이스는 뒷전으로 그 작고 네모난 케이스를 손에 쥔 곽지석은 단숨에 열어봤고, 열자마자 후회했다.

 

   "아... 애인 주려고?"

 

   "아니, 그게 아니고"

 

   정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석은 짐작했다. 그래, 반반하고 고자도 아닌데 애인이 없는 게 더 이상하지. 진작에 말을 하지, 그럼 가끔 집도 비워 주고 했을텐데. 그딴 거 아니라고. 그딴 거 아니라는 정수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지석은 다시 한 번 더 후회했다. 이런 서프라이즈가 같이 있는 줄 알았으면 나 이렇게까지 긴장 안 했지.

 

   "선물이야. 이거 케이스인데 엄청 튼튼하대. 얼마 안 하는 거니까 열심히 끼고 다녀."

 

 

 

   넘어오지 말라고 선까지 긋고선 늘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선이고 나발이고 세상 편한 자세로 자던 여느 날들과 다르게 보이지 않는 선이 다섯 개쯤은 존재하는 듯 온전히 등을 돌린 채 잤다. 개운하지도 그렇다고 개운하지 않지도 않은 밤이 지났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김정수가 늘 아침에 샤워하면서 열창하던 서울의 달은 유독 소리가 작았다. 기분이 구렸다. 딱 저를 의식하는 듯 했다. 같이 사는 동생한테 반지 쯤이야 들킬 수도 있지, 그걸 왜 민망해 해? 남자끼리 뭐가 문젠데. 하지만 이런 생각을 계속 반복하는 지석의 머릿속도 제정신은 아닌 듯했지만, 껍질만 보면 아무렇지 않은 사람의 표본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면 아무렇지 않아지나? 열아홉 살에 그때도 김정수랑 같이 해본 적 있는데 그땐 정말 아무렇지 않아졌었다. 이번엔 왜 이렇게 어려운지 속이 쓰렸다. 김정수가 이따 저녁에 보자는 말을 허공에 외치고 집을 나서자마자 곽지석은 거실로 나와 캔맥주를 까 벌컥벌컥 들이켰다.

 

   생각보다 화해는 쉬웠다. 그날 밤 김정수는 퇴근길에 시장 입구에서 할머니가 파시는 악세서리 노점을 발견했고, 중구난방 가득한 꽃무늬 악세서리 가운데 가장 멀쩡한 팔찌 두 개를 골라집었다. 그냥 검은색 끈에 옥색 비즈가 하나 달렸다. 얼핏 보면 거인국 반지 같기도 할 정도로 팔찌같지 않았다. 도어락 문을 열고 형 왔다~ 하는 인사를 건네자마자 답지 않게 지석이 비적비적 나와서 손을 흔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웃기는 놈이네. 이제 정수는 지석을 다룰 줄 안다. 가만히 두면 살짝 풀어진다. 그럼 그때 비집고 들어가면 된다. 아직 풀리기 전임을 읽어낸 정수는 샤워하면서 서울의 달을 열창했다. 오늘 밤 바라본 저 달이 너무 처량해. 너도 나처럼 외로운 텅빈 가슴 안고 사는구나. 그리고 그런 정수의 소리가 그날따라 거슬렸던 지석은 샤워하는 정수를 두고 화장실 불을 꺼버렸다.

 

   "야, 불 켜."

 

   "조용히 해."

 

   "알았으니까 빨리 켜."

 

   생각보다 화해는 필요 이상으로 쉬웠다. 꽁기할 시간조차 사치라는 듯 굴었고, 그런 서로가 서로에게 있어서 딱히 치를 떨 정도로 싫지는 않았다. 아직 안 풀렸어? 이딴 식으로 콕 짚어서 질문하는 김정수의 질문만 빼면 완벽할 듯 했다.

 

   "풀렸어."

 

   "근데 왜 말 안 걸어."

 

   "안 걸고 싶어서."

 

   "그래 그럼."

 

   김정수가 씻는 사이 정수의 주인 모를 반지 케이스와 반지를 통째로 처리한 곽지석은 괜히 김정수의 행동을 감시했다. 반지 찾는 시늉 한 번이라도 해 봐. 그리고 그런 지석의 레이더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 김정수는 마저 머리를 말리고 웃통에 묻은 물기를 닦아냈다. 사실 여차하면 김정수를 두어 대 패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김정수 등짝에 늘어난 스크래치를 보다 그 생각은 접었다. 그래, 안 그래도 처때리고 처맞고 사는 깡패 새끼 내가 두어 대 더 패서 뭐 해. 그래서 오늘도 애꿎은 고양이 인형만 더 팼다. 내가 맨날 때린다고 해서 납작해지면 안 돼. 하는 소시오패스적인 말풍선은 속으로 삼켜냈다. 대신에 꺼내고 싶지만 꺼낼 수 없는 김정수를 향한 말풍선은 2D로 대신하는 방법을 고아냈다.

 

 

 

   "말 안 걸고 싶어서."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방금 막 따고 한 모금 삼킨 김정수에게 다가가 지석은 다짜고짜 뜬금없는 소리와 함께 다시 또 무언가를 내밀었다. 지난번에는 까맣고 두꺼운 케이스더니, 이번에는 하얗고 얇은 종이였다. 넌 참 중간이 없구나. 사람 피말리거나 네가 피거나.

 

   "뭔데 이게"

 

   "열어보면 알 텐데 왜 묻지?"

 

   귀엽게 생겨서 싸가지하고는. 밖에서는 늘 잘만 생긋생긋대더니 나한테만 꼭 이러더라. 정수는 옅은 한숨과 함께 종이를 받았다. 사실 제가 하는 일이 이 종이 쪼가리로 사람 목숨이랑 줄타기 내기하는 짓이라 성의없이 접혀있는 종이라면 질색이었는데도 겁 없이 펼쳤다.

 

 

 

   나야 지석이.

 

   이건 반칙이지. 곽지석 싸가지 없다는 말 취소. 싸가지 존나게 있네. 형한테 며칠 꽁기했다고 손수 편지까지 써다 바치고. 정수는 첫줄 한 번 지석 한 번 번갈아보며 점점 더 소리내어 웃었다. 마침내 웃음 소리가 끅끅에 도달하자 지석은 그 낡은 방문이 쾅 소리 나게끔 세게 닫고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일단 사과할게 미안. 애인한테는 반지 새로운 거 다시 사서 드려. 내 서프라이즈 순간을 완전히 망친 반지라서 그런지 마음에 안 들어서 내가 처리했어. 그리고 어차피 그 반지 별로 예쁘지도 않았어. 딱 봐도 3만원도 안 할듯. ㅋㅋㅋ 맞지?

 

   "애인 아니라니까 진짜..."

 

 

 

   앞으로는 애처럼 안 굴고 할말 있으면 편지를 쓰든 입을 열든 해서 답답하게 안 굴게.

 

   그러니까 너도 형도 혼자 처맞고 와서 악몽 꾸지 말고 나한테 좀 이르고 그래라. 이왕 사람 들인 거 네가 필요할 때는 써먹어야지. 형이 예전에 그랬잖아, 필요하면 써먹으라고.

 

 

 

   김정수는 곽지석이 고아낸 새로운 대화 방법이 흡족스러웠다. 화이트가 없었는지 죽죽 그어 수정해낸 것까지도 마음에 들었다. 다 보이게 수정하는 거면, 그게 의미가 있나? 마침내 제 집에 컨셉추얼하게 놓여있던 쓸모없는 종이와 펜의 쓸모를 찾았다. 그날 이후로 가끔 둘은 쪽지를 남겼다. 남자 둘이 사는 집에 볼펜 가짓수와 노트 패드 수, 그리고 메모지 수가 늘었다. 남들이 보면 게이같은 짓거리만 골라서 잘도 하고 산다며 비웃을 게 뻔했다. 하지만 그딴 건 중요치 않았다. 아무리 난방을 틀어도 우풍 때문에 추워 죽겠는 이 집에서 열을 낼 유일한 취밋거리였으니까.

 

   서로에게 있어서 쪽지와 편지는 늘 그런 거리였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

 

 

    오늘 늦어.

 

   또 시작이네. 그후로부터 몇 계절을 더 보내는 사이에 관종이라도 된 건지 김정수는 출근할 때마다 늘 곽지석의 이불을 세차게 걷고 화분에 물 주던 분무기로 지석의 얼굴에 물을 마구 뿌려대며 자는 지석을 깨우고 출근하더니, 그짓거리를 안 하는 대신에 더 신경쓰이게 쪽지만 몇 자 써다가 냉장고에 붙이고 출근했다. 이러는 지도 벌써 이 주가 다 되어갔다. 무슨 일 있는 거냐고 물으면 그냥 운이 좋게 승진했고 그 덕에 일이 늘었다고만 했다. 깡패 조직 특성 상 내가 아는 승진한 놈들은 전보다 더 거만해지고 덜 처맞았는데 김정수는 묘하게 더 긴장했고 덜 처맞는 것 같지도 않았다. 누굴 속여. 반도의 대가리의 핏줄인 저를 속이기에 김정수는 쓸데없이 솔직했다. 쓸데없이 표정 따위는 숨길 줄 몰랐고, 웃통을 까고 머리를 말렸다.

 

   "내일도 늦어?"

 

   "아마도?"

 

   뭐라도 되는 양 굴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주제 넘게 얼마나 늦냐고 물을 때면, 선 긋기라도 하는 듯 김정수는 그냥 평소처럼 늦는다고만 답했다. 약 올라. 승진하더니 그 직급엔 다정이 사치인가보다. 다정한 호구새끼라 마음 놓고 얹혀살던 지석의 가슴엔 점점 응어리만 남았다. 이러다가 네가 밖에서 콱 뒤지기라도 할까 봐 무섭다고 하기엔 혀 끝엔 모래가 묻어있었다. 꼴에 까끌까끌해서 하려던 말조차 쉬이 뱉어지지 않았다. 또 혼자가 되게 둘 거냐고 애처럼 떼도 쓰고 싶었지만, 사실 혼자가 되지 않게 거둬줬던 게 김정수라서 그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김정수와 사는 내내 단 하루도 쉬워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곽지석은 그랬다.

 

 

 

   지석에게 생긴 변화만큼 정수도 변화했다. 이미 이만큼이나 살아낸 이상 우리가 갑자기 한순간에 돌아서서 남처럼 살 것도 아니고. 굳이 꾸미지 않기로 했다. 지석에겐 그래도 될 것 같았다. 평소처럼 늦는 것도 사실이었고, 승진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빨리 누웠고, 빨리 잠을 청했다.

 

   "형."

 

   형 자? 응. 자는데 어떻게 대답해. 내가 못 하는 게 어디있어. 바보. 바보. 바아보오. 김정수 바보. 이어지는 말장난에 김정수는 상반신만 세워서 침대 옆에서 알짱거리는 곽지석을 잡아 끌었댜. 눈 깜짝하는 사이에 침대에 눕혀진 곽지석은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본 채 입을 다물었다. 천장이 원래 이렇게 휑했나. 야광 스티커 붙이면 애새끼라고 또 처놀리려나. 근데, 옆으로 누워서 자는 놈이 천장에 스티커 붙인 줄은 알까.

 

   "심심했어?"

 

   넓은 등짝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다 깔려있어서 굳이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뭔 상관... 형은 힘들었나보네. 뱉지 않은 말 때문에 혀가 간지러웠다.

 

   "우리 개새끼... 산책은 주말에 많이 하자."

 

   그 말을 끝으로 일정한 숨소리가 방 안에 고루 퍼졌다. 늘 이런 식이었다. 정수에겐 굳이 불만을 품고 싶지 않았다. 사실 불만의 화살은 곽지석 본인에게 있었다. 뭘 자꾸만 바라서 쓸데없이 김정수에 대해서 전부 다 알고 싶어하는 걸까. 알아서 좋을 게 하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그래도 그런 말을 하고선 본인 이불까지 저한테 덮어주는 심리 정도는 알아도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늘 착각의 노선도 김정수가 정했다. 곽지석의 숨붙이 또한 김정수가 정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이 형은 아마 제가 내일 당장 죽으려고 들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완벽하게 살려둘 놈이었다.

 

   늘 이 관계에서는 김정수가 다 이겨먹었고, 지석은 여전히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차라리 지석이 완전히 지기만 하는 날들이 나았을까. 하루는 딱 2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잔뜩 술에 취해 도어락 번호도 계속 틀리던 김정수는 잔뜩 짖어대는 곽지석에게 착한 눈깔을 뜨고서는 호구 마냥 안절부절 못했다. 아니이... 내가 먹으려고 먹은 게 아니고. 닥쳐. 곽지석이 닥치라는데 진짜 단번에 닥쳤다. 그러니까 술에 취한 게 정말 연기는 아니었다. 술 냄새가 옷에 배어 있었고, 정신 좀 차려보겠다고 밖에서 세수라도 하고 들어온 건지 머리카락은 축축했다.

 

   "씻고 와."

 

   정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신발을 벗고 들어와서는 갈아입을 옷도 챙기지 않고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웃통만 까고 나와서는 아차차 하며 휴대폰을 식탁 위에 툭 올려두고 춥다면서 다시 화장실로 기어들어갔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미쳤네... 미친놈. 또 애인 생겼나. 어디서 누구랑 처마시다 온 건지를 굳이 추리하며 김정수가 답지 않게 벗어 던진 옷가지를 주워 의자에 걸었다. 곽지석은 김정수에게 친구랄 사람이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늘 굳이 정수의 주변을 부풀려서 상상했고, 그런다고 좋을 게 하나 없는데도 그랬다. 그렇게 곽지석은 서러움을 만들어냈고 그렇게 편안해지는 마음을 샀다. 진짜 무슨 이딴 관계가 다 있어. 그제야 화장실 안에서 물소리가 났다. 셋을 세자 템포가 약간 느린 서울의 달이 재생됐다. 다행이네. 안심한 지석은 외투를 하나 집어들고 안쪽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렀다. 슬리퍼를 대충 발에 걸치자마자 식탁 위 김정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슬하게 돌려둔 탓에 전화벨 진동에 휴대폰이 바닥으로 떨어질까 봐 불안했다. 케이스를 끼우면 뭐 해. 네가 이렇게 다루는데. 끊겼던 전화벨이 다시 울린다. 정수가 곧 나와서 받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받지 않으면 끊을 법도 한데, 상대는 계속 걸어왔다. 지석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물고 있던 담배를 도로 집어넣고는 욕실 쪽을 흘끗 봤다.

 

   "형 전화 계속 오는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물소리는 여전했다. 휴대폰 화면이 켜졌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지석은 그 찰나를 골백번도 더 망설였다. 받으면 안 되는 전화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받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고, 받아서 괴로운 것보다 받지 않아서 괴로운 게 더 클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어어, 형님!”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딱 봐도 정수보다 나이가 더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형님이라는 호칭이 익숙한 이 작자가 싫었다. 태생으로부터 시작된 감이 무지성으로 거부해댔다.

 

   “지금 통화 괜찮죠?”

 

   지석은 잠깐 숨을 고르고 목소리를 깔아 대답했다.

 

   “…어.”

 

 

 

   “아까 말씀하시던 거 말입니다. 그 곽씨네 집 말이에요.”

 

   그 순간, 지석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받지 말걸. 받지 말걸. 받지 말걸. 몇 번이고 되뇌여도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말들은 영원히 이어질 것처럼 끊길 줄을 몰랐다.

 

   "그러고 그거 불 다 태워서 흔적도 없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안에 있던 것들이 워낙 알짜라. 그때 챙겨오신 것들 덕분에 윗선에서 아주 좋아하십니다. 특히 또 그 문서 쪽이요. 가족관계 같은 것도 너무 좋다십니다. 뭐라도 더 뒤질 수 있겠어요."

 

   남자가 게걸스럽게 처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그 곽씨네 아들 사진이 하나도 없어서 아쉽긴 한데, 그래도 뭐 괜히 잡일 생길 일도 없고요. 뭐 아무튼 그 판단 덕분에 판이 커진 건 사실입니다. 우리 형님 또 레벨업하겠네. 오른팔 되면 저 사무실에 좀 꽂아주십시오. 예?”

 

   욕실에서 물소리가 멎었다. 그리고 그 순간, 상대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때 집 불태우신 거, 진짜 잘하신 겁니다.”

 

 

 

   지석은 전화를 끊었다. 버튼을 누르는 손은 떨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또렷했다. 탁자 위에 휴대폰을 그대로 내려놨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었다. 정수가 웃통을 깐 채 잠옷 바지만 입고 욕실에서 나왔다. 늘 그랬듯 머리를 털며 말했다.

 

   “누구랑 전화했어?”

 

   지석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수는 머리 말리던 걸 잠깐 멈추고 지석 앞에 섰다. 정수의 머리칼에서 물이 떨어졌고, 물을 맞은 지석이 젖어버린 양말을 거칠게 벗어서 집어던졌다. 왜 물을 묻히고 그래. 씨발... 머리 좀 끝까지 머리 말려.

 

   “형 승진하는구나.”

 

   김정수는 부정하지 않았다.

 

   “…응.”

 

 

 

   둘 중 하나라도 험한 곳에서 먼저 죽거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다가 먼저 죽은 그 괘씸한 놈 다시 제 손으로 죽일 듯 굴었던 미친 동거인 1,2가 순식간에 정리됐다. 김정수에게 곽지석은 수단이었을까, 약점이었을까. 아무래도 둘 다 좆같지만 그럼에도 제발 약점이었길 더 바라는 스스로가 불쌍했다. 불쌍해졌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예고없이 맞은 끝은 무척이나 간결했다. 김정수의 대답을 듣자마자 갑자기 폐가 제멋대로 히끅이더니 눈에서는 눈물을 줄줄 흘려댔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흐르는 눈물에 감정을 덕지덕지 묻혀버렸다.   

 

 

 

   "저 그냥 숨어 살게요."

 

   "곽지석"

 

 

 

   형도 알잖아 응? 서울은 달이 너무 밝아. 난 그게 존나게 처무서워서 도무지 서울에서는 못 살겠네. 그러니까 형은 형, 너대로 서울에 있어. 난 시골 어디 짱박혀서 숨어서 살게. 곽씨네 사실 아들 있는 거 딴 새끼들이 알고 있네. 누구 덕분에. 그러니까 저 좀 제발.

 

   "제발 그렇게 살게 해 주세요."

 

 

 

 

   시계 초침 소리 외에 기억 나는 소리가 없다. 대화를 나눴던 사실은 또렷하게 기억나지만 그때 김정수의 목소리는 여전히 기억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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