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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금지 (1/3)

렉터

 사막을 누비던 트럭의 목적지는 얼어붙은 설원이었다.


 만들어진 의도와 달라진 쓰임새에 트럭은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작은 고개들을 넘어갔다. 눈에 반쯤 파묻힌 바퀴가 힘겹게 돌아가고 완충재가 빠진 운전석이 길을 따라 덜컹였다. 주체할 수 없이 흔들리는 차에 조수석에 앉은 주연의 머리도 힘없이 창문가에서 나풀거렸지만 트럭 뒷칸에 우두커니 앉은 정수를 포함해 그 누구도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잠잠하던 여정에 먼저 불평을 터트린 건 주연이었다. 사흘 밤낮 동안 굽이진 길을 굴러오던 트럭이 기어코 뻗은 탓이었다. 불안불안한 소리를 내며 요란스럽게 시동이 꺼진 차량에 잠시 눈을 붙였던 정수가 몸을 일으켰고 창가에 텅텅, 머리를 부딪히던 주연은 기어코 성질을 부렸다. 아이씨, 하고 투박하게 열리는 문의 반대편에서 내린 승민이 주연과 함께 트럭의 옆구리로 향했다.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 시린 눈밭에 무릎을 댄 승민이 곧 쭈그렸던 몸을 일으켰다. 

 


 "뻗었는데."

 "그걸 누가 모르냐?"


 

 주연이 날을 세우며 답했다. 하지만 승민은 그런 주연이 익숙한 듯 발길을 조수석으로 옮겼다. 한마디의 대꾸도 없는 승민의 발걸음에 주연은 제가 신경질을 부려놓고도 승민의 뒤를 쫄래쫄래 쫓으며 투덜거렸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고칠 수는 있어?"

 "일단은 뜯어봐야지. 별거 아닐 거야. 터지지는 않았을 거고 그냥 과열이겠지. 여기가 더워 쪄 죽는 사막도 아니고."

 


 말을 잇는 승민의 입가에서 허연 입김이 퍼진다. 잠시 주연에게 비켜보라던 승민은 거침없이 조수석 의자 아래를 열어 묵직해 보이는 공구함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주연은 아주 기겁을 하다못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누가 의자 밑에 그런 걸 넣어 두냐며, 그거 때문에 여기를 오는 이틀 내내 제 엉덩이가 그렇게 아팠다는 등의 투정이었다.


 짧은 주연의 말 한두 마디에 금방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물론, 맨 처음 승민은 그런 주연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연의 투덜거림이 하루이틀도 아니었거니와 저 녀석도 지칠 때가 되었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자잘한 소음도 곧 잘 무시하며 차의 엔진을 살피던 승민의 인내심은 주연의 투정이 세 번을 넘어가자 바닥을 드러낸 연료통처럼 금방 한계를 맞닥뜨렸다. 참다못한 승민이 쥐고 있던 스패너를 휘적거리며 애꿎은 조수석을 가리키며 반박했다. 

 


 "니가 그 자리 한두 번 앉아보냐. 건일이 형이 운전할 때는 아무 말도 안하다가 왜 나한테 난리야."

 "쓰읍. 승민. 아무리 생각해도 운전자가 문제라는 생각이 안 들어, 잉?"

 "내 차거든? 면허도 없는게 진짜."

 "차 주인이 차를 그르케 모르넹."

 "...진짜 조용히 해라, 너는..."


 

 한숨과도 같은 경고를 끝으로 승민의 입이 다물렸다. 주연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승민을 자극하는 데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제 역할이 없음을 알아서인지 주연의 발걸음은 트럭 뒤편으로 이어졌다.


 군용트럭을 개조한 승민의 트럭은 사막을 내달릴 때처럼 휘황찬란하게 꾸며진 천막이 아닌 단출한 군방색 천막을 뒤편에 두르고 있었다. 흰 설원을 달리는데 잔뜩 꾸며진 모양새는 추격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요란하기만 하고 눈에 띄어서 안 된다며, 제 차를 끔찍이도 아끼던 승민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다. 박피하듯 제가 꾸며놓은 천막을 벗겨내고 짙푸른 초록색의 천막을 얹던 새벽이 벌써 사흘이 지났단다. 주연은 지긋지긋하면서도 초조한 시간들을 셈하며 트럭의 천막을 걷었다.


 

 "이야-, 뒷자리 좋아 보이네. 넓고 아늑하고."

 


 너스레를 떠는 주연의 말 중에 맞는 말이라고는 없었다. 천막의 안은 빛 한 점 들지 않을 만큼 어두컴컴했으며 몇 날 며칠을 달려야 할지 모르는 길바닥 위에서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물품과 혹시 모를 싸움에 대비한 무기들이 들어차 있느라 그다지 넓지도, 아늑하지도 않았다. 그저 셋뿐인 이 상황에서 두 명이 깨어 있을 때 다른 한 명이 겨우 휴식을 취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될 뿐이었다.


 그 가장 깊숙한 곳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정수가 느릿하게 몸을 움직이며 걸어 나온다. 어둠 속에 있던 탓인지 한쪽 눈은 살풋 감은 채였다. 머잖아 트럭에서 가볍게 뛰어내린 정수의 망토가 펄럭이고 이윽고 시선이 멈춰있는 트럭의 뒷바퀴로 향했다. 잠시 주변을 훑은 정수가 주연에게 짧게 물었다. 


 

 "아예 못 간대?"

 "모르징. 머 궁금하면 물어보등가요."


 

 주연이 차례를 넘긴다. 하지만 정수는 굳이 상황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저 승민이가 잘하겠지, 하는 말과 함께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며 주연을 두고 발을 옮겼다. 하지만 정수가 갈 수 있는 곳 또한 그리 멀지는 않았다. 추격당하는 사람들의 행동반경은 늘 그렇듯 좁고 한정적이었으며 날씨에 대한 제약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비록 얇은 천막이었을지라도 안과 밖의 차이는 극명하더라. 두툼한 한파용 망토를 파고들어 오는 한기와 두꺼운 신발 밑창 아래로 느껴지는 얼어버린 땅에 결국 정수는 근처에 있는 가장 높은 나무 위를 택했다.


 아직 현역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재빠르게 나무 위에 올라탄 정수가 마주한 것은 아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생명이라고는 가까스로 연명하고 있는 낮은 잡초들과 언제 열매를 맺었는지조차 희미한 나무들, 추격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자신들이 끊어놓으며 도망쳐 온 다리, 되돌아 갈 수 없는 길과 그리고 눈앞을 가득 메운 탁하고 흐린 하늘. 그 먼 허공을 가만히 응시하던 정수의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흐린 시야에 초점이 느리게 맞춰졌지만 김정수는 이 하늘을 알고 있었다. 


 꼭, 눈이 올 것 같은 하늘이다. 곽지석이 있던 쨍한 사막과 달리. 반짝이던 곽지석의 금발 머리를 닮아 손끝에서 부서지는 모래가 아니라, 너와의 시간마저 모두 저 땅밑에 덮어버릴 것처럼 눈이 올 듯한 하늘이다. 


 

 오늘도 속도를 내기에는 글렀나. 짧은 상념에서 깬 정수의 시선이 저 아래에서 트럭을 고치는 승민과 그 옆을 배회하는 주연에게로 향한다. 그렇게 투정을 부리던 주연은 어느새 승민의 옆에서 승민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들을 가져다 나르고 있었다. 어설퍼 보여도 제법 죽이 맞는 모습에 오랜만에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였다. 급한 마음은 그 누구도 붙잡을 수 없었다. 떠밀려오는 초조함과 불안감에 정수의 손이 무심코 제 목덜미로 향했지만 만져지는 것이라고는 장식 없이 끈만 남은 목걸이 줄이었다. 


 무심코 목덜미를 쥐었던 손이 허전한 허공을 움켜쥔다. 시간이 이렇게 무서웠다. 돌려주어 놓고도 오랜 시간은 습관처럼 흔적을 찾는다. 어쩔 수 없나. 제법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으니. 너무 소중해서 단 하루도 빼놓은 적이 없으니. 내게는 네가 한 말처럼 그 목걸이가 너와 같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이제는 가볍고 헐겁기만 한 목걸이 줄을 하염없이 매만지며 김정수는 속절없이 곽지석과의 기억에 빠져들었다. 

 




희망금지

 

제 1장. 폭풍속으로

W. 렉터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세상이 끝났다고 믿는 순간이. 


 김정수에게도 당연히 그런 순간이 있었다. 그 처음은 오 년 전 김정수가 제7구역으로 넘어오면서였다. 오랫동안 국경의 변방에서 유능한 저격수로서 삶을 이어오던 김정수의 세상은 7구역으로 향하는 트럭에 올라타며 그 막을 내렸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지원을 나간 괴수 토벌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터진 폭탄이 누군가에게서는 목숨을, 누군가에게서는 팔과 다리를 앗아갈 때 김정수에게서는 한 쪽 눈을 가져갔을 뿐이었다.


 부상에 대한 치료는 길지 않았다. 더 이상 지켜볼 예후가 없기 때문이었다. 치료가 끝난 후 군의관은 그만한 상황에서 죽지 않은 게 그나마 행운이었다며 등을 두드렸지만 김정수는 그 말의 의미를 헤아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평생을 저격수로 살아온 사람에게 그게 할 말인가. 정수는 메아리처럼 울리는 군의관의 말을 뒤로하고 제 양쪽 눈을 번갈아 가며 깜빡여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둘의 시야가 달랐다. 주로 사용하던 오른쪽 눈의 시력은 현저하게 떨어졌고 그나마 살아남은 왼쪽 눈은 일반인 수준에 그쳤다.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과 확답을 받는 것에는 그런 차이가 있더라. 김정수는 그날로 확인받았다. 아마, 앞으로 김정수의 인생에서 지난날과 같은 것들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치료 이후 김정수는 복귀하지 않았다. 군에서도 김정수를 받아주지 않았을뿐더러 염치가 있지 스스로도 제 자리가 어디인지는 알고 있었다. 부상으로 인한 은퇴를 신청한 이후로 한동안은 처분을 기다렸다. 예상보다 오래 걸리는 처분에 처음에는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어쩌면 가이드로서의 능력이 있으니 희박한 확률로 누군가의 전담 가이드가 될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해봤지만, 기다림 끝에 본부는 정수에게 전혀 다른 것을 제시했다. 


 

 '7구역에서 사격 교관을 하라고요?'

 


 은퇴가 아니라? 정수는 제가 받아 든 통지서를 보고 다시금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말을 전하러 온 상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알잖아, 워낙 환경이 열악하기도 해서. 신입은 있는데 가르칠 사람이 없다니까. 군에서도 너가 아까운 거지. 그렇게 끝내기엔.'


 

 오랜 시간을 군에 있었던 김정수는 어물쩍게 이어지는 그 말의 의미를 단박에 이해했다. 갖고 있기엔 계륵이고 그렇다고 그대로 민간인으로 풀어놓기에는 아깝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뻔뻔하게 말하기도 어려울 터였다. 상사는 정수의 기분을 걱정하는지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을 덤처럼 얹어놓고 떠났다. 그래도 7구역이 예전만큼 고립된 곳은 아니라는 말부터, 교관으로 있다 보면 다음 은퇴는 정말 편하지 않겠느냐는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까지. 모두 김정수가 묻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짧았다. 아마 짐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을 써온 흰 총 두 자루와 함께 짐을 꾸려 7구역으로 떠나는 트럭에 올라타는 순간까지 정수는 제 앞날들을 의심하고 불신했다. 차라리 누구한테 달라붙어 사는 가이드가 되었다면 나았을까. 긴 시간 가이드가 아닌 저격수로 키워진 김정수의 인생에는 전투를 제외하고는 제 가치를 증명할 만한 일이 없었다.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앞으로의 날들이 이전보다 무가치할 텐데, 무엇을 하든 더 이상 이전만큼의 쓸모는 없을 텐데. 이 반쪽짜리 눈을 가지고 누구를 가르치는 게 가당키나 한가. 사실상 거기서 죽으라는 소리랑 다를 바가 없는데, 살아서 향하는 곳이 무덤인 게 과연 맞는 것인가. 아니, 그것보다 나는 뭘 바랐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