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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금지 (1/3)

렉터

 사막을 누비던 트럭의 목적지는 얼어붙은 설원이었다.


 만들어진 의도와 달라진 쓰임새에 트럭은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작은 고개들을 넘어갔다. 눈에 반쯤 파묻힌 바퀴가 힘겹게 돌아가고 완충재가 빠진 운전석이 길을 따라 덜컹였다. 주체할 수 없이 흔들리는 차에 조수석에 앉은 주연의 머리도 힘없이 창문가에서 나풀거렸지만 트럭 뒷칸에 우두커니 앉은 정수를 포함해 그 누구도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잠잠하던 여정에 먼저 불평을 터트린 건 주연이었다. 사흘 밤낮 동안 굽이진 길을 굴러오던 트럭이 기어코 뻗은 탓이었다. 불안불안한 소리를 내며 요란스럽게 시동이 꺼진 차량에 잠시 눈을 붙였던 정수가 몸을 일으켰고 창가에 텅텅, 머리를 부딪히던 주연은 기어코 성질을 부렸다. 아이씨, 하고 투박하게 열리는 문의 반대편에서 내린 승민이 주연과 함께 트럭의 옆구리로 향했다.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 시린 눈밭에 무릎을 댄 승민이 곧 쭈그렸던 몸을 일으켰다. 

 


 "뻗었는데."

 "그걸 누가 모르냐?"


 

 주연이 날을 세우며 답했다. 하지만 승민은 그런 주연이 익숙한 듯 발길을 조수석으로 옮겼다. 한마디의 대꾸도 없는 승민의 발걸음에 주연은 제가 신경질을 부려놓고도 승민의 뒤를 쫄래쫄래 쫓으며 투덜거렸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고칠 수는 있어?"

 "일단은 뜯어봐야지. 별거 아닐 거야. 터지지는 않았을 거고 그냥 과열이겠지. 여기가 더워 쪄 죽는 사막도 아니고."

 


 말을 잇는 승민의 입가에서 허연 입김이 퍼진다. 잠시 주연에게 비켜보라던 승민은 거침없이 조수석 의자 아래를 열어 묵직해 보이는 공구함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주연은 아주 기겁을 하다못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누가 의자 밑에 그런 걸 넣어 두냐며, 그거 때문에 여기를 오는 이틀 내내 제 엉덩이가 그렇게 아팠다는 등의 투정이었다.


 짧은 주연의 말 한두 마디에 금방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물론, 맨 처음 승민은 그런 주연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연의 투덜거림이 하루이틀도 아니었거니와 저 녀석도 지칠 때가 되었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자잘한 소음도 곧 잘 무시하며 차의 엔진을 살피던 승민의 인내심은 주연의 투정이 세 번을 넘어가자 바닥을 드러낸 연료통처럼 금방 한계를 맞닥뜨렸다. 참다못한 승민이 쥐고 있던 스패너를 휘적거리며 애꿎은 조수석을 가리키며 반박했다. 

 


 "니가 그 자리 한두 번 앉아보냐. 건일이 형이 운전할 때는 아무 말도 안하다가 왜 나한테 난리야."

 "쓰읍. 승민. 아무리 생각해도 운전자가 문제라는 생각이 안 들어, 잉?"

 "내 차거든? 면허도 없는게 진짜."

 "차 주인이 차를 그르케 모르넹."

 "...진짜 조용히 해라, 너는..."


 

 한숨과도 같은 경고를 끝으로 승민의 입이 다물렸다. 주연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승민을 자극하는 데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제 역할이 없음을 알아서인지 주연의 발걸음은 트럭 뒤편으로 이어졌다.


 군용트럭을 개조한 승민의 트럭은 사막을 내달릴 때처럼 휘황찬란하게 꾸며진 천막이 아닌 단출한 군방색 천막을 뒤편에 두르고 있었다. 흰 설원을 달리는데 잔뜩 꾸며진 모양새는 추격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요란하기만 하고 눈에 띄어서 안 된다며, 제 차를 끔찍이도 아끼던 승민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다. 박피하듯 제가 꾸며놓은 천막을 벗겨내고 짙푸른 초록색의 천막을 얹던 새벽이 벌써 사흘이 지났단다. 주연은 지긋지긋하면서도 초조한 시간들을 셈하며 트럭의 천막을 걷었다.


 

 "이야-, 뒷자리 좋아 보이네. 넓고 아늑하고."

 


 너스레를 떠는 주연의 말 중에 맞는 말이라고는 없었다. 천막의 안은 빛 한 점 들지 않을 만큼 어두컴컴했으며 몇 날 며칠을 달려야 할지 모르는 길바닥 위에서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물품과 혹시 모를 싸움에 대비한 무기들이 들어차 있느라 그다지 넓지도, 아늑하지도 않았다. 그저 셋뿐인 이 상황에서 두 명이 깨어 있을 때 다른 한 명이 겨우 휴식을 취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될 뿐이었다.


 그 가장 깊숙한 곳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정수가 느릿하게 몸을 움직이며 걸어 나온다. 어둠 속에 있던 탓인지 한쪽 눈은 살풋 감은 채였다. 머잖아 트럭에서 가볍게 뛰어내린 정수의 망토가 펄럭이고 이윽고 시선이 멈춰있는 트럭의 뒷바퀴로 향했다. 잠시 주변을 훑은 정수가 주연에게 짧게 물었다. 


 

 "아예 못 간대?"

 "모르징. 머 궁금하면 물어보등가요."


 

 주연이 차례를 넘긴다. 하지만 정수는 굳이 상황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저 승민이가 잘하겠지, 하는 말과 함께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며 주연을 두고 발을 옮겼다. 하지만 정수가 갈 수 있는 곳 또한 그리 멀지는 않았다. 추격당하는 사람들의 행동반경은 늘 그렇듯 좁고 한정적이었으며 날씨에 대한 제약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비록 얇은 천막이었을지라도 안과 밖의 차이는 극명하더라. 두툼한 한파용 망토를 파고들어 오는 한기와 두꺼운 신발 밑창 아래로 느껴지는 얼어버린 땅에 결국 정수는 근처에 있는 가장 높은 나무 위를 택했다.


 아직 현역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재빠르게 나무 위에 올라탄 정수가 마주한 것은 아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생명이라고는 가까스로 연명하고 있는 낮은 잡초들과 언제 열매를 맺었는지조차 희미한 나무들, 추격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자신들이 끊어놓으며 도망쳐 온 다리, 되돌아 갈 수 없는 길과 그리고 눈앞을 가득 메운 탁하고 흐린 하늘. 그 먼 허공을 가만히 응시하던 정수의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흐린 시야에 초점이 느리게 맞춰졌지만 김정수는 이 하늘을 알고 있었다. 


 꼭, 눈이 올 것 같은 하늘이다. 곽지석이 있던 쨍한 사막과 달리. 반짝이던 곽지석의 금발 머리를 닮아 손끝에서 부서지는 모래가 아니라, 너와의 시간마저 모두 저 땅밑에 덮어버릴 것처럼 눈이 올 듯한 하늘이다. 


 

 오늘도 속도를 내기에는 글렀나. 짧은 상념에서 깬 정수의 시선이 저 아래에서 트럭을 고치는 승민과 그 옆을 배회하는 주연에게로 향한다. 그렇게 투정을 부리던 주연은 어느새 승민의 옆에서 승민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들을 가져다 나르고 있었다. 어설퍼 보여도 제법 죽이 맞는 모습에 오랜만에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였다. 급한 마음은 그 누구도 붙잡을 수 없었다. 떠밀려오는 초조함과 불안감에 정수의 손이 무심코 제 목덜미로 향했지만 만져지는 것이라고는 장식 없이 끈만 남은 목걸이 줄이었다. 


 무심코 목덜미를 쥐었던 손이 허전한 허공을 움켜쥔다. 시간이 이렇게 무서웠다. 돌려주어 놓고도 오랜 시간은 습관처럼 흔적을 찾는다. 어쩔 수 없나. 제법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으니. 너무 소중해서 단 하루도 빼놓은 적이 없으니. 내게는 네가 한 말처럼 그 목걸이가 너와 같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이제는 가볍고 헐겁기만 한 목걸이 줄을 하염없이 매만지며 김정수는 속절없이 곽지석과의 기억에 빠져들었다. 

 




희망금지

 

제 1장. 폭풍속으로

W. 렉터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세상이 끝났다고 믿는 순간이. 


 김정수에게도 당연히 그런 순간이 있었다. 그 처음은 오 년 전 김정수가 제7구역으로 넘어오면서였다. 오랫동안 국경의 변방에서 유능한 저격수로서 삶을 이어오던 김정수의 세상은 7구역으로 향하는 트럭에 올라타며 그 막을 내렸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지원을 나간 괴수 토벌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터진 폭탄이 누군가에게서는 목숨을, 누군가에게서는 팔과 다리를 앗아갈 때 김정수에게서는 한 쪽 눈을 가져갔을 뿐이었다.


 부상에 대한 치료는 길지 않았다. 더 이상 지켜볼 예후가 없기 때문이었다. 치료가 끝난 후 군의관은 그만한 상황에서 죽지 않은 게 그나마 행운이었다며 등을 두드렸지만 김정수는 그 말의 의미를 헤아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평생을 저격수로 살아온 사람에게 그게 할 말인가. 정수는 메아리처럼 울리는 군의관의 말을 뒤로하고 제 양쪽 눈을 번갈아 가며 깜빡여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둘의 시야가 달랐다. 주로 사용하던 오른쪽 눈의 시력은 현저하게 떨어졌고 그나마 살아남은 왼쪽 눈은 일반인 수준에 그쳤다.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과 확답을 받는 것에는 그런 차이가 있더라. 김정수는 그날로 확인받았다. 아마, 앞으로 김정수의 인생에서 지난날과 같은 것들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치료 이후 김정수는 복귀하지 않았다. 군에서도 김정수를 받아주지 않았을뿐더러 염치가 있지 스스로도 제 자리가 어디인지는 알고 있었다. 부상으로 인한 은퇴를 신청한 이후로 한동안은 처분을 기다렸다. 예상보다 오래 걸리는 처분에 처음에는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어쩌면 가이드로서의 능력이 있으니 희박한 확률로 누군가의 전담 가이드가 될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해봤지만, 기다림 끝에 본부는 정수에게 전혀 다른 것을 제시했다. 


 

 '7구역에서 사격 교관을 하라고요?'

 


 은퇴가 아니라? 정수는 제가 받아 든 통지서를 보고 다시금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말을 전하러 온 상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알잖아, 워낙 환경이 열악하기도 해서. 신입은 있는데 가르칠 사람이 없다니까. 군에서도 너가 아까운 거지. 그렇게 끝내기엔.'


 

 오랜 시간을 군에 있었던 김정수는 어물쩍게 이어지는 그 말의 의미를 단박에 이해했다. 갖고 있기엔 계륵이고 그렇다고 그대로 민간인으로 풀어놓기에는 아깝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뻔뻔하게 말하기도 어려울 터였다. 상사는 정수의 기분을 걱정하는지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을 덤처럼 얹어놓고 떠났다. 그래도 7구역이 예전만큼 고립된 곳은 아니라는 말부터, 교관으로 있다 보면 다음 은퇴는 정말 편하지 않겠느냐는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까지. 모두 김정수가 묻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짧았다. 아마 짐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을 써온 흰 총 두 자루와 함께 짐을 꾸려 7구역으로 떠나는 트럭에 올라타는 순간까지 정수는 제 앞날들을 의심하고 불신했다. 차라리 누구한테 달라붙어 사는 가이드가 되었다면 나았을까. 긴 시간 가이드가 아닌 저격수로 키워진 김정수의 인생에는 전투를 제외하고는 제 가치를 증명할 만한 일이 없었다.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앞으로의 날들이 이전보다 무가치할 텐데, 무엇을 하든 더 이상 이전만큼의 쓸모는 없을 텐데. 이 반쪽짜리 눈을 가지고 누구를 가르치는 게 가당키나 한가. 사실상 거기서 죽으라는 소리랑 다를 바가 없는데, 살아서 향하는 곳이 무덤인 게 과연 맞는 것인가. 아니, 그것보다 나는 뭘 바랐었나. 


 갖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국경을 벗어나, 수도를 지나 제7구역으로 향하는 내내 정수를 괴롭히던 잡생각들이 사라진 건 7구역을 알리는 출발지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조수석에 앉아 턱을 괴고 졸던 정수의 고개가 갑작스러운 제동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놀란 정수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제 오른쪽 눈을 감았다. 양쪽 눈을 한꺼번에 뜨면 오히려 초점이 잘 맞지 않아 정수가 터득해 낸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잠시였다.


 눈앞에 마주한 풍경에 절로 감았던 눈을 뜬 정수가 트럭에서 내린다. 휘청이며 디딘 무른 땅에 발이 푹푹 꺼짐에도 발을 내디딜 수 밖에 없었다. 끊어진 길 너머로 끊임없이 펼쳐진 사막의 모래들이 반짝인다. 하늘에 뜬 것 중에 가장 밝은 태양 빛이 모래를 달구고 끝을 모르고 뻗어있는 대지와 그 끝에서 맞물리는 지평의 경계에 정수는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말았다. 이상하게 그 순간이 또렷했다면 기분 탓일까. 김정수의 그 모든 고민을 뒤덮는 듯, 구름 한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새 한 마리가 부르짖으며 활공한다. 


 그렇게 마주한 7구역이었다. 너를 만났던, 네가 있던 그 사막의 시작이었다. 

 


 


 돌아올 수 없는 땅이라는 이명에 걸맞게 7구역은 이름 지어지지 않은 사막의 한가운데에 위치했다. 한때는 수도가 될 수도 있었다는 지역의 말로는 급작스럽게 시작된 사막화에서 끝맺음을 맺었다. 하루에 수십번씩도 변하는 지형과 끊임없이 내리쬐는 태양 빛에 7구역은 그렇게 버려진 괴수들의 땅이 되었다. 그래서 돌아 올 수 없다는 걸까. 정수는 그 말을 7구역에 도착하고 이틀 만에 이해했다. 사막 한복판에 지어져 있는 7구역의 본부를 제외하고 그 주변에서는 생활이 가능한 영역이 없었다. 센터의 방어벽을 나서는 순간 마주하게 되는 사막과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땅 밑의 괴수들에 둘러 싸여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이니 모든 걸 센터의 건물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벗어날 수도, 이곳을 떠나서도 제7구역에서만큼은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래서 돌아갈 수 없다는 건가. 정수는 스스로 곱씹으며 자신의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아무리 제가 무수한 전장을 누비며 괴수를 토벌했다지만서도, 제아무리 날고 기며 그 전투 속에서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김정수는 이제 인정해야 했다. 이곳은 이 자체로 이 사막의 무덤이었다. 사막으로 향한 모든 이들의 희망 없는 무덤. 이곳에 온 이상 김정수의 죽음을 비껴간 행운은 더 이상 없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김정수의 세상이 끝났다고 느낀 두 번째 순간은 바로 그 사막에서였다. 


 아마 7구역에 도착하고 이주가 겨우 지난 무렵이었을 거다. 갑작스럽게 현장 동원이 잡혔다. 현재 외부로 나가 있는 센티넬들의 인원이 부족해 지원사격이 필요하다는 게 7구역 상부의 의견이었다. 반쪽짜리 눈을 가진 저격수가 전투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김정수에게 거부권은 없었다.


 정수는 곧바로 그다음 날 사막의 한복판으로 향하는 지원 트럭에 올랐다. 많은 인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부가 얼마나 급한지는 알 것 같았다. 무엇이든 자를 수 있지만 체력이 부족해 나무 토막 하나도 절단하기 힘들다는 최약체 센티넬에 수도에서 사고를 치고 쫓겨났다는 센티넬 루키, 그 외에 별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이 낡고 지친 병력들. 상황을 파악한 정수가 짧은 한숨을 삼키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비좁은 트럭 안에서 정수는 제 총을 품에 안고 금방 눈을 감았다. 그 어떤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이 빈약한 지원군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김정수가 기대한 희망이라고는 전투지의 사방이 트여있으니 적어도 목표물은 잘 보이겠다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데까지는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만. 


 지형에 대한 미지는 당연히도 김정수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나무도, 돌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목표물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변수는 제가 딛고 서 있는 땅이었다. 언제서부터 흩어졌는지 모르는 병력들을 뒤로하고 눈앞에 나타난 괴수에 총구를 겨누기 무섭게 발밑의 땅이 가라앉았다. 딛고 서있음에도 그토록 위태로운 땅이 또 있을까. 그렇게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은 순식간에 정수의 몸을 집어삼켰다. 쥐고 있던 흰 총을 놓치고 속수무책으로 잠겨 드는 유사(流沙) 속에서 당황하지 않는 법 따위는 없었다. 발버둥을 쳐봐도 온몸이 모래 속으로 잠겨 든 이후에는 더 이상 손을 쓸 방도 또한 없었다. 끝까지 쥐고 있으리라 여겼던 총자루마저도 정수의 손을 떠나고, 눈앞의 빛마저도 사라지자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무겁게 제 몸을 짓누르는 땅의 무게였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달궈진 모래에 살결이 익어가도 옴짝달싹 할 수도 없었다. 손끝과 발끝이 그대로 굳어 저 바닥으로 끌려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김정수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사막에서의 죽음은 이런 식인가. 단번에 누군가의 숨을 앗아가는 총과 칼이 아니라, 눈앞에 터지는 폭탄이 아니라, 괴수의 먹잇감이 아니라, 이렇게 숨이 멎기를 기다리는 느리고 아늑한 죽음인가. 


 그 생각이 들자 문득 어쩌면 이대로 죽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더 살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죽었더라도 그때 그 폭탄에 죽는 게 자신의 마지막이었을 지도 모를 텐데. 비록 유언을 남길 이도 없고 자신을 기억 할 이도 없겠지만 이 정도면 호사라고 생각했다. 전투에서 신원조차 확인할 수 없는 넝마가 되어 돌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런 식으로 사라지는 것도 부끄럽지 않고, 나쁘지 않겠다고. 


 그러던 김정수가 땅 위로 다시 끌어올려진 건 그때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의식이 희미해지던 순간 사방을 짓누르던 무게감이 옅어지고 온몸을 감싼 모래가 반대로 흘러 김정수를 지상 위로 뱉어냈다. 다소 거칠게 지상 위로 내던져진 몸이 모래 위를 나뒹군다. 죽는 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얄팍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제서야 쉬어지는 숨에 온몸이 비틀렸다. 절로 입이 벌어지고 급하게 들이켠 숨에 기침마저 토해내느라 입이 하나로도 모자랐다. 캄캄했던 시야가 다시금 밝아지고 흐릿한 눈에 초점이 가까스로 돌아오자 그제서야 인기척이 느껴졌다.


 머리 위로 낯선 그림자가 드리우고 정수의 시선이 제 곁에 선 발로 향한다. 김정수를 집어삼켰던 모래를 겁도 없이 딛고 서 있는 두툼한 워커와 온통 새카만 옷차림. 그럼에도 사막의 모래보다 빛나는 화려한 금발과 희고 예쁘장한 얼굴, 그의 손에서 내밀어지는 김정수의 흰 저격총까지.


 그 남자가 어떻게 자신을 구했는지 하는 의문도 생기지 않았다. 얼굴을 훔치고 마른침을 삼키기도 전이었다. 시선이 따라가는 대로 올려다본 얼굴이 가만히 정수를 응시하다 큰 눈을 휘며 웃는다. 


 

 "이거 잃어버린 사람?"


 

 낮은 톤인데도 발랄한 목소리다. 꼭 주인을 아는 것 같은 물음에 정수는 처음 보는 사내의 앞에서 저도 모르게 푸스스 웃어버렸다. 주저앉아있는 정수의 얼굴 앞으로 손이 들이밀어진다. 얼굴은 예쁘장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는 조금 거친 손이었다. 정수가 거리낌 없이 그 손을 잡고 무릎을 일으켰다. 사내의 눈높이가 낮아지고 자신의 총을 건네받은 정수는 조금은 민망한 듯 그제서야 고개를 돌렸다. 그럼에도 눈에 각인된 것은 있었다. 자신보다 조금 작은 키에 마른 몸, 크고 똘망해 보이는 눈동자와 밝은 금발. 고운 얼굴 위로 웃을 때 시원스럽게 벌어지는 입술까지.


 그게 곽지석과의 첫 만남이었다. 세상이 끝났다고 믿었던 시절의 김정수에게,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그 사막에서. 내 안에 가장 깊게 존재할 너를 만났다. 

 



 

 "방향이 여기가 맞아?"

 "아, 그럴 거면 정수 마음대로 가보던가."

 "그건 너가 또 안 된다며."


 

 말투가 신경질적이게 나갔다. 정수는 올라오는 짜증을 억누르며 자신의 경로에 대해 이리저리 훈수를 두던 몇 분 전 지석을 떠올렸다.


 만남의 어색함은 잠깐이었다. 지석과 말을 트는 데에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지석이 입고 있는 쟈켓 뒤에 크게 적힌 7이라는 숫자만 봐도 걔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뻔한 이야기였다.


 서로의 경계가 풀어지고 금방 통성명을 마치자 지석은 제 멋대로 정수의 이름을 불러대기 시작했다. 제가 나이가 더 많고 군에서도 있었으며 어떻게 이곳에 흘러 들어오게 되었는지도 넌지시 이야기했으나 지석은 그 큰 눈으로 가만히 정수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래도 지석의 앞에서는 김정수의 나이도, 김정수의 과거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정수의 말을 들은 지석은,


 

 '정수 같은 사람은 자주 보지.'


 

 김정수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어딘가 심드렁해 보이면서도 시원하게 끄덕여지는 고개가 더 이상 캐물을 말은 없다는 뜻 같았다. 그럼에도 정수는 묻고 싶었다. 나 같은 사람을 자주 본다는 건 무슨 이야기인지. 더 이상 전투에 써먹지도 못하는 애물단지 같은 사람을 많이 본다는 이야기인지, 그게 아니면 이 무지한 사막에서 길을 잃거나 죽을 뻔한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 정수의 눈이 가볍게 움직이는 지석을 훑었다.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피어오르는 의문에서도 차라리 정수는 대답을 듣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다. 어떤 대답이든, 그 말에 속을 다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결국 정수는 임무로 센터의 밖을 나왔으니 합류를 해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때만 해도 지석이 자신에게 호의적일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잃어버릴 뻔한 총도 찾아주었고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저 모래 속에 파묻힌 자신도 꺼내주었으니, 어쩌면 이 앞으로도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였다. 하지만 오히려 지석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꼭 가야 하는 거야? 어차피 파견된 센티넬들이 알아서 할 텐데.'


 

 목소리가 건조했다. 건조하다 못해 제 알 바가 아니라는 듯한 말투에 정수는 심기가 불편했다. 알아서 한다는 게 있나. 살과 피가 튀는 그런 싸움에서. 늘 누군가의 뒤를 책임지던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애당초 군에 소속되어 있던 정수였기에 가고 말고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기도 했다. 그렇기에 정수는 제 몸에 새겨진 대로 답했다. 

 


 '당연히 가야지.'

 '왜?'

 '뭐가 왜야.'

 '그렇잖아. 왜 정수가 가? 그 사람들이 알아서 해야지. 센티넬이 그 정도도 처리 못 할 거면 이 사막엔 왜 왔대?'

 '...넌 할 수 있고?'


 

 말끝에 날이 섰다. 그러자 물끄러미 지석이 눈을 마주친다. 정수는 그걸 피하지 않았다. 지석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평생을 괴수와 싸워온 정수는 이런 전투의 현장을 얕잡아 보는 듯한 지석의 태도가 불쾌했다. 괴수 하나를 혼자서 처리하는 센티넬도 물론 있겠지만 그건 흔치 않은 이야기였다. 대부분이 무리를 지어 괴수를 토벌하거나 정수와 같은 저격수들의 지원을 받는다. 혼자 하는 싸움은 없었다. 혼자 하는 승리 또한 당연히 없었다. 그렇기에 제아무리 떨거지 취급을 받고 비록 얼굴도 모르는 사이들일지라도 센티넬들이 고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그냥 넘겨들을 수는 없었다. 


 정수의 말에 지석은 오래도록 대답이 없었다. 그러더니 가고 싶으면 가라고 정수의 등을 떠밀었다가 가면 또 '어어 거기 아닌데-' 하는 말로 정수의 곁을 부산스럽게 맴돌기 시작했다. 거기에 참을성을 다 써버린 건 김정수였다. 분명 저격수는 매사에 침착하고 평정심을 유지해야 했는데. 이상하게 지석이 내뱉는 말 한두 마디에 두 눈이 질끈 감겼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제멋대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결국 제풀에 지친 정수가 지석을 따라가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아주 신이나 하더니, 정수가 무언가를 묻기만 하면 꼭 이렇게 대답을 하기 일쑤였다. 

 


 "내가 뭘 방해를 해. 나 아니면, 집 찾아갈 자신은 있어?"


 

 앞서 걷던 지석이 몸을 빙글, 돌리며 정수를 바라본다. 그 행동이 얄미운데 또 마냥 미워하기만은 어려웠다. 정수가 짧은 숨을 몰아쉬었다. 


 찾아갈 자신은 있냐고, 묻는다면 물론 자신은 없다만 그렇다고 김정수가 할 말이 없는 건 또 아니었다. 애당초 지석이 걷는 방향으로도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인데 제가 가는 길만 옳다는 듯한 지석의 발언은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한 센터를 집이라고 칭하는 것도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곳에 기거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집은 조금 더 다른 느낌의 장소가 아니냐고 따져 물으려던 정수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입을 여는 것만으로도 소모되는 체력이 상당해 흘려들을 수 있는 것들은 흘려 듣기로 했다. 그냥 집 안 가고 말게, 지쳤다는 듯이 뱉은 말에 곽지석이 얼마나 웃을지는 또 모르고. 


 짧은 입씨름에 정수의 발걸음이 멈추자 곧바로 지석이 다가와 정수의 손목을 잡아끈다. 빨리 걸어, 해 떨어지면 추워- 하는 협박 아닌 협박에 힘 빠진 다리가 모래를 걷어차며 움직이고 두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이 식어가는 바람에 지워진다. 김정수가 지석의 손에 구해진 지 고작 두 시간만에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 유사(流沙) 속에 빠지지 않았더라도 정수는 그날 지석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자신의 생은 그날까지였으리라고 확신했다. 그건 밤이 찾아오고 나서였다. 사막의 낮이 타오르는 불구덩이와도 같다면 밤은 그의 이면과도 같았다. 끝도 없이 모래를 달구던 태양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금빛의 모래들이 온기를 잃었다. 뜨겁게 불던 바람이 매섭게 바뀌고 붉게 물던 서쪽 하늘마저도 검게 변하자 얌전히 지석의 뒤를 따라오던 정수의 마음이 또다시 급해졌다. 어디로 가는 것이냐는 물음에 그동안은 다 길이 있다고만 얼버무리던 지석은 마지막 물음만은 참지 못했는지 자꾸 물어보면 두고 갈 거라는 엄포를 놓았다. 추위에 몸이 떨려오면서도 그 말이 퍽이나 웃겼다. 키도 작고 보폭도 좁으면서. 더 이상 멀어질 거리 따위는 없으면서도 부리는 허세가 제법 귀여워 보였다. 


 그 뒤로는 얼마를 더 걸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옷깃을 움켜쥐고 그저 지석의 뒤를 좇았다. 그러던 지석이 멈춘 건 어떤 모래 언덕 위에서 였다. 아무런 의심 없이 무작정 지석의 발뒤꿈치만 바라보며 걷던 정수가 우뚝 선 지석의 등에 가볍게 부딪혔다. 발밑의 모래가 바로 앞 비탈길로 부스스 떨어지고 정수의 시선이 모래 언덕 아래로 향한다. 


 눈에 힘을 주어 바라본 언덕 아래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붉은 모래가 오랫동안 쌓여 만들어진 바위를 또다시 긴 시간을 들여 사막의 모래폭풍이 깎아 놓았더라. 그리고 그 절벽 같은 바위 옆에는 반 토막 만한 흙집이 지어져 있었다. 사람이 실제로 사는지조차 의심스러운 허름한 흙집을 지그시 바라보던 정수의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하지만 지석의 발걸음은 망설임 언덕 아래로 향했다. 어떠한 설명도 없이 그저 지석에게 이끌려 도착한 흙집은 멀리서 보던 것보다 낡아 여기저기 보수를 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정수라고 해서 그간 어디 뭐 좋은 환경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예상보다 작고 허름해 보이는 외관에 입을 굳게 다물 때였다. 


 지석의 손이 곧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손잡이를 잡는다. 얇고 녹슨 문이 부산스러운 소리를 내며 열리자 좁은 문틈으로 사막의 모래바람이 휘몰아쳤다. 


 

 "싫으면 밖에서 자도 돼. 다음날 얼어 죽어도 난 모르고."

 


 어두컴컴한 내부로 먼저 들어간 지석이 더듬거리며 초를 찾았다. 지석의 손목보다 얇은 초에 불이 붙고 나서야 낮에 보았던 그 희고 맑은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머뭇거리던 정수의 발이 움직여 문턱을 넘고 얇은 문이 닫혔다. 거세게 불던 바람이 멎고 그에 따라 일렁이던 불꽃마저 잔잔하게 타오르자 지석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어서 와, 내 아지트에."

 

 


 

 제 공간에 오자마자 지석이 한 일은 입고 있던 쟈켓을 벗고 목을 축이는 일이었다. 식탁처럼 보이는 둥그런 테이블 위로 제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둔 지석은 어느 한쪽 구석에 박스로 쌓여있는 은색 캔을 하나 집어 들더니 익숙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캔을 땄다. 칙, 하는 소리와 함께 캔이 열렸지만 그게 술이 아니라 7구역에서 캔 형태로 보급되는 물이라는 건 정수도 알 수 있었다.  

 


 "이제 믿어?"


 

 정수의 시선을 의식한 지석이 장난스럽게 묻는다. 어딘가 의기양양한 말투에 괜히 정수의 고개가 바닥으로 돌아갔다. 애꿎게 주변을 둘러보는 척 배회하는 발걸음이 무색하게 정수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 

 


 "...믿었으니까 따라왔지."

 "말은."


 

 지석이 코웃음을 치며 새 캔을 하나 내민다. 하기사, 이제 와서 거짓말은 필요가 없었다. 의심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지석에게 꼬치꼬치 캐물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지석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발칙한 합리화라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을 싸움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사고방식은 늘 비슷했고, 김정수도 마찬가지였다. 눈이 망가지고 제 상황이 변했더라도 뼈에 새겨진 것들은 아직 희미해지지 못했다. 그리고 지석 또한, 더 이상 그런 정수를 탓하지 않았다. 


 목을 축이며 둘러본 지석의 '아지트'의 내부는 역시나 좁고 작았다. 어쩌면 모든 게 지석에게 맞춰진 듯 싶기도 했다. 둥글지만 작은 테이블과 어딘가 기울어 보이는 낡은 의자, 대충 만들어진 침대, 아담한 난로, 간단하게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조리대와 전기가 들어오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커피포트, 그 옆에 마구잡이로 쌓여있는 구호 물품 상자. 그 중간중간 섞여 있는 가이딩 팩까지. 


 여전히 의문스러운 곳이었다. 7구역의 구호 물품이 한가득 쌓여있는 사막 한복판에 있는 아지트. 그리고 그곳을 거리낌 없이 드나드는 곽지석. 그럼에도 사전에 공유된 적이 없는 위치. 당장 몸의 편안함을 가져다줄 수는 있겠지만 머릿속 한켠에 찜찜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수가 다 비워낸 캔을 우그러뜨리며 물었다. 


 

 "...여기는 뭐, 공용 숙소야?"

 "내 아지트라니까 무슨 공용 숙소야."

 "그러면 여기서 너 혼자 지낸다고?"

 


 뾰족하게 튀어나오던 첫 번째 대답과 달리 두 번째 물음에 지석은 물을 들이켜는 척 대답을 회피했다. 대답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김정수가 묻지 못할 것을 물은 것인지. 둘 중 하나인 게 분명했으나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확실한 것은 없었다. 그간 김정수를 향해 방긋방긋 잘도 웃던 곽지석은 이번에는 제 속을 들키지 않으려는 것처럼 철저하게 눈을 피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돌린 듯한 등이 좁고 작았다. 그렇게 정수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지석이 성큼성큼 움직여 난로에 불을 피운다. 촛불 하나뿐이던 방에 더 큰 불이 붙자 시야가 밝아졌다. 어딘가 날이 선 것 같은 지석의 얼굴을 본 건, 그 한순간이었다. 

 


 "씻고 올 거니까 불 꺼트리지나 마. 저거 꺼지면 정수 진짜 내쫓을 거야."

 


 공간에 대한 익숙함은 지석에게 유리했다. 정수가 대꾸를 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은 지석이 빠르게 정수를 지나쳐 방 안에 좁은 쪽문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곧이어 문 안쪽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보같이 난로 앞에 선 정수가 문과 난로를 번갈아 본다. 그새 아까보다 작아진 것 같은 불씨에 정수가 제 머리를 헝클었다. 물론 지석이 진짜로 저를 내쫓지는 않겠지만, 싸워도 제가 이길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선택지가 없었다. 두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린 정수가 기어코 지석이 들어간 작은 문을 쾅쾅 두드렸다. 야, 그래서 이거 뭐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다행히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게 지석이 빨리 나온 탓인지 아니면 정수가 별다른 헛짓거리를 하지 않고 불씨를 가만히 냅둔 탓인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간에 약속은 지켜졌다. 정수는 작은 문을 열고 나오는 지석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고 지석은 뾰로통한 정수의 얼굴을 보고 폭소했다. 설마 내가 진짜 정수를 내쫓겠어? 하며 크게 웃은 지석이 샤워기의 사용법을 알려주며 정수를 작은 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얼른 씻고 오기나 해. 물 너무 많이 쓰지 말고."


 

 오 분 안에 안 나오면 물 꺼진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지석이 정수에게 단단히 일렀다. 하지만 정수는 아까와 같이 긴장하지 않았다. 천천히 옷을 벗고 쏟아져 내리는 물을 맞으며 모래에 쓸리고 데인 살결을 쓸었다. 짧은 새에 아침과 달라진 제 몰골이 황당하기도, 어쩌다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또 허탈하기도, 또 지석의 존재를 여전히 의심하기를 반복하던 정수가 시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자신을 지나쳐온 것들을 떠올렸다. 오늘만 해도 늪처럼 자신을 잡아당기던 유사, 눈앞에서 터졌던 폭탄, 제 곁에 있다가 떠나갔던 수많은 동료들과 영원할 것 같았던 저격수로서의 수명.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것은 곁을 지나쳐간다. 아마 오늘도 마찬가지일 거다. 반나절 사이에도 사람이 죽는데, 그 사이에 늘은 게 상처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하나라면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하며 머리 위에 거품을 끼얹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화장실 천장에 달려있던 작은 전구에 불이 꺼진다. 그와 함께 샤워기에서 떨어져 내리던 몇 줄기의 물마저도 멎는다. 그리고 제 상념을 깨부수듯 문밖에서 들리는 오 분이 지났다는 곽지석의 목소리까지. 


 복잡한 제 머릿속과 너무나도 상반되는 이 상황에 도무지 웃음이 참아지지가 않았다. 문밖에서 지석이 설마 아직도 다 못씼었느냐고 보채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고 얼굴 위로 녹아내린 거품이 흘러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가까스로 제 따가운 눈가를 닦아낸 정수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아 젠장, 그러니까 이건 또 거짓말이 아니었던 거다.




 

 결국 지석에게 사정해 차가운 물이라도 받아낸 정수가 마지막으로 제 몸을 닦아내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보다 몸이 차갑고 갈아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 기존에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입었지만 이 사막에서 몸을 씻은 게 어디인가 싶었다. 지석은 정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그게 아니면 이곳에서 시간을 때우는 방식이 그런 것인지 작은 난로 앞에 앉아 붉게 타오르는 불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낡은 의자가 한쪽 다리로 요람처럼 앞뒤로 흔들거리고 지석의 손에는 아까와는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른 맥주캔이 들려있었다. 딱히 시원해 보이지는 않았다만 은은하게 풍기는 술내음과 붉어진 지석의 뺨을 가만히 응시하던 정수가 지석을 지나쳐 침대 한켠에 자리잡았다. 

 


 "...술이 어디 있었대."

 "흐으...나만 아는 데가 있지. 말했잖아, 내 아지트라니까."


 

 사람이 이런 데에서 술도 안 마시고 어떻게 살겠어. 지석이 작은 의자를 기우뚱 기우뚱 거리며 대답했다. 역시, 의자가 기울어져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니었더라. 정수는 이곳에서 하염없이 저 의자에 앉아 제 몸을 기울이며 시간을 달랬을 지석을 가늠해 보았다. 지석의 말대로 여기가 지석의 아지트라면 그건 아주 긴 시간일 터였다. 의자의 한쪽 다리가 짧아질 만큼. 그 한쪽 다리로 난로 앞 한쪽 흙바닥이 패일 만큼. 아주 길게 지석의 몸에 배인 습관일 터였다. 


 

 "왜, 정수도 줘?"


 

 시선을 느낀 지석이 묻는다. 정수는 고개를 저었다. 총을 잡고 사는 동안 몇 가지 끊은 것 중에 하나가 술이었다. 총잡이들이 술에 의존하다 손이 떨려 그만두는 경우는 의외로 흔한 일 중에 하나였고 그 일은 정수의 선배도, 그의 선배도, 그 선배의 선배에게서도 일어난 일이었다.


 언제였더라. 자신이 수습일 시절이었을 거다. 성년을 앞둔 지 얼마 되지 않은 정수도 늘 술을 마시는 선배에게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대답을 해주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나 늘 매사에 칼같던 선배는 그날만큼은 이유를 대답해 주었다. 물론, 돌아온 선배의 대답은 상투적이었다. 대답은 외로워서 그런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수많은 전투에 나갔다가 돌아와도, 결국 우리는 서포트이기에 그 어떠한 보상도 제대로 받을 수 없고 누군가의 그림자에 속할 수밖에 없다는 그 찌든 열등감과 불만이 외로움으로 변질되어 선배의 은퇴를 앞당기고 있더라. 


 당시에 정수는 그 말을 듣고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선배가 안쓰럽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반감을 가지지도 않았다. 자신은 술에 손을 대지 않겠다는 반면을 삼지도 않았다. 그저 선배 개인의 일이라고 여겼다. 그야 결과적으로 선배는 김정수가 성년이 되기 전에 은퇴를 했고 김정수는 술에 손을 대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지석을 보고도 그 감상이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캐묻고 싶지는 않았고 어설프게 그 애가 끌어안고 있는 것을 까뒤집어 볼 생각도 없었다. 오래도록 쌓인 슬픔과 외로움은, 분명 전염될 테니까. 그리고 김정수는 제 스스로의 문제만으로도 버겁고 버거운 사람이었으니까. 설령 지석의 외로움이 눈에 보이더라도 보지 못한 척 스스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대꾸도 없는 정수의 무응답에 지석은 마시지 않을 거면 얼른 잠이나 자라며 등을 돌렸다. 정수는 지석을 그제서야 바라볼 수 있었다. 작은 등이 난로 앞에 더 굽어지니 안 그래도 작은애가 더 콩알만 하게 보였다. 낮에 자신을 이끌던 당당함은 어디로 가고 고작 밤이 왔다고 쪼그라든 뒤통수가 안쓰럽게 보이기도 잠시였다. 갑자기 뒤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고개를 휙, 돌린 지석과 눈이 마주쳤다. 어딘가 통통하게 부어오른 입술과 술과 열기로 발갛게 달아오른 볼, 그리고 몽롱해진 눈가에 시선이 한참이나 머무르다 거둬졌다. 


 시선을 견디다 못한 정수가 먼저 눈을 떼었다. 빠르게 신발을 벗고 좁은 침대에 몸을 누인다. 덜 마른 머리가 축축하게 목덜미를 덮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얇은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린 정수가 지석에게서 등을 돌렸다. 난로에서 뻗어나온 온기가 좁은 방을 채우고 지석의 의자 소리가 멎을 무렵이었다. 


 지석이 방안을 밝히던 초를 끄고 난로 위로 뚜껑을 덮는다. 불은 꺼지지 않았지만 빛은 차단 된 방에 어둠이 스며든다. 좁고 어두운 방안에서 귓가에 들리지 않는 소리는 없었다. 의자를 원래 자리에 가져다 놓은 지석이 침대로 향한다. 곧 발자국 소리가 멎고 인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딱딱한 침대 위로 지석이 걸터앉고 좁은 침대를 비집고 들어온다. 등 뒤에서 지석의 숨결이 느껴졌다. 원래 우리가 같이 자기로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곳은 지석의 공간이기에 정수가 불평할 것은 없었다. 정수는 있는 그대로 지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적당히 풍겨오는 술 냄새와 따끈하게 데워진 살결, 그리고 옅게 내뱉어지는 숨이 간지러웠지만 가까스로 눈을 감고 일정한 간격으로 숨을 내쉬었다. 정수가 어린 시절부터 평정심을 유지하거나 잠에 들기 어려울 때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하지만 지석은 그렇게 잠에 들려 하는 정수의 등 뒤에 얼굴을 딱 갖다 붙이더니 제 팔을 정수의 옆구리 위로 얹으며 물었다. 


 

 "정수, 그거 알아?"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도 않은데 그 목소리에 눈이 떠졌다. 대답 대신 정수의 몸이 지석에게로 돌아갔다. 큰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돌려 눕자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지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지석 또한 잠을 자려 하는지 두 눈을 꼭 감은 채였다. 그럼에도 예쁜 얼굴이다. 저도 모르게 그 이마 위로 손을 뻗을 뻔한 정수는 그 순간 지석이 눈을 감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막의 밤은 추워. 정말 추워. 너무 추워서, 사람이 얼어 죽어."

 "......."

 "그러니까, 정수도 죽지 마."


 

 지석은 그 말을 남기고 잠에 들었다. 정말로 자는지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대고 지석의 얇은 어깨를 살짝 흔들어보아도 지석의 큰 눈이 다시 떠지는 일은 없었다. 부탁 같기도, 아까와 같은 규칙 같기도, 어떠한 바램 같기도 한 지석의 말이 정수의 속을 들쑤셔놓았다. 다른 사람의 잠은 다 깨워놓고 자신은 제 팔을 베고 곤히 잠에 든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정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한숨을 쉬고 지석의 몸 위로 이불을 나눠 덮는 것뿐이었다. 


 곽지석은 아침 해가 뜰 때까지 팔 한 번을 뒤척이지도 않고 단잠을 잤다. 하지만 김정수는 그 깊은 밤과 새벽을 지나서도 잠에 들지 못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지석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한 것이 없엇다. 그건 애써 외면하려 했던 곽지석의 외로움 때문이었다. 알고 싶지 않았어도 어떤 방식으로든 넘쳐흐른 외로움이 그렇게 김정수를 잠식했다.


 이래서 술이 싫었다. 술기운에 제 외로움 하나 제대로 잡고 있지 못한 곽지석이 어리석어 보였고 그 안타까움을 멋대로 동정하게 만든 이 밤이 싫었다. 다른 이의 잠은 깨워두고 자신은 편안히 잠든 지석이 얄미웠으며 그 얼굴에 눈이 멀어 밤을 꼴딱 새운 자신이, 제 앞가림하기도 급급한 주제에 감히 타인의 외로움이 궁금한 제가 또다시 싫었다. 

 

 



 하지만 좋든 싫든 정수는 그렇게 며칠을 지석에게 신세를 지기로 했다. 사막에서 된통 구르고 나니 섣불리 발을 떼는 게 더 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석은 제가 정수를 데려온 만큼 정수가 제 아지트 안에서 무엇을 하든 잔소리를 하거나 타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수 스스로가 제 할 일을 찾아 나섰다. 정수는 제가 머무는 동안 지석의 낡고 오래된 아지트의 내부를 청소하고 보수했다. 지석은 굳이 그런 정수를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그냥 있어도 자신에게 골치 아픈 일이었을 테니, 나중에는 슬쩍 정수를 끌고 가 여기도 손을 좀 봐주면 안 되냐는 말까지 당당하게 해댔다. 


 

 "너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옥상까지 손봐달라는건 좀 너무한 거 아냐?"

 "아 그래도 좀 해 줘어어. 정수는 내가 비 맞고 자면 좋겠어?"


 

 샤워 10분 하게 해줄게, 응? 지석이 제안한다. 제 나름대로는 정수를 꼬드기는 말에 그저 웃음이 나왔다. 그런 조건을 걸지 않아도 어차피 해줄 심산이었다만 부탁을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정수는 나중에 약속이나 지키라며 지석을 타박했다. 하지만 애당초 지석의 말대로 물을 10분이나 틀어놓을 생각도 없었다. 며칠 동안 지석의 곁에 있어 본 정수는 알았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곳에 떨어져 나온 지석의 보급품을 멋대로 갈취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었다. 먹는 것 하나 양보받는 입장에서 내가 이것을 했으니 네 것을 더 내놓으라는 말을 할 정도로 김정수가 썩어빠진 인간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지석의 말이 불러온 궁금증이 있었다. 이 뜨겁고 메마른 사막에도 비가 오느냐고. 너는 그런 비를 맞아본 적이 있느냐고. 그런 비가 올때 너의 아지트는 안전하느냐고, 그게 아니면 잠시 다른 곳으로 피해 있는지, 혹시 피해 있는 곳이 7구역의 센터인지. 그렇다면, 혹시라도 이 사막의 땅이 젖는 날에는 너를 센터에서 볼 수 있느냐고, 그런 것들을 묻고 싶었다. 

 



 

 감히 이 시간이 평온하다고 해도 될까. 지석과 함께 그 좁은 아지트에 머무는 동안 정수는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오랜만에 걱정 없는 늦은 잠을 자고 뙤약볕을 피해 지석과 좁은 방에서 뒹굴거리다 적당히 배를 채우고, 해가 저무는 것 같을 때에 밖에 나가 약해진 흙벽을 수리하고, 지석과 함께 주변을 돌아다니기도 하다 모래가 식을 때에 난로에 불을 지피고.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늦은 밤 침대 곁에 지석이 잠들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낭비했다. 총을 정비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쓰고 쓸데없이 지석과 노닥거렸다. 주제는 여러 가지였다. 지석이 알고 있는 사막에서부터 김정수의 총의 이름이 백수와 맹수라는 것까지. 백수는 여기 있는데 맹수는 집에서 자고 있다는 시답잖은 농담부터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대화들이 그 하루의 낮과 밤을 채웠다. 그리고 김정수는 깨달았다. 짧은 새에 사람이 죽기도 하지만, 짧은 새에 사람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기도 한다는 걸. 김정수는 그걸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러던 새벽이었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한기에 정수의 눈이 떠졌다. 무심코 지석을 잡으려 뻗은 손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그 순간 퍼뜩 정신이 들었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난 정수가 더듬거리며 지석을 찾아보아도 지석이 누워있던 자리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난로에 불씨가 끄트머리만 남은 걸 보면 아직 새벽인데. 무엇보다 한눈에 들어오는 이 좁은 방에서 곽지석이 어디에도 없다는 게 순식간에 정수의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급하게 신발을 신은 정수가 외투를 걸치고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녹이 슬어 잘 열리지 않는 손잡이에 손을 댄 순간이었다.


 벌어진 문틈 사이로 낯설지 않은 등이 정수의 눈에 박혀 들었다. 둥글게 말린 좁고 작은 등은 지석이었다. 얇은 목과 그 목덜미를 덮게 자란 부스스한 금발머리. 옆에 까져있는 여러 개의 캔맥주와 가이딩 팩. 사막의 밤이 얼마나 추운지 아느냐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반팔 하나로 모래 위에 앉아 있는 지석이었다. 


 그 순간 손과 발이 멈추었다.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나갈 것 같았던 불안이 고요하리 만치 잠잠해졌다. 좁은 문틈사이를 손으로 더듬으며 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정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있다 침대로 돌아갔다. 제가 발을 뻗은 적이 없다는 것처럼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다시 침대에 누운 정수가 얌전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지석이 다시 정수의 곁에서 잠드는 그 순간까지 정수는 잠에 들 수 없었다.


 김정수가 잠에 들지 못한 것은, 왜 그러고 있느냐고 차마 문을 열고 나서지 못한 것은 어떠한 불안이기도, 불안에서 기인한 외면이기도 했다. 김정수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보이는 것뿐이라고는 끝없이 펼쳐진 모래벌판과 새카만 하늘, 그 사이에 수도 없이 박혀있는 별들 뿐인데 그 앞에 앉은 곽지석이 한없이 작고 작아 보여서 그랬다. 당장이라도 그렇게 바스라질 것 같고, 이름이라도 부르면 그대로 이곳을 떠날 것 같아서 그랬다. 정말로 이 사막에서 네가 지낸 수많은 나날이 오늘의 새벽과 같았을까 봐. 그 며칠을 네게 기생하며 느끼는 평온이 너의 어떤 고독을 대가로 하는지는 알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 물을 때 나의 삶은 이리도 고달프다고 말할 거면서 정작 네가 꺼낼 이야기에는 지레 겁을 먹은 비겁한 이기심이었다. 

 

 

 

 사람이 도착한 건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뒤였다. 접점이 많지는 않지만 정수와는 구면인 사람이었다.


 센터의 센티넬 연구원인 건일과는 7구역으로 자리를 옮기고 난 그다음 날 적성 검사를 위해 만난 게 처음이었다. 아무리 그동안은 군에서 저격수로 활동했던 정수일지라도 우선은 가이드로서의 능력이 있으니 형식적인 절차를 밟아 가이드 등록을 해야 한다는 게 건일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원래는 가이드 전담 연구원이 있어야 하지만 여기는 워낙 사람이 부족해 자신이 겸하고 있다는 말까지. 그게 흰 가운을 입고 제 팔뚝에서 피를 뽑아가는 건일의 대한 첫인상이었다. 


 그러니 흰 가운이 아닌 검은 방탄조끼를 입은 건일의 모습은 새롭기도, 어색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제가 타고 사막으로 왔던 트럭보다 더 큰 트럭에서 단박에 뛰어내리는 모습도, 그런 건일을 보고 반갑게 뛰어가는 지석의 발걸음도. 모든 게 정수의 눈에는 어색하고 낯간지럽게 보였다. 


 하지만 정수가 건일을 어떻게 느끼건 간에 김정수의 일정은 정해져 있었다. 지석에게 사정을 들은 건일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흔쾌히 대답했다. 

 


 "차라리 잘 됐지. 나랑 같이 돌아가는 게. 어차피 가는 길에 정류장은 또 들릴 생각이었으니까."

 "정류장이요?"


 

 7구역에 와서는 처음 듣는 단어에 정수가 반문했다. 정수의 의문에 돌아온 건일의 답변은 간단했다. 말에 따르면 이 7구역의 사막에는 일정 위치만큼 퍼져있는 정류장이 있는데 사막에서 조난당한 센티넬이나 군인들을 물자 조달 차량이 그 정류장을 지나치며 태워 간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배차라고 할 것도 없고 언제 차량이 지나갈지 몰라 사실상 운이 좋아야 살아남는다는 건일의 마지막 말에 기어코 정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야, 결국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거잖아요."

 "뭐, 그래도 살리는 사람도 있으니까."


 

 건일이 부드럽게 대답했지만 정수는 그 말에 차마 맞장구를 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지석의 둥그런 뒤통수를 바라보며 며칠 전 전투에 합류하겠다는 자신을 말리며 이곳으로 데려왔던 일을 떠올렸다. 어쩌면 합류하지 못했더라면, 그런 정류장을 몰랐더라면. 아마도 자신은 저 사막 어딘가에서 독수리의 먹이나 되어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정수가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러나저러나 이 목숨이 참 길고도 질겼다. 


 정수는 그 뒤로 건일을 도와 지석의 집에 쌓아 둘 생필품들을 옮겼다. 건일에게서 무슨 물을 이렇게 다 썼냐는 잔소리를 듣긴 했지만 사람이 둘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지석의 변명에 건일은 더 이상 지석을 책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치를 본 것은 정수였다. 정수는 건일에게 제가 잘못했다는 말을 연거푸 뱉어내고 나서야 용서 비스무리한것을 받을 수 있었다. 


 건일이 이곳에 얼마마다 한 번씩 들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챙겨온 물자로 보건대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인듯했다. 제법 많은 물건에 며칠 동안 발붙이고 있던건 자신이니 정리는 제가 하겠다며 얼마 남지 않은 상자 중 마지막 상자를 옮기던 찰나였다. 마지막 상자를 대신 든 건일이 좁은 나무 문 앞에서 정수를 막아섰다. 

 


 "..뭐예요? 갑자기."


 

 기류가 이상했다. 지석은 방 안에 우두커니 서 있었고 김정수는 문 앞에서 저지당했으며 그사이를 건일이 막고 있었다. 잠시 말을 멈춘 건일이 곧 엷게 웃으며 답했다. 


 

 "지석이는 잠깐 나랑 볼 일이 있어서. 정수는 밖에서 기다려줄래?"

 "....저요?"

 "응."

 


 이건 나랑 지석이 일이라. 누구 보여주기가 좀 그렇네.


 건일이 부드럽게 선을 그었다. 문 앞에 선 정수의 눈이 순간 흔들렸고 지석은 고개를 돌렸다. 문 손잡이를 건일의 팔목에서는 정수를 안으로 들이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이 엿보였다. 그리고 김정수는, 제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 둘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7구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신이 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함께한 세월이 다를 것이다. 고작 이곳에 사흘 머물렀던 김정수보다 몇 년을 함께 했을 건일이니 그 일이 무엇이든 제가 궁금해하고 알 수 있을 권리는 명백하게 없었다.


 정수는 얌전히 자리를 비켰다. 문이 닫히고 건일이 아지트 안으로 사라지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정수는 그저 낡은 벽에 기대 멀고도 먼 사막의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고 모래가 휘몰아치는 대로 변하는 것 같은 지평선을 바라보다 정수는 문득 의문이 생겼다. 지석이가 센티넬이었나. 직접 물은 적도 없고 지석이 그렇다고 말한 적도 없었지만 가이딩 팩과 모래 속에서 자신을 꺼내준 것만 보면 아마도 그럴 거라고 정수는 은연중에 생각해온 터였다. 그렇다면 가이드인 내가 있어도 되는 거 아닌가.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만 꼭 제가 떨어져 나올 이유가 있었나. 그게 아니면 건일이 형이 가이드였나.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진 사막도 잊고 잠시 생각 중이었다. 얇은 흙벽 너머로 지석의 고통 어린 신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저도 모르게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문 앞에 선 정수는 저도 모르게 잘 보이지도 않는 제 오른쪽 눈을 문 틈새로 가져다 대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더 이상 잡히지 않는 시야에 정수가 다시금 제 왼쪽 눈을 틈으로 들이밀었다. 그리고 나서야 보였다. 의자에 앉아 입을 막고 있는 지석과 그 애의 마른 팔에서 피를 뽑아내고 있는 건일이. 


 단순한 채혈이라고 보기에는 양이 많았다. 족히 손가락만 한 병으로 다섯 병을 뽑아내고 나서야 채혈이 끝이 났다. 그 뒤로는 건일의 주머니에서 나온 조그마한 약병 3개가 지석의 팔에 투약되었다. 내용물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투명한 색의 약은 딱히 가이딩 팩 같은 가이딩 약물인 것 같지도 않았다. 유추해 내기에는 너무나도 적은 정보량에 정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문 밖의 정수를 의식한 것인지 두 사람의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채혈과 투약 이후 지친 지석은 테이블에 엎드려 멍하니 건일의 말에 대답했고 때때로 웃었다. 그게 정말 그 애가 좋고 즐거워서 웃는 웃음이 아니라는 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정수의 주먹이 꾹 쥐어지고 저도 모르게 손이 비어있는 총집으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그 짧은 찰나의 지석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착각일까. 이 문의 틈새는 아주 좁고 작으니까. 그 안으로 김정수의 동공하나 비칠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 지석과 시선이 맞닿은 것 같았다. 희미한 시선과 옅게 올라가는 입꼬리. 그 무엇도 증거가 될 수 없는데. 순식간에 빨라지는 심장박동에 정수는 저도 모르게 도망치듯 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건일과 지석이 아지트 밖으로 나온 건 그로부터 삼십 분은 족히 지난 뒤였다. 지석은 아까보다는 상태가 괜찮아 보였고 건일은 처음과 같았다. 그리고 김정수는, 멍청하게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건일은 인사라도 하라며 잠시 자리를 비켜주었다. 작은 흙집만큼이나 큼지막한 트럭 위를 빠르게 올라탄 건일이 시동을 걸었는지 금방 엔진이 거칠게 울기 시작했다. 차의 주변으로 흙먼지가 휘날리고 언제나처럼 뜨거운 태양이 지석과 정수의 발밑을 달궜다. 


 

 "이거, 안 챙겨 갈 거야?"


 

정수가 머뭇거리는 사이 지석이 정수에게 백수를 내밀었다. 흰 총에 금장이 덮인 제 총을 보고 정수는 방금 전 제가 빈 총집을 만질 때의 감각을 기억해 냈다. 아마 전투였다면 섬찟했을 순간이었을 터였다. 총을 믿고 싸우는 저격수의 총집이 비어 있다는 건 이미 죽겠다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는 말이었다. 그런 김정수가 제 총집이 빈 것도 잊고 있었다니. 자신이 이곳에서 얼마나 풀어져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오랫동안 쥐지 않은 백수를 건네받자 기분이 이상했다. 손에 감각이 무뎌진 게 아닐까 싶어 총자루를 돌려보았지만 그건 또 아니더라. 짧게 안도한 정수가 빈 총집에 백수를 밀어 넣었다. 풀어진 경계심, 허리께에서 느껴지는 묵직함, 그리고 제 눈앞에서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곽지석. 등 뒤에서 울리는 트럭의 큰 엔진소리. 모든 게 지석을 떠나기에 완벽한 시점이었다. 


 

 "잘 있어. 또..."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또 올게, 라고 하는 말이 과연 맞을까. 김정수는 잠시 고민했다. 또 올게, 또 봐, 또 볼 수 있을까, 어떤 말도 이 상황에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았다. 지석의 아지트는 사막의 한복판에 있었으며 아마 정수가 제 자의로 다시 이곳을 찾아오기는 쉽지 않거나 아예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지석을 다시 만나기 위해 조난을 당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고. 자신을 만나러 센터에 오라는 말은 더더욱이 할 수가 없었다. 


 정수가 우물쭈물하던 찰나였다. 별안간 크게 웃음을 터트린 지석이 단박에 정수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얼마나 거세게 와 안기는지 웬만해서는 힘으로 누군가에게 밀려본 적이 없던 정수의 뒷발이 주춤할 정도였다. 품 안에 들어찬 지석의 팔이 정수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고 목덜미에 묻힌 입술이 작게 조잘거린다. 

 


 "또 봐. 또 오고. 또 내가 찾으러 갈게."

 


 잘 가, 정수.


 그렇게 꽉 끌어당겼던 품이 놓였다. 작은 몸이 품속을 빠져나가고 지석은 미련 없이 자신의 아지트로 돌아갔다. 정수는 건일이 클락션을 울리기 전까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지석이 사라진 문 안쪽을 바라보았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얼굴에 쓰여 있었나. 그게 아니라 저 녀석 능력은 독심술인가. 제 목덜미를 괜히 더듬은 정수가 건일의 트럭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까보다 더욱 거세게 뛰는 것 같은 심장에 도무지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이건 이 사막이 뜨거운 탓도 있겠지만, 그늘 하나 없는 곳에서 삽십 분을 넘게 서 있던 김정수의 탓도 있겠지만, 정확하게 이건 곽지석 탓이었다. 아주 잠시나마 정수의 목덜미에 스친, 그 애의 말랑한 입술 탓이었다. 

 

 


 

 센터로 향하는 동안 건일과 정수는 총 다섯 개의 정류장에 들렀다. 그중에 세 군데에는 사람이 없었고 남은 두 군데에서만 사람을 구조 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대부분이 정수가 아는 얼굴이었다. 첫 번째 들린 정류장에서는 정수와 함께 지원을 나온 센티넬 한 명과 기존 부대에서 복귀 중이던 가이드 하나가 구조되었다. 늦게 한 통성명이지만 그 센티넬은 자신의 이름이 형준이라고 일러주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무엇이든 자를 수 있지만 늘 힘이 부족한 탓에 이번에도 자를 수 있던 건 죄수의 꼬리 하나였다는 말이 어딘가 안쓰럽게 들리기는 했다. 


 그렇게 힘을 다 써버린 형준이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차렸을 때, 가이드인 승민을 만났다고 했다. 정확히는 승민이 복귀를 하러 정류장으로 향하는 와중에 쓰러져 있는 형준을 발견하고 함께 정류장에 도착했다는 게 두 사람의 이야기였다. 건일이 오기까지는 이틀이나 걸렸지만 그래도 승민이 가지고 있던 비상용 텐트와 식량 덕분에 살았다는 형준의 말에 승민은 괜히 제 어깨를 두드렸다. 


 다음 정거장에서는 주연이 구조되었다. 주연은 승민과 건일과도 안면이 있어 보였고 무엇보다도 중간부터 사라진 형준과 정수를 기억하고 있었다. 차에 타기가 무섭게 '엥? 이 사람들 안 죽었네?' 하고 뱉어버린 말에 건일의 잔소리를 감지한 주연은 꽁지가 빠지게 트럭의 뒤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두 사람이 대치하다 건일이 먼저 한 수를 접었다. 피곤하게 힘 빼지 말고 얼른 타라는 말에 주연이 얌전히 트럭의 뒤로 올라탔다. 다시금 운전대를 잡은 건일의 얼굴은, 제법 피곤해 보였다.


 나중에서야 주연에게 들었지만 주연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괴수를 불태우고 가장 가까운 정류장으로 걸어온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실종되거나 죽었기에 당연히 형준과 정수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형준은 제가 살아있는 건 승민의 덕이라며 공을 돌렸다. 승민은 쑥스러운 듯 했지만 굳이 부정하지 않았고, 정수는 부러 지석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한바탕 소란을 피운 것과 달리 주연은 제법 피곤했는지 차에 올라타기가 무섭게 잠이 들었다. 그건 승민과 형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람이 어제와 달리 다섯으로 늘었음에도 차에서 눈을 뜨고 있는 이는 건일과 정수가 전부였다. 조용하게 잠이든 뒷좌석을 잠시 바라보던 정수가 피곤해 보이는 건일에게 운을 띄웠다.


 

 "교대할까요."

 "응? 괜찮아. 더 자도 돼. 넌 여기 길도 잘 모르고."

 


 사실상 그렇긴 했다. 제7구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정수는 여전히 사막에 대해 무지했다. 그럼에도 그런 말을 건넨 건 이틀 넘게 운전만 한 건일의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아서였다. 제 나름대로는 건일을 위로하고자 한 말이었지만 어째 건일은 정수의 말을 다르게 이해했다. 

 


 "왜, 잠이 안 와? 나 졸음운전 할까 봐?"

 "아뇨, 그게 아니라요."

 "그러면, 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짧은 말이 정수의 명치를 파고들었다. 건일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건 아니지만 건일의 화법은 어딘가 부드럽고 나긋하면서도 늘 정수의 중심을 꾹 찍어 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정수도 딱히 숨길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지석이는요. 입 밖으로 나온 이름을 듣기가 무섭게 건일이 웃음을 터트렸다. 오랜만에 보는 웃음이었다. 그 웃음소리에 왜 자신이 부끄러웠는지는 더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정수는 민망함을 참고 지석에 대해 물었다. 건일과 무슨 일을 했고 왜 피를 뽑았는지는 당연히 묻지 않았지만 왜 그곳에 혼자 있는 것인지,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정도는 건일이 대답해 줄 수 있으리라 여겼다. 아니나 다를까 정수의 질문을 들은 건일은 잠시 생각하다 트럭 뒤 칸을 한번 곁눈질하고는 금방 입을 열었다. 


 

 "뭐, 지석이는 파수꾼이니까."

 "파수꾼이요?"


 

 센티넬이 아니라요? 정수가 되묻는다. 그러자 건일이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센티넬은 맞지. 그런데..."

 


 아까와 달리 건일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다. 시끄러운 엔진음 소리가 여전히 고막을 파고들고 건일이 여러 번 기어를 바꾸다 야트막한 모래 언덕을 넘고 나서야 건일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사막을 지키는 애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마저도 시원치는 않았다. 도리어 더 찌푸려진 정수의 표정에 건일이 슬쩍 웃는다. 그러고는 능숙하게 정수를 달래기 시작했다. 

 


 "미안해. 근데 나도 더 이상은 어려워. 자세한 건 지석이한테 물어보는 건 어때?"

 "걔를 언제 또 만날 줄 알고요."


 

 그 말이 단박에 튀어 나갔다. 불퉁하게 나간 말이었음에도 건일은 그 말을 짜증으로 듣지 않았다. 오히려 정수의 비관을 뒤집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또 만날 수도 있지."

 "....만나도 말 안 해 줄 수도 있잖아요."

 "...흠... 그런가."


 

 핸들이 가볍게 꺾였다. 건일은 그새 입을 다물었다. 그걸 끝으로 정수는 대화가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대화의 끝에서 얻어낸 것이 없다고 여겼다. 꼭 지석을 향한 옹졸한 제 마음만 들킨 꼴 같았다. 지석에게는 묻지 못하고 남에게만 묻는 곽지석의 이야기. 나는 있는 대로 의심해 놓고 이제 와서 또다시 타인을 통해 너를 알려고 하는 비겁함에 혓바닥이 껄끄럽게 느껴지기 직전이었다. 운전대를 바로잡은 건일이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니, 걔가 누굴 그렇게 대하는 건 또 처음 봐서."

 


 건일은 이번만큼은 웃지 않았다. 두 눈으로 앞을 바라보며 올곧게 나아가야 하는 방향만을 탐색하는 건일에 정수는 그때야 알았다. 건일이 지석을 찾아왔을 때, 제가 건일을 이상하게 느낀 것처럼 건일도 마찬가지로 김정수를 이상하게 여겼다는 것을. 아니, 정확하게는 곽지석을. 제 공간에 타인을 들인 곽지석을, 그리고 어쩌면 그런 곽지석의 아지트에 최초로 입성한 타인, 김정수를. 

 

 

 

 하지만 그 뒤로 지석을 만날 수는 없었다. 지석이 왜 거기서 홀로 지내는지, 센티넬이라면서도 왜 가이드도 없이 그 하찮은 가이딩 팩으로만 고통을 달래는지, 그 어떤 의문도 해소된 것이라고는 없었다. 그저 지석이 그 사막의 파수꾼이라는 것. 그렇기에 그곳에 혼자 있다는 건일의 대답은 여전히 모호했으며 납득 하기가 어려웠다. 하물며 그 파수꾼이라는 것은 센티넬인 주연과 형준도 모르는 일인 듯 했다. 넌지시 꺼낸 파수꾼이라는 말에 주연은 '그게 먼딩?' 하고 금방 흥미를 잃었고 형준은 그런 식의 센티넬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물며 이제 7구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정수의 입장에서는 접근할 수 있는 정보조차 제한적이었다. 더 이상 건일에게 떼를 쓸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무작정 지석을 찾아 나설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정수는 습관처럼 제7구역의 대문을 서성였다. 그러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지석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또 보자고, 또 오라고, 또 자신이 찾아 가겠다던 그 말이 설령 허울뿐이었더라도 정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것 뿐이었다. 지석을 만났던 그 금빛 사막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이 부시게 웃던 네 얼굴을, 저 사막의 모래보다 빛나던 네 머리카락을, 한없이 밀려오던 네 품을 기억할 뿐이었다. 

 

 

 

 지석을 다시 만나게 된 건 그로부터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처음 나갔던 지원 이후로는 다시 교관으로 복귀해 다른 이들을 교육하던 정수에게 갑작스럽게 임무가 내려왔다. 임무의 내용은 간단했다. 며칠 전에 불어난 괴수의 수가 슬슬 정리 되어가니 후발 부대가 남은 자잘자잘한 괴수들을 청소하고 돌아오라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까 메인은 다 해결했으니 남의 뒤치다꺼리나 하고 오라는 이야기였다. 이따위를 임무라고 던지는 상부가 황당하기도 했다만 이쯤 되니 정수는 제가 왜 이곳에 있게 되었는지 슬슬 감이 오기 시작했다. 


 이런 일에는 반쪽짜리가 딱이라는 말이겠지. 여기는 인력도 자원도 부족한 사막 한가운데에 7구역이니. 언제 어떻게 쓰다가 버려도 아쉽지 않은 게 아마도 자신일 테니.


 이번에는 형준도, 주연도 없는 출동이었지만 거부권은 없었다. 자신의 처지는 그 누구보다도 김정수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아무런 말 없이 작전지휘실을 나온 정수가 곧바로 제가 가진 총 세 자루를 챙겨 들었다. 흰 저격 총 두 자루와 검은 권총 한 자루가 총집에 꽂히고 정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방을 나섰다. 모든 게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출동을 하는 내도록 차곡차곡 차올랐던 짜증은 우습게도 사막에 발을 딛고 나서야 사라졌다. 뜨거운 모래 속에 군화 굽이 파묻히고 나서 떠오른 것은 또다시 지석이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저 모래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지석을 만났던 그 사흘이 꿈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7구역 센터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누구도 모르는 센티넬. 같은 센티넬들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는 파수꾼. 그런 파수꾼이 지킨다는 사막. 모든 것들이 움켜쥘수록 손안에서 흩어지는 모래알 같았다. 


 그렇기에 사막을 향하는 동안에도 정수는 또다시 지석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제가 가진 의문은 영원히 저와 함께 무덤까지 묻힐 것이라고 여겼다. 사막은 넓고 오가는 이가 없는 땅이니. 어쩌면 지석을 만나더라도 물을 용기가 없을지도 몰랐다. 김정수는 비겁하니까. 김정수는 당장 제가 살기에도 급급하니까. 곽지석의 지난날을 모두 껴안을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렇게 다스린 마음이 평온했냐고 묻는다면. 글쎄. 언젠가는 후회할지언정 그것이 오늘은 아닐 것이다.

 

 

 다행히 선발대에서 잘 처리를 했는지 남은 괴수가 많지는 않았다. 남은 괴수들은 크기도 작았고 전투력도 미미했기에 작업의 속도는 예상보다 빨랐다. 어쩌면 맨 처음 계획보다 조금 더 이른 복귀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막은 언제나 변덕스러웠고 그 사막의 괴수들도 마찬가지더라.


  정수가 마지막 괴수를 처리하고 센터로의 복귀를 위해 정류장의 위치를 탐색할 때였다. 갑자기 울리는 땅에 정수가 몸을 낮게 낮추었다. 모래에 손을 대고 진동을 느끼는데 순식간에 발밑에서 뻗어 나온 무언가가 정수의 몸을 쳐올렸다. 방어 자세를 갖추기도 전에 온몸으로 퍼지는 충격이 잇따른다. 허공을 부유한 몸이 빠르게 추락하고 모래 위를 나뒹굴었다.


 뿌연 먼지와 띵한 머리로 시야의 확보가 느렸다. 가까스로 왼쪽 눈을 뜬 정수가 눈앞의 물체를 확인하며 제 상태를 체크했다. 가장 먼저 땅에 부딪힌 오른팔에는 통증 이외에 감각이 없었다. 손가락을 움직이려고 해봐도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낭패였다. 김정수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나마 남은 왼쪽 눈과 총뿐이었는데, 순식간에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


 하지만 정수는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흙먼지가 걷히고 정수가 상대를 똑바로 직시했다. 땅에서 반 정도 기어 올라와 있는 괴수는 지네 타입의 괴수인 듯 했다. 물론, 크기는 정수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르게 비정상적으로 크기는 했지만 겁을 먹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부딪힌 팔 때문에 아프다고 떼를 쓸 만한 동료는 더더욱 없었다. 적어도 도망칠 기회를 얻으려면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고통을 참아낸 정수가 제 허리춤에 장전 되어있던 권총을 꺼내 들었다. 어차피 서로의 시야가 트인 상황에서 저격총은 장전 시간만 오래 걸릴 뿐이었다. 차라리 정수는 그나마 멀쩡한 제 두 다리를 믿고 혼란을 만드는 게 빠르다고 판단했다. 빠르게 탄창을 갈아낀 정수가 총구를 사막의 한복판으로 겨눴다. 발사된 총알이 이리저리 터져나가며 흙먼지를 일궈 냈다. 


 하지만 김정수의 작전이 옳았건 아니었건 간에 순수한 체급 차이에서 오는 불가능은 여전히 존재했다. 괴수의 꼬리 짓 한 번에 모래 먼지가 거둬지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움직임에 정수가 늦었다고 생각하기도 전이었다. 코앞까지 들이닥친 괴수의 꼬리에 정수가 제 팔을 올려 몸을 보호하려 했다. 곧 또다시 저 꼬리로 제 몸을 후려칠 것이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살 수 있을까. 몇 번이나 저를 비껴간 죽음이 이번에도 비껴갈까. 아마 이번은 무리일 것이다. 아마 이대로 눈을 감으면 다시 볼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은 아니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정수는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다음 세상 따위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만, 이럴 줄 알았다면 그 날 밤 새벽 별 앞에서 홀로 앉아 있던 지석을 혼자 두지는 않았으리라고.


 그 순간이었다. 바닥을 뚫고 올라온 모래 기둥이 정수의 눈앞을 가로 막았다. 뿐만 아니었다. 사방에서 튀어 오른 모래 기둥들이 빠르게 괴수의 몸에 달라붙어 괴수를 제압했다. 밧줄에 묶인 것처럼 발버둥을 치는 괴수가 힘겨루기를 하듯 땅 밑으로 가라앉고 떠오르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점차 사라진 모래 기둥 너머에는, 


 

 "너... 여기는 어떻게,"

 "정수는 내가 모르는 사막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

 "또 보자고 했잖아. 또 오라고. 내가 또 데리러 온다고."

 


 지석이 있었다. 등 뒤에 커다랗게 7이라는 숫자가 쓰여진 쟈켓, 이 사막의 모래 알갱이보다 밝게 빛나는 금발과 둥그렇게 큰 눈, 자신을 보며 도톰하게 올라가는 애굣살과 시원스럽게 벌어지는 입매까지. 지석임이 확실한 모든 것들에 정수는 말을 잃었다. 두 다리에 힘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두 눈에 지석을 꼼꼼히 새기기라도 하듯 그저 멍하니 자신의 앞에 선 지석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말도 없이 퍼부어지는 시선에 지석이 민망한지 제 볼을 긁었다. 아이참, 왜 이러는거야. 하는 웃음소리가 들리고 머잖아 지석이 정수의 몸을 잡아 일으켰다. 

 


 "뭐해, 시간 없어. 나 쳐다보기만 할 거야?"

 "...그게 아니라, 너 도대체 어떻게,"

 "아, 그런 건 나중에 물어보고."

 


 지석이 손사래를 치며 정수의 말을 끊어낸다. 그러고는 손짓 한 번으로 제 눈앞에 무릎보다 조금 더 넘게 올라오는 모래 더미를 만들어냈다.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하게 생겨 포대기를 뒤집어쓴 듯한 모양새가 꼭 어린 시절 공포영화에 나오는 유령 같아보이기는 했지만 조물주인 지석을 닮아 제법 귀여운 모래 유령이었다. 


 하지만 귀여운 건 둘째 치고, 정수는 지석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정수의 시선이 지석과 그 모래 유령 사이를 오간다. 그러자 짧게 한숨을 내쉰 지석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우선은 도망가. 정수가 있으면 나도 불편해."

 "... 나보고 도망가라고? 이 상황에서?"

 "그러면 여기서 정수가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지석의 물음에 말문이 턱 막혔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었다. 정수는 이 싸움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움이 되었더라면 애당초 지석이 자신을 구해줄 필요도 없었을 거다. 있어봤자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이라는 건 자신도 알고 있었다. 제가 응석을 부릴 상황이 아니라는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꼭 그렇지가 않았다. 어느새 지석의 손을 쥔 정수가 그 애의 손등을 매만진다. 얼굴만큼이나 희고 고운 손 위로 불거진 핏줄들이 손끝에서 느껴지고 작게 한숨을 쉰 지석이 정수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뺨과 귓가에서 지석의 금발이 비벼지고 눌리며 정수를 간지럽히는 것도 잠시였다. 지석이 말을 이었다. 

 


 "...바온이가 데려다줄 거야. 가서 기다리고 있어. 얼마 안 걸릴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금방 갈게. 그 말에 대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지석이 정수를 밀어버린 탓이었다. 안 그래도 한바탕 굴렀던 몸이 또다시 모래 언덕을 구른다. 한참을 굴러떨어지고 나서야 지석과 저 멀리 멀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원래 이런 모래 절벽이 있었나. 아니면 이것도 곽지석의 능력인가. 어느 쪽이든 간에 김정수가 기어 올라갈 수도 없을 만큼의 높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절벽 맨 위 끄트머리에서 희미하게 보이던 지석이 사라지고 크고 작은 소음이 퍼지자 정수와 함께 굴러떨어진 모래 유령은 작달막한 손으로 정수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끌기 시작했다. 


 지석의 앞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하물며 지석의 의지와 명령을 듣는 피조물 앞에서 정수가 부릴 수 있는 고집은 많지 않았다. 그 가벼운 손길에 정수는 결국 발걸음을 떼었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제 등 뒤 너머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바온이라는 모래 유령은 (유령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역시나 지석을 닮아있었다. 작아서 닮았다는 게 아니라 하는 행동 모양새가 그러했다. 작은 주제에 앞장을 서는 것도 그러했고 정수가 뒤처지거나 무언가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는 정수의 주변을 이리저리 맴도는 것도, 말만 없다 뿐이지 리틀 곽지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실상 정수는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는 했다. 그리고 정수를 안전하게 지석의 아지트로 안내한 다음에 그 의기양양해 보이는 포즈까지. 지석의 어린 시절은 혹시나 이러했나, 하는 착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석의 바람대로 정수는 얌전히 아지트에서 지석을 기다렸다. 바온은 아지트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정수가 씻고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밥을 챙겨먹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마지막으로 팔에 약을 바르고 침대에 몸을 누인 정수가 '혹시 이거 지금 다 곽지석한테 보고 들어가는 중이야?' 하고 묻자 그 순간 바온이 이리저리 폴짝거리기 시작했다. 아마 바온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거겠지만 어째 폴짝이며 뛰어다니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맞는 이야기인 듯 했다. 결국 이리저리 휘날리는 모래 먼지에 정수의 손이 알았다며 바온의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바온이 잠잠해진 건 그 뒤였다.


 정수는 그렇게 지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사람이 이기적인 데에는 끝이 없다고 자신을 구해준 지석이 돌아오지도 않았음에도 긴장이 풀리고 등과 배가 따듯하니 어쩔 수 없이 몰려드는 졸음에 항복했다.


 그러던 정수가 눈을 뜬 건 새벽이었다. 주변이 시끄러웠다. 분명 보수를 다 해주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얇은 문이 시끄럽게 흔들리고 밖에서 부는 바람 소리가 소란스럽다 못해 야만스럽게 들리던 새벽이었다. 단순한 바람 때문이 아니라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정수의 눈이 번뜩 뜨였다. 급하게 허리를 일으키고 어둠 속에서 두어 번 눈을 깜빡이자 흐릿한 시야 앞에 천천히 누군가의 잔상이 맺혔다. 


 이름을 부르기도 전이었다. 단박에 정수에게 달려든 조그마한 몸이 품 안으로 들어찬다. 이 사막의 밤만큼 싸늘하게 식은 몸, 지쳐 헐떡거리는 숨과 축축 늘어지는 몸, 그리고 

 


 "...너 이거 뭐야."

 "흐으... 정수..."

 "너 이 피 이거 뭐냐고!!!"


 

 옆구리에서 뜨끈하게 흘러나오는 게 무엇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놀라 소리친 호통에 지석은 그저 웃기만 했다. 속이 답답하게 타오다 못해 머리의 꼭대기까지 도달한다. 급하게 지석을 침대 위로 눕힌 정수가 초를 찾아 불을 켰다. 분명 잠에 들기 전까지만 해도 제 한뼘 정도는 남아있던 초는 이제 손가락 서너 마디 정도가 남아있었다. 마음이 절로 급해졌다. 다행히 장기까지 다친 것 같지는 않기에 구호 물품 사이에서 의약품을 찾고 임시로 찢어진 살을 붙이는 키트를 지석의 옆구리에 갖다 붙였다. 


 아파, 나 아파, 정수 좀만 살살...


 지석은 이 와중에도 온갖 엄살을 다 부려댔다. 키트를 붙이고 그 위에 말라붙은 피들을 닦고 상처 위로 붕대를 감는 끝까지 고통을 참을 생각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아프면 아프다고 울고 힘들면 힘들다고 울어 재끼는 게 지석이 하는 일이었다. 


 그런 지석이 잠잠해진 건 마지막으로 붕대를 감고 정수가 가이딩을 시전할 때쯤이었다. 상처 주위를 건드리지 않으니 더 이상 아파하지 않는 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수가 지석의 옆구리에 손을 대었다. 좁은 흉통이 움찔거렸지만 정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우선은 지석도 센티넬이니까. 미약한 제 가이딩 능력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살과 맞닿은 손바닥에서 서투른 가이딩이 퍼져나간다. 제 몸 안으로 흘러드는 정수의 기운을 느낀 지석이 잠시 감았던 눈을 뜬다. 

 


 "정수...."

 "응?"

 "...그런거 하지 말고..."

 


 그냥 안아 줘.


 한숨을 닮은 말이 가까스로 지석의 입술을 넘는다. 그리고 말없이 바라보는 정수의 팔뚝을 움켜쥔다. 아까 정수를 밀어낼 때와 달리 힘이 다 빠진 손가락이 느껴졌다. 정수는 잠시 고민했다. 술이 아닌 상처도 미워해야 하나. 멋모르고 흘러넘치는 괴로움을 감당하겠다는 그런 오만을 저질러도 되는 건가. 그것보다 내가 누군가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건실한 사람이었나. 손끝이 머뭇거렸다. 하지만 김정수는 그 울망한 눈동자를 거절하는 방법 따위는 알지 못했다. 눈동자 안에 다 담기지 못한 눈물이 차올라 흘러내리기도 전이었다. 있는 힘껏 지석의 상체를 들어 올린 정수가 그 애의 바램대로 그 작은 몸을 꽉 끌어안았다.


 얇은 티셔츠 사이로 맞닿은 가슴팍에서 작게 뛰는 심장박동 소리가 느껴졌다. 죽지 않고 이 사막을 살아온 지석의 심장은 그렇게 뛰고 있었다. 정수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 오랜 고독과 외로움을 견디며 버텨온 지석에게는 필요했던 건 가이딩이 아닌 누군가의 품이었던 것을. 

 



 

 "...아까 말이야..."

 "...응?"

 "...내가 온 걸 어떻게 알았어?"


 

 한참을 지석을 안아주던 정수가 침대에 빈자리에 몸을 누이며 물었다. 정수의 멀쩡한 팔을 목 밑에 넣고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지석의 숨이 옅었다. 누군가 정수에게 일부러 지석이 이렇게 비몽사몽인 상황에 묻는 것이냐고 질문한다면, 정수는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서로가 풀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제 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을 토해내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이었다. 정수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았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라 그러한 이유도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면 지석에게서 파수꾼이든 무엇이든 제가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솔직히 조금은 이상하잖아. 또 찾으러 온다고 했다가 정말로 나를 찾아오는 건. 하지만 정수의 예상과 달리 지석은 푸스스 웃으며 대답한다. 

 


 "...정수가 온 걸 어떻게 몰라."


 

 정수는 언제나 결론만 말하는 게 이 7구역 사람들의 특징인가 싶었다. 그게 아니면 지석이 건일의 말투를 고대로 배웠거나. 둘 중 무엇이든 정수에게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지석은 그 말로도 충분히 대답이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거리낌 없이 정수의 품을 파고들어 잠을 청했다.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꿈에 빠진 것 같은 지석의 얼굴에 정수는 감히 지석을 흔들어 깨워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래, 이렇게 곤히 자는 지석의 앞에서 이제 와서 네가 나를 어떻게 찾았는지, 그 방법을 알아내는 게 무슨 소용인가도 싶었다. 네 말대로 나는 또 이 사막에 당도했으며 너는 나를 찾아냈고 우리는 또 서로를 만났다. 그거면 된 게 아닌가 싶었다. 또 다음이 있다는 게. 더 이상 죽음만 바라보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게.


 잠에 든 지석을 바라보는 정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퍼진다. 얇은 이불이 정수의 몸에서 지석에게로 옮겨가고 난로가 꺼진 그 새벽에도 아지트는 그다지 시리지 않았다. 


 

 

 팔의 통증도 줄어들었지만 정수는 쉽게 센터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건 지석이 돌아온 새벽부터 거세진 모래폭풍 때문이었다. 어느 때보다 거세진 바람에 정수는 복귀를 망설였다. 사막에 대해 익숙한 지석도 웬만하면 지금은 떠나지 않는 게 좋다는 말로 정수를 붙들었다. 하염없이 문지방 너머를 바라보며 바람의 세기를 가늠하던 정수가 결국 얇은 문을 닫았다.


 정수는 그 며칠을 또 지석의 곁에 머물렀다. 대부분은 지석의 병수발을 들며 시간을 보냈다. 정수는 팔에 저릿한 감각이 남아있기는 했다만 크게 외상은 없었고 지석은 여전히 옆구리에 구멍이 난 채였기 때문이었다. 지석은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앉아서 보냈다. 그런 지석을 위해서 정수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지석의 앞에 대령하고 심심하고 답답하다는 지석을 업고 폭풍과 해가 질 무렵 아지트 밖을 다녀오기도 했다.


 폭풍은 야속하게도 해가 지고나면 그쳤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다시 거세지기를 반복한 게 벌써 사흘째가 되던 무렵이었다. 어김없이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방 안에 지석은 없었다. 정수는 더 이상 이전처럼 조급해하거나 애닳아하지 않았다. 익숙하게 신발을 신고 뚜벅이는 걸음으로 아지트의 밖으로 나서면 지석이 언제나처럼 아지트를 등지고 앉아 푸른 밤하늘에 뜬 별들을 감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해가 지고 폭풍이 잦아들자 지석은 밖으로 나와 사막의 밤하늘을 구경하고 있었다. 벌써 맥주를 깠는지 이미 한 캔이 지석의 옆에 쓰러져 있었고 다른 하나만이 모래 속에 파묻혀 있었다. 평소와 달리 정수는 그날만큼은 지석을 따라 아지트의 밖으로 나왔다.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지석이 고개를 돌리고 정수임을 확인하지 큰 눈을 휘어지게 접으며 웃는다. 정수의 바지를 붙잡고 제 옆을 두들기는 손길에 정수가 망설임 없이 차갑게 식은 모래 위로 제 엉덩이를 붙이며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다쳤는데 술은 좀 아니지 않냐."

 "여기서 이것도 안 마시면,"

 "어떻게 사냐고?"

 


 익숙한 대사라는 듯 정수가 지석의 뒷말을 대신한다. 그리고 남은 지석의 캔맥주를 비워버렸다. 얼마 남지 않은 맥주는 시원하지도, 그렇다고 어딘가 탁, 터지는 맛이 있지도 않았다. 그저 쓰고 텁텁한 맛에 혀가 아린데 지석은 이걸 잘도 먹어댔다. 순식간에 비워지고 구겨지는 캔이 모랫바닥을 나뒹굴고 눈뜨고 제 맥주를 다 뺏긴 지석은 뭐가 좋다고 깔깔 웃어댔다. 마른 손뼉을 치며 웃던 지석의 머리가 가볍게 정수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포슬포슬한 머리카락이 정수의 뺨을 간지럽혔다. 


 

 "정수, 술 안 먹는 거 아니었어?"

 "그렇긴 한데, 내가 안 마시면 네가 마실거니까."


 

 정수는 그렇게 말하며 지석을 제 옆으로 조금 더 끌어당겼다. 허리께에 달라붙은 손 아래로 아직은 풀어내지 않은 붕대가 만져졌다. 터진 옆구리가 이제는 제법 아물어 이전처럼 움직임이 일 때마다 피가 터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정수는 늘 지석에게 조심하라고 일렀다. 쪼그려 앉지 말거나, 삐딱하게 앉지 말거나, 술을 마시지 말라는 이야기였지만 그중에 지석이 제대로 들은 말이라고는 단 하나도 있지 않았다.


 미안함을 아는지 지석이 눈이 저 멀고도 먼 하늘로 향한다. 아직 완전히 오지 않은 저녁 하늘은 까맣기 전의 푸름으로 물들어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비치는 손톱보다 작은 저녁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지석의 눈이 유난히 투명하게 반짝였고, 정수는 그런 지석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예쁘지."


 

 나 이거 보는 거 엄청 좋아해. 지석이 말한다. 자신의 특별한 취미를 공개하는 것 같은 말투에 정수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저녁 바람이 헝클고 간 지석의 머리를 한번 매만진 정수가 지석의 허리를 조금 더 끌어안았다. 바람이 차가웠다. 

 


 "그런 것 같았어."

 "알고 있었지?"

 


 그걸 어떻게 모를까. 몰래 너를 봤다고 고백해도 괜찮으려나. 그걸 알기에 이 밤에라도 모래폭풍이 멈추는게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내 마음을 네가 알아도 괜찮은 걸까. 잠시 망설였지만 이상하게 입이 잘 떼어지지가 않았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그 시선 앞에서 자꾸만 모든 게 부끄러워졌다. 깊게 마주친 눈동자가 별을 바라볼 때보다 까맣고 깊었다. 김정수는 그 크고 둥그런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 그만 대답을 잊었더라. 답을 기다리다 지친 지석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몇 년을 봐도 안 질리는 것 같아."


 

 지석의 말에 이번엔 정수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정수의 생각이 맞았다. 언제부터였는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지석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살아왔던 거다. 별이 뜨고 달이 지는 시간을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내일 아침 또 다른 태양이 이 대지를 불태우더라도 차갑게 식어버린 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이 무수한 별들을 기억하면서 또 홀로 이 사막을 견뎌냈던 거다. 


 가슴께가 답답했다. 경계가 허물어져 버린 시점에서 넘어오는 감정들은 멋대로 서로를 물들였다. 마음은 왜 그럴까. 왜 서로가 편안할 때가 아니라 그렇게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하늘과 빛 한 점 없는 땅에서 피어날까. 왜 이렇게 질기게 태어나고 피어나 우리를 얽매려 할까. 정수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꺼이 지석에게 물었다.


 

 "힘들지 않아? 혼자 있는 거. "

 "... 좀? 처음에는 힘들었지. 그래도 이제는 적응해서 괜찮아."


 

 거짓말이다. 그런 사람이 매일 밤 술을 마시고 바온이라는 모래 유령까지 만들어냈나. 정수는 지석이 이따금 불러내던 그 바온이라는 모래 유령을 떠올렸다. 한번 정수에게 유령을 보여준 이후로 지석은 몇 번이고 바온을 불러내 제 펫처럼 부리고는 했는데 지석의 피조물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바온은 지석의 말을 아주 잘 따랐다. 지석의 앞에서 재롱을 부리기도 했고 지석과 정수를 돕겠다며 좁은 방안을 이리저리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또 다른 인격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정수는 지석의 바람이 투영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정수는 그 작은 모래 유령을 보고 지석의 기나긴 외로움을 상기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이렇게 자신을 대해주길 바라는 그런 외로움에 사람이 적응했을 리가 없었다. 지석은 아마도 그저 버티고 있는 것이리라. 정수는 그렇게 여겼다. 


 

 "...정수는 돌아가고 싶어?"


 

 이번에는 지석이 물었다. 지석의 질문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정수가 생각하기에 본인은 지석에게 특이한 사람도, 궁금한 사람도 아니기에.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모두 지석에게 전했기에 더 이상 자신이 베풀어야 하는 정보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돌아가고 싶냐는 지석의 질문에 정수는 많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 대답했다. 


 

 "...그게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

 "그래도 가야 하지 않을까."


 

 정수가 제 어깨에 머리를 내려둔 지석을 지그시 내려보았다. 정면을 바라보는 지석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지석은 수긍하는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수에게 제 몸을 조금 더 기대 왔다. 취했으면 들어가서 자라는 정수의 말에도 고개를 저은 지석은 조금만 더, 라는 말로 정수를 붙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늘려 이어 붙인 시간은 밤이 제법 더 깊어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꾸벅거리던 지석의 고개가 완전히 정수의 품 안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정수가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혹시라도 지석이 깰까, 정수는 모든 몸짓에 숨을 죽였다. 가벼운 몸을 어렵지 않게 안아 들고 살금거리며 옮긴 발걸음이 침대로 향한다. 잠이 든 지석을 침대위 로 누이고 자리를 잡아주고 나서야 자신이 그다음이었다. 


 정수의 몸이 침대의 빈자리를 메꾼다. 며칠을 함께 지냈다고 이제는 이 좁은 침대에 함께 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정수가 지석의 작은 머리통을 제 팔 위로 옮기고 마른 어깨를 끌어안았다. 지석은 잠에 든 와중에도 꼭 제자리를 찾는 것 마냥 정수의 품을 파고들어 허리께를 붙든다. 허리 위로 둘러지는 그 마른 팔이 싫지 않아서, 정수는 오히려 지석의 팔이 제 몸을 감싸도록 내버려둔 채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지석은 또다시 새벽 별을 보기 위해 깨지 않았다.

 




 다음 날은 드디어 모래폭풍이 그쳤다. 변하지 않을 듯한 날씨에 정수는 빠르게 제 짐을 챙겼다. 이미 귀환 할 시기가 한참이나 지났으니 센터에서도 저를 찾고 있을 터였다. 하루만 더 머무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을 줄 알았던 표정과 달리 지석은 순순히 정수를 배웅했다. 잠에 취했는지 작은 가방 안을 구호 물품으로 꽉꽉 채워 넘기는 지석에게 이렇게 많이 넣으면 너는 어떻게 하느냐며 다시 가방을 비웠더니 안에 내용물이 배로 돌아왔다. 결국 제풀에 지친 정수가 딱 제가 필요한 만큼의 물건만을 챙겨 아지트의 밖으로 나섰다. 


 잠이 덜 깬 지석이 정수를 쫄래쫄래 따라 나온다. 아직 씻지 않아 머리가 산발이고 제대로 챙겨입은 옷 대신 이불을 달랑 두르고 나온 지석은 태양 빛 아래에서 기어코 눈살을 찌푸렸다. 사정없이 구겨지는 얼굴과 통통하게 부은 입술이 제법 귀여워 보여 정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석은 정수가 웃는 이유를 영원히 모를 듯 했다. 거울조차 없는 이 아지트에서 지석이 아침에 일어나 퉁퉁 부은 자신의 얼굴은 아마 지석 스스로가 볼 수 없을 테니.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정수가 지석을 이불째로 끌어안았다. 얌전히 정수의 품에 안겨든 지석은 여전히 햇살이 따가운지 제 얼굴을 정수의 가슴팍 안으로 묻었다.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작아 잘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 비슷한 맥락의 말이 아닐까 싶었다. 밤새 정수의 팔과 이불에 비벼져 부시시해진 머리카락에 괜히 제 입술을 부비던 정수가 지석에게서 살짝 멀어지며 입을 떼었다. 


 

 "또 올게."

 "...정수, 이제는 조난당하는 게 취미기라도 해?"

 "아니, 지금 내 말이 그 말이 아니잖냐, 지석아."

 "아 알아, 안다고."


 

 지석이 웃음을 터트린다. 제대로 떠지지도 않은 눈으로 한참을 웃던 지석은 드디어 정수를 보내주기로 결심했는지 제 손을 허공에서 한번 휘저었다. 저 손짓의 의미는 이제 알고 있었다. 머지않아 지석의 옆에 무릎 높이까지 오는 모래 유령, 바온이 다시 만들어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바온이 정수의 다리를 붙들고 늘어지고 지석과 정수의 주변을 맴돈다. 안녕, 하는 인사에는 조그마한 손을 꺼내 흔드는 바온을 바라보던 정수가 다시금 지석에게 눈을 돌렸다. 지석이 턱짓으로 바온을 가리켰다. 


 

 "바온이가 데려다줄거야. 사막에는 길이라는 게 딱히 없으니까."

 "응."

 "멀리 못 나가서 미안해."

 "너가 뭐가 미안해. 대신 얘가 오잖아. 너는 빨리 낫기나 해."


 

 그러면 나 간다. 간단한 인사를 뒤로하고 정수가 등을 돌렸다. 바온은 제가 앞장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폴짝이며 정수의 앞을 치고 나갔다. 그렇게 지석에게서 멀어지던 찰나였다. 


 

 "정수."

 


 지석이 또다시 정수를 불러세웠다. 너무 멀지 않게 멀어진 거리. 정수의 왼쪽 눈으로도 아직 지석이 또렷이 보이는 거리였다. 그 짧은 사이에 홀로 남은 지석을 보니 또 가슴께가 울컥였다. 꼭 오늘 센터로 돌아가야 할까. 하루만 더 있다가 갈까.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망설임이 일었다. 그리고 그런 정수의 마음이 새어나오기 전에 지석은 정수를 불러세운 제 마음을 번복했다. 

 


 "아냐, 얼른 가."


 

 고개를 가로저은 지석이 아지트 안으로 사라진다. 미련 없이 사라지는 뒷모습에 한동안 아지트의 문을 바라보던 정수는 바온이 제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나서야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정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점점 멀어지는 지석의 아지트가 이 밝은 태양 아래에서도 차가워 보였다. 

 

 



 바온의 길 안내에 따라 정수는 차근차근 사막을 헤쳐나갔다. 지석을 닮아 이 사막에 대해 빠삭한지 바온은 거침없이 정수를 이끌었다. 그 덕에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정수는 바온에게 이제 지석에게 가보라고 했지만 바온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정수가 차를 타고 떠나는 것까지 지켜보는 게 바온의 임무인 듯 했다. 


 차량이 도착한 건 그다음 날 아침이었다. 준비해 둔 침낭에서 잠을 자고 아침이 되었을 때 바온이 잠에 든 정수의 몸을 흔들었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트럭은 누가 보더라도 제7구역으로 향하는 트럭이었다. 그걸 확인하자 정수의 행동이 빨라졌다. 침낭을 정리하고 빠르게 짐을 챙긴 정수가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켜봐 준 바온에게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지석이한테도 고맙다고 전해줘."

 


 별것 아닌 인사에도 바온은 또 정수의 주변을 맴돌며 폴짝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자신의 몸속에서 작은 종이쪽지를 꺼내 정수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내 거야?"

 


 정수가 바온에게서 여러 번 접힌 종이쪽지를 받아 들었다. 단순히 종이쪽지라기에는 무게가 살짝 있었지만 대답을 줄 이는 없었다. 어느새 다가온 트럭은 정수를 향해 클락션을 울리고 있었고 자신의 진짜 마지막 임무를 마친 바온은 이미 저 모래 바람에 흩날려 사라진 뒤였다. 


 쪽지를 열어본 건 트럭 안에서였다. 아마도 지석이 보냈겠지만 무슨 내용이 적혀 있길래 자신에게 직접 주지 않고 바온을 통했는지가 가장 큰 의문이었다. 정수의 손이 살며시 쪽지를 풀어낸다. 그렇게 풀어낸 쪽지 안에는 구슬이 달린 목걸이가 들어있었고 그 목걸이를 감싼 글귀는 짧았다. 

 

 

 

내 힘을 담아 만들었어

그러니까 다음 번엔 정수가 날 찾아 와

 

 

 

 단 두 줄의 메세지를 정수는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이런 걸 준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힘을 담았다는 목걸이는 지석을 닮은 은은한 노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정수는 거리낌 없이 그 목걸이를 제 목에 걸고 끄트머리에 달린 구슬을 매만져 보았다.


 자신의 힘을 담았고, 다음번에는 자신을 찾아오라는 걸 보면 이 목걸이의 사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사용법은 알려주지 않은 지석이 얄궃다가도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알아서 생각하라는 뜻이든, 닥치면 알게 될 거라는 뜻이든 무엇이든 좋았다. 정수는 그렇게 한없이 제 손안에 구슬을 매만졌다. 사막이 따듯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이상하게 지석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김정수는 그렇게 센터로 복귀했다. 꼬박 일주일 만의 일이었다. 정수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정수를 찾은 것은 다름 아닌 주연이었다. 지난번에 한 번 안면을 튼 일로 제법 정이 붙었는지 주연은 밥을 먹거나 훈련장에서 만날 때마다 정수에게 친한 척을 해오기가 일쑤였다. 아마 사고를 치고 7구역으로 쫓겨난 제게 별다른 훈수를 두지 않아서 제가 편한 듯 싶었는데 그런 붙임성이 싫지는 않았다. 


 

 "와, 나 형 지-짜로 죽은줄 알았는딩."

 


 이럴 때를 제외하면. 반가움을 느끼는 게 어떻게 1초를 가지가 않았다. 늦은 귀환에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고 적당히 빵으로 배를 채우는 정수 앞에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 저 모양이었다. 급격하게 몰려오는 피곤에 적당한 핑계로 주연을 피하려 했지만 퇴로는 없었다. 곧이어 정수를 찾아온 승민과 형준 때문이었다. 게다가 같은 가이드인 승민은 정수를 꽤나 걱정했는지 정수를 보자마자 피로회복제를 내밀며 물었다. 


 

 "근데 왜 이렇게 복귀가 늦었어요? 다들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는데."

 "마자. 선발대로 나간 애들이 애당초 큰 건도 아니라 하든디."


 

 주연이 정수의 빵조각을 뺏어 먹으며 대꾸한다. 정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을 해도 괜찮은지를 잠시 고민했다. 사실 일이 어렵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하지만 집채만 한 괴수를 만났다가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는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지석이 7구역의 소속인 건 확실하지만 왜 7구역의 사람들과 교류가 없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지석에 대해서 떠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최대한 지석에 관한 것은 말하지 않는 쪽으로 내용을 갈무리한 정수가 곧이어 입을 열었다.


 

 "아니 일은 괜찮았는데, 날씨가 문제였지. 무슨 모래폭풍이 사흘 내도록 몰아치는데 내가 거기서 어떻게 움직이냐."

 


 정수는 제가 사라졌던 일주일을 그렇게 축약했다. 그래서 사흘을 그렇게 숨어 있다가 정류장에서 물자 트럭을 타고 왔다는 말에 정수는 이만하면 자연스럽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와 달리 셋의 표정은 무언가 서늘했다. 그러던 중 먼저 입을 뗀 건 승민의 옆에 가만히 있던 형준이었다. 형준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힘이 들어가 있었다. 

 


 "...무슨 소리에요... 기상 예보에 모래폭풍이 있다는 얘기 같은 건 없었는데."

 "...맞아. 최근에 7구역 사막에 그런 건 없었는데, 형 뭐 꿈꾼 거 아니에요?"

 "에잉, 이 형 어디서 농땡이 피다 왔네. 딱 걸렸으."

 


 형준의 의심을 시작으로 주연이 최종 낙인을 찍는다. 갑자기 쏟아지는 반문에 당황한 건 정수였다. 그 사막에 있다가 온건 다름 아닌 정수 자신이었다. 그 폭풍 속에 발이 묶였던 것도, 그 먼 사막을 건너온 것도 다름아닌 자신이었는데. 오히려 자신을 거짓말쟁이 취급하는 동생들의 발언에 정수가 황당하다는 듯 셋을 훑어내렸다. 

 


 "...너네야 말로 무슨 소리야, 사막에서 아침만 되면 모래폭풍이 계속,"


 

 있을 수 있나. 그것도 낮에만. 그 순간 정수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번뜩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온다는 사전 고지도 없었을 텐데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찾아온 지석, 자신이 모르는 사막은 없다고 장담하던 지석, 매일 아침 불던 모래폭풍이 지석이 별을 바라보는 밤이 되면 잦아들었던 것, 그 모래폭풍이 정수가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고 말한 다음 날 거짓말같이 멈췄던 것. 어딘가 기묘했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넘겼던 이상 징후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던 것들, 설마 하며 덮어두었던 모든 의심이 한군데로 향했다.

 


 '정수는 내가 모르는 사막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또 보자고 했잖아. 또 오라고. 내가 또 데리러 온다고.'

 '...그런거 하지 말고... 그냥 안아줘.'

 '...정수가 온 걸 어떻게 몰라.'

 '...정수는 돌아가고 싶어?'

 


내 힘을 담아 만들었어

 

다음 번엔

 

정수가 날 찾아와

 

 

 머릿속에서 지석의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그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정수가 인사도 없이 휴게실을 뛰쳐나간다. 앉아 있던 의자가 나뒹굴고 등 뒤에서 어디를 가냐고 소리치는 승민과 주연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지난 기상 데이터의 체크가 끝나기가 무섭게 또다시 정수는 달렸다. 두 다리가 아프고 대문을 넘어가는 동안 무슨 일이냐는 질문과 이대로 나가면 안 된다는 협박을 무수히도 받았지만, 지석에게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아니,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었다. 

 


 

 

 사막의 밤은 매서웠다. 그건 단순히 추위만을 가지고 논할 문제가 아니었다. 


 빛이 사라진 사막은 그 어떤 때보다 정수의 방향감각을 잃게 만들었다.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제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발밑에 무엇이 있는지, 제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채 그저 캄캄한 어둠 속을 헤메기만 하는 것 같았다. 어느샌가 모래 속으로 푹푹 꺼지는 발걸음이 느려졌다. 더 이상 자신을 찾으러 오는 이들도 없었다. 추위에 손과 발 끝이 얼어가고 점점 거세진 모래 바람은 폭풍처럼 또다시 이 사막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멈출 수는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저지하듯 몰아치는 바람에도 정수는 꿋꿋하게 발을 옮겼다. 제 목에서 희미하게 뿜어져 나오는 목걸이의 빛을 믿고 그렇게 조금씩 발을 움직였다. 바람에 휩쓸린 모래가 얼굴을 쓸고 지나가고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아도 견뎠다. 이건 어떠한 믿음이기도 했다. 제가 아니더라도 지석은 반드시 자신을 찾아올 터였다. 자신이 어디에 있든, 어떤 사막에 있든, 지석이 자신을 찾아오리라는 굳건한 믿음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뻗은 건 피로가 누적된 정수의 몸이었다. 분명 내디뎠다고 생각했던 발이 그대로 모래 속에 묶여버렸다. 추진력을 잃은 몸이 고꾸라지고 그대로 모래속에 얼굴을 처박기 직전이었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모래가 정수의 몸을 받친다. 온몸을 후려치는 것 같던 바람도 멈춘다. 두 발을 옭아매던 모래들도 사라지고 가까스로 뜬 눈앞에는 익숙한 워커를 신은 발이 있었다. 김정수를 집어삼키는 모래를 겁도 없이 딛고 서 있는 두툼한 워커와 온통 새카만 옷차림. 그럼에도 사막의 모래보다 빛나는 화려한 금발과 희고 예쁘장한 얼굴, 그리고 김정수를 향해 어딘가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의,


 

 "정수 바보야?! 왜 그렇게 미련하게..! 바람이 심하면 돌아가야지, 여기까지 이렇게 나올 게 아니라 센터에 있을 생각을 해야지, 사막의 밤이 얼마나 위험한데 여기를...!"

 


 지석이다. 늘 제 죽음보다 먼저 앞서 도착해 있던 지석이다. 찰나의 의심마저 확신이 되어버리는 지석의 등장에 정수의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터졌다. 헐떡이는 숨을 가까스로 진정시킨 정수가 고개를 들어 지석을 바라보았다. 

 


 "...이것 봐."

 "...뭐, 뭘 보라고..." 

 "...역시 너잖아. 이 폭풍도."

 "......"

 


 언제 보아도 예쁜 두 눈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정수는 지석이 자신을 구하러 이곳에 온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아냈고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지석은 늘 이렇게 정수를 구해냈으며 앞으로도 이럴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사막에서 지석의 손 밖인 곳은 없었다. 어쩌면 제 선택으로 영원히 지석에게 미움을 받게 될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정수는 기꺼이 입을 열었다. 


 

 "네가 다쳐서 돌아왔던 날, 그날 센터의 기상예보에는 제7구역에 모래폭풍이 온다는 예보는 없었어. 내가 돌아갔던 그날까지."

 "......"

 "...네가 그런 거지. 날 묶어두려고."

 


 지석의 표정이 얼어붙는다. 제 모든 것이 들통난 사람처럼 차갑게 얼어붙은 지석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두 주먹을 여러 번 쥐었다 피고 입술을 씹던 지석의 어깨가 처졌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다 판단 했는지 고개를 푹 숙인 지석이 힘겹게 정수와 눈을 맞추었다.

 


 "...그래서?"

 "......"

 "이제 와서 나한테 왜 그랬냐고 물어보려고 왔어?"


 

 울음 섞인 목소리가 떨려온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지석의 목소리에 정수가 제 몸을 일으켰다. 지석은 겁을 먹은 것처럼 정수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늦은 밤 홀로 별을 바라보던 너조차도 그대로 둘 수 없던 나다. 그런 내가 온몸을 떨며 울고 있는 너를 어떻게 그냥 둘까. 


 조금씩 서로의 거리가 좁혀진다. 다가오지 말라는 울음소리가 멈추고 어느새 정수의 품에 안긴 지석은 그 어떤 밀어냄도 없었다. 오히려 정수의 등을 더듬으며 제 얼굴을 정수의 어깨 위로 묻은 지석은 한참을 그렇게 울다 물었다. 

 


 "왜, 왜 안아주는데, 왜 그러는데. 날 몇 번이나 봤다고 나한테 이러는데. 정수는 날 감당 할 수 있어? 정수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한테 왜...!"

 


 사실상의 의심이었다. 하지만 정수는 그런 의심이 불편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외로웠기에. 너무나도 긴 시간을 홀로 있었기에. 사랑받고 싶음에도 타인을 먼저 의심하는 그 마음마저 김정수의 눈에는 사랑스러워 보였다.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지석을 정수가 잠시 품에서 떼어낸다. 그리고 눈물로 흠뻑 젖은 지석의 얼굴을 제 손으로 살살 닦아 내었다. 

 


 "아니."

 "......"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서 온 거야."

 "......"

 "네가 무슨 센티넬이든, 무슨 파수꾼이든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네 능력이 정확히 뭔지, 왜 이 사막에 너 혼자 있는지, 그날 건일이 형이랑 네가 했던 일이 뭔지, 네 비밀이 뭔지 이제 더 생각 안 할 거야. 나는 그냥,"

 "......"

 "그냥 네가 좋아."

 


 지석아, 너는 알까. 수도 없이 내 품을 찾던 너의 그 지난 밤들을. 그렇게 안겨 오던 너를 안고 밤을 지새우던 나의 그 긴 새벽을. 네가 가진 것들을 외면하고 내가 했던 후회들을, 내가 떠나고 또 그 사막의 고독을 마주했을 네가 떠올라서 심장이 두근거렸던 나를. 너를 만나고 싶어 매일 이 사막을 바라보던 나의 시간을. 파수꾼이라는 네가 지켜야 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더 이상 가늠할 수 없지만, 너의 깊은 외로움을 내가 다 채울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나는 나 하나로도 버거운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함께 있고 싶다는 내 마음을. 지석아, 너는 과연 알까. 


 지석이 운다. 울음을 그치라고 아무리 눈가를 닦아주어도 그 큰 눈으로 지석은 하염없이 울었다. 어린아이같이 한참을 엉엉 울던 지석이 정신을 차린 건 조금 나중에서였다. 정수의 옷자락을 쥐고 킁, 하며 제 코까지 풀어낸 지석이 여전히 빨간 눈가로 정수를 올려다보았다. 


 

 "...취소할래. 정수 같은 사람은 많이 봤다는 말."

 "......"

 "내가 이 사막에서 구해준 사람 중에 처음이야. 그렇게 도망치지 않은 사람도, 아지트에 데려갔던 사람도, 그리고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다시 만난 사람도.

 

 더 이상의 대답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지석의 발뒤꿈치가 들리기 전 정수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서로의 입술이 겹쳐진다. 말랑 입술의 감촉과 함께 울고 있는 지석이 느껴졌다.


 너는 무엇이 그렇게 서럽고 애달팠는지 그 밤하늘 아래에서 입을 맞추는 내도록 울었다. 겨우 입술을 떼어내고 너무 울어 부어버린 눈을 보고 한참을 웃고, 놀리지 말라는 말에도 너를 놀리다 부딪겨 오는 몸에 중심을 잃고 서로 함께 모래 위로 엎어지며 또다시 입술을 마주 대었었다. 


 그러네. 그렇게 너와 처음 입을 맞추던 곳은 사막에서였다. 이런 차디찬 얼음의 설원이 아닌,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을 품은 차가운 사막의 한가운데서였다. 사랑은 그런 곳에서도 피어났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하늘 아래에서도, 빛 하나 들지 않는 땅 위에서도 너를 통해 피어났다. 네 모든 것을 감당하겠느냐는 질문이 이 더 이상 소용이 없을 만큼. 너를 위해서라면 그 먼 사막을 몇 번이고 건널 수 있을 만큼. 김정수는 그렇게 곽지석을 사랑했다. 


 


 긴 상념에 잠겼던 정수가 눈을 떴다. 여전히 트럭의 수리로 말썽인지 나무 밑에서 들리는 승민과 주연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내용을 자세히 듣지 않아도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고 생각하는 주연의 성량에 따라 승민도 목청을 키웠을 게 분명했다. 가야 할 길이 먼데, 저대로 두면 또 하루 종일을 싸우겠지. 그렇게 생각한 정수가 나무의 아래로 빠르게 내려갔다. 소복하게 눈이 쌓인 땅 위로 가볍게 착지한 정수의 목에서는, 여전히 구슬 없는 목걸이가 달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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