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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가 되는 방법

말차

곽지석은 억울했다. 누구보다 정상적인 성생활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아, 아니지. 비정상적이긴 했나? 곽지석은 섹스 같은 거... 솔직히 관심 없었다. 스킨십에 거부감이 드는 건 아니었다. 그냥 정말 거기까진 굳이의 느낌. 그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으니까. 키스하고 안고 자는 거. 그 정도로도 사랑을 느끼기엔 충분했으니까.

그렇다고 이게 싫다는 건 아니고. 김정수가 제 앞을 매만질 때 마다 처음 느껴보는 강도의 쾌감은 곽지석을 미치게 했다. 조금만 건드려도 처음이라 아파하는 걸 보고 김정수는 그게 아픈 게 아니라 좋은 거라고 했다. 결국 곽지석이 좋다는 말을 할 때까지. 그리고 정말 나중에 가서는 고통 없는 쾌감만 남았다. 이게 학습인 건가. 세뇌? 가스라이팅? 곽지석은 생각했다. 김정수가 자기를 망가트렸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일부러 맞고 싶어서 억지를 부리고 있을 리가 없다.


김정수는 혼난다는 말을 정말 자주 했다. 장난식이긴 했지만. 리액션 좋은 곽지석은 김정수가 제 볼 잡고 억지로 눈 맞추며 대답 종용할 때 마다 금방 꼬리 내리고 말 높였다. 그게 귀엽다며 턱 긁어주는 게 곽지석도 좋았다. 그게 둘에게는 익숙한 패턴 같은 거였다. 서로 대화하고 눈치보고 당하는 거. 다른 사람은 안 그러고 산다는 걸 곽지석은 몰랐다.


"...진짜 형이 그거 같다고?"

"어. 넌 못 느꼈어?"

"아니 뭐... 정수는 나 때리고 그런 거 안 좋아하는데?"

"때리는 거 말고, 이상한 점 없었어?"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너가 뭘 할 때 마다 허락 받게 만든다든지. 이건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럼 어디 가는데 허락 안 받아? -물론 사정할 때조차 울고불고 놔달라고 빌었다- 사소한 거 하나까지 알고 싶어한다든지. 음 밥 먹는 거 맨날 사진으로 보내긴 하는데... -안 보내면 굳이 물어본다- 계속 칭찬해서 자기 말 듣게 만든다든지. 정수는 원래 내 칭찬 많이 하긴 해. 턱 긁어주고 머리 쓰다듬어주고... 뭐만 해도 잘했다고 띄워주고 웃어주고. 형이 너 우는 거 좋아하지 않아? 나도 정수 울면 귀여워하긴 하는데... -이 대목에서 형준은 둘 다 제정신이 아님을 감지했다- 정수가 나 울 때까지 하긴 하는데... -이거까지 궁금했던 건 정말 아니었다-

...이게 이상한 건가?


"그래서 머리도 그렇게 바꿨어?"

"응. 정수가 갈색이 예쁘대."

"옷도 원래 그렇게 안 입었잖아."

"이건... 나보다 정수가 옷을 잘 입으니까."

"내 생각엔 너가 섭인 거 같은데."


섭은 또 뭐야... 너무 어려워. 한형준은 당장 검색 들어가는 곽지석을 보고 고민했다. 어쩌면 김정수가 아니라 곽지석이 길들인 건 아닐까 하고. 성인인증까지 야무지게 해서 BDSM 용어 사전 정독하고 있는 곽지석은 머리가 조금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읽어도 이렇게 무서운 거랑 정수는 관련 없어보이는데. 그리고 나도. 근데 한형준이 없는 말 지어내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애는 아니었다. 혼란스럽다. 혼란스러워. 곽지석이 점점 지끈거리는 머리를 테이블에 박았다.


"읽어도 모르겠어."

"너 형이 턱 긁어주면 어때?"

"기분 좋은데..."

"원래 일반 사람들은 턱 긁어주면 기분 나빠해. 몰랐지?"

"...왜 기분이 나빠?"

"아래 취급하는 거니까."

"귀여워해주는 거잖아."

"귀여워한다는 게 아래 취급이지. 그리고 그거 강아지한테나 하는 스킨십 아닌가? 너 너보다 높은 사람 귀여워해?"

"난 정수 귀여워하는데..."

"너도 정수 형한테 턱 긁고 그래?"


그러고 보니 그런 적은 없다. 익숙한 스킨십인데 왜 난 정수한테 한 번도 안 했지. 생각해보면 김정수 말고 다른 사람에게 당해본 적도 없었다. 곽지석은 그제야 깨달았다. 아, 정수가 좀 특이하긴 하구나. 형은 그러면 정말... 그거인가? 돔? 어떡하지? 나 뺨 맞고 밧줄에 묶이고 그렇게 되는 건가?


"내가 봤을 땐 너도 바닐라는 아니야."

"바닐라...?"

"없는 건 아니라는 소리. 지금까지 기분 좋았다면서."


한형준 말은 정말 일리가 있었다. 김정수의 통제를 눈치채지는 못했지만 기분 나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좋아서 더 칭찬 받으려고 노력해왔다. 예뻐해주면 기분 좋았고, 괜히 혼난다고 하면 기분이 이상해서 모르는 척 하고 말 잘 듣는 척 하고 그랬다. 그 약간 이상한 기분이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것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근데 그게 정말 한형준 말처럼 기대감 혹은 설렘 같은 거였다면?


"궁금하면 해 보면 되잖아. 뭐...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사귀는 사인데."

"...그럴까?"

"혼내달라고 해 봐. 그럼 알겠지."


김정수는 매번 경고만 했을 뿐 한번도 곽지석을 혼낸 적이 없었다. 곽지석이 그만한 잘못을 안 했기 때문도 있지만, 항상 웃으며 장난인 척 넘어가곤 했다. 정수 화내면 무서운데. 물론 그렇게까지 화내는 걸 본 적은 없다. 그냥 예상이 그랬다. 무서울 게 분명했다. 그래서 정말 혼나면 어떻게 될 지 같은게 곽지석은 궁금해졌다.


"어, 전화 온다."

"...형준 나 폰 끌게."


곽지석은 대범했다. 이미 전화가 오고 있는 상황에서 끄면 당연히 의심할 텐데. 일부러 끈 거 알면 아마 화날 거고. 뭐... 상관없나? 결론은 혼나게 되는 게 목적이니까. 한형준은 무자각 섭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느끼고 조금 소름이 끼쳤다. 역시 안 혼나봐서 저러는 거다. 뒷감당 안 될 텐데.


"괜찮겠어?"

"응. 어차피 정수 나 여기 있는 거 알아."


그럼 끄는 의미가 있나. 한형준은 가게에 걸려있는 디지털 시계를 한 번 힐끗 확인했다. 열두 시 이십 삼 분. 여기서 둘의 집까지는 약 십 분 정도가 걸리고, 뛰어온다 치면 오 분도 가능했다. 김정수 성격에 한 번만 전화하지는 않았을 거고, 곧 도착할 거다. 삼십 분이 되기 전에 상황이 종료될 거라고 예상했다. 생각과 동시에 한형준 폰에 짧게 진동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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